[영화읽기] 왕가위라는 노스탤지어에 빠진 극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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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왕가위라는 노스탤지어에 빠진 극장가
  • 승인 2021.02.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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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 해피 투게더
감독 : 왕가위
출연 : 양조위, 장국영, 장첸

 

코로나로 인해 작년에 극장을 찾은 관객수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가동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년 관객 수가 증가하면서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2억 명대를 유지했었지만 2020년에는 5천 952만 명으로 감소하였고, 1인당 관람 횟수도 평균 4회에서 1.15회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영화계도 코로나의 타격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지난주에 소개한 <승리호>처럼 극장 대신 넷플릭스와 같은 OTT로 직행하는 작품들이 증가될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 지속되다보니 기존 극장에서는 예전 영화들을 재개봉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이 4K로 리마스터링이 되어 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월에 개봉했던 <화양연화>의 경우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그 뒤를 이어 2월에는 <해피 투게더>가 재개봉되면서 우리 기억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홍콩 영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는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두 사람은 점차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또다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로 방황하던 필자에게 영화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원동력이 바로 왕가위 감독이다. 결과적으로 왕가위 감독 연구를 석사논문으로 작성하면서 당시 그의 작품을 수 백 번 보면서 한 컷 한 컷 분석까지 할 정도로 열혈팬이었던 필자였기에 이번 재개봉이 매우 반가울 수밖에 없다. 비록 많은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 홍콩영화를 추억하는 관객들이 있다면 한 번 쯤 관람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해피투게더>는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홍콩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여행길이 막힌 요즘 시대에 이국적인 모습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이게 홍콩인지 아르헨티나인지 알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장면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비롯한 OST가 제대로 어우러지며 <해피투게더>는 제목처럼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준다.

1997년 <해피 투게더>는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 장면 때문에 개봉이 반려되고, 결국 1년 후인 1998년 오프닝 장면을 삭제한 채 개봉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 후 24년이 지난 현재 삭제 된 장면 없이 오롯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그 사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해피 투게더>는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왕가위 감독은 이들을 특이한 관계로 설정하여 표현하지 않고 여타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애틋한 사람과 사람의 사랑으로 표현하면서 감성을 자극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못 본 관객들이 있다면 꼭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0년대 한국영화와 광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과 독특한 편집 속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장국영과 젊은 양조위를 보면서 잠시나마 그 시절의 노스탤지어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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