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음식이라기보다, 바닷가 고향 삶에 관한 이야기
상태바
[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음식이라기보다, 바닷가 고향 삶에 관한 이야기
  • 승인 2021.04.02 0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동쪽의 밥상

책의 말미에 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속초 지역은 음식점이 2,400여 개라고 한다. 주민 서른 네명 기준 음식점이 한 곳이다. 우리나라 전체 음식점의 인구당 비율이 예순 네명에 한 곳이라고 하는데, 속초가 관광도시라서 그런걸까? 그만큼 음식점이 많은 도시이다. 이 책은 속초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동쪽 바닷가에서 많이 먹는 음식에 관해 쓴 책이다. 지역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 쓴 그 지역의 음식 이야기.

엄경선 지음, 온다프레스 출간

나는 전라도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의 밥상엔 언제나 생선이 있었고 갈치와 고등어가 동급이던 시절이었다. 김, 파래, 미역줄기도 많이 먹었다.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전라도의 기사식당 음식이 늘 그리웠다. 당연했던 밥상이 돈을 주고도 그 맛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허기와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올라오곤 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자미, 갯방풍, 양미리, 도루묵 대구 등의 목차를 보면서 동해안의 특산물에 대해 알려주나보다, 뭐가 있어도 전라도 음식만 하겠나, 하고 생각했다. 기억 속 서해의 텁텁한 색깔의 바다보다 속초의 맑고 푸른 겨울 바다가 훨씬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음식이 어디 우리 고향과 비교할 수 있겠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나는 속초가 바다이면서 동시에 실향민들이 모여 살게 된 곳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았다. 바다에서 나는 생선들과 함께, 많은 부분을 실향민의 음식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다. 함경도 음식과 아바이 순대, 함흥랭면에 대해서도 몰랐다. 지금껏 나는 식해와 식혜가 서로 다른 음식이라는 것도 몰랐다.(엄밀히 말하면 식해라는 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생선이나 고기를 밥이나 좁쌀과 함께 발효시켜 소금으로 간을 한 것이 식해(食醢)이고, 밥을 엿기름으로 삭혀서 감미가 나도록 만든 음료가 식혜(食醯) 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자미 식혜”라고 생각해서, 지금껏 식혜에 무슨 가자미를 넣어서 먹는다는 말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가자미 ‘식해’와 내가 먹는 식혜는 다른 것이었다. 해(醢)와 혜(醯)는 젓갈과 식초라는 것!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담담함이었다. 고향의 맛집, 고향의 특산물에 대해서 화려한 사진을 넣거나, 맛에 대해 예찬을 하거나, 그런 내용은 거의 없었다. 간간히 곁들인 사진은 아름다왔고, 대부분의 음식에 대해 사료를 인용하고 있다. 마치 문화재의 사료를 첨부하는 것처럼. 언제부터, 어떻게 먹었고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기록했다. 시대적으로 이 음식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어떻게 기록이 남았고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근대와 현대의 바닷가에서 그것들은 어떻게 생산되었고 어떻게 소비되었고, 지금은 상황이 어떠한지.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동해 바닷가의 소금, 젓갈, 생선, 나물들과 실향민들의 음식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고향과, 바다의 풍랑과, 삶을 얘기한다. 물회와, 도치와 물곰, 오징어와 홍게, 아바이 순대와 오그랑떡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동쪽의 바닷가에 정착한 실향민들의 마음과, 거친 바다 풍랑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것도 조곤조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내 고향 전라도의 횟집들이 모여 있던 바닷가가 떠올랐다. 만약 누군가가 서남쪽의 밥상이라는 책을 쓰면 어떨까.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으며 글을 쓰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 어려서 먹었던 나의 밥상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차근차근 조곤조곤 말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향에 가고 싶어졌다. 잠깐 들리거나 어릴 때 떠나온 사람은 쓰기 어려운 글. 동쪽의 밥상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관한 글. 그래서 오징어보다 오징어 잡는 사람들이 더 많이 마음에 남는 글. 글 자체가 아름다운 문장보다도, 그 글을 읽고 독자의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를 불러오는 글, 독자도 하고 싶은 얘기, 쓰고 싶은 얘기가 떠오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속초에 가고 싶은 만큼, 고향에 가고 싶게 하는 글이었다.

 

20210328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