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로서의 독사, 현대의 난치질환 치료제로 되살려야
상태바
한약재로서의 독사, 현대의 난치질환 치료제로 되살려야
  • 승인 2021.05.13 0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상열

송상열

mjmedi@mjmedi.com


향약집성방 에서부터 대한약전 까지 문헌 속 독사류의 효능
한의학 박사 송상열현 독의약연구회장현 귤림당한의원 원장전 제주한의약연구원장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부 겸임교수
송상열
현 독의약연구회장
현 귤림당한의원 원장
전 제주한의약연구원장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부 겸임교수

유종원은 당·송팔대가(여덞 명의 문필 대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포사자설(抱蛇者說)’이라는 유명한 글은 흥미로운 내용으로 시작한다. ‘중국 영주 지방에 특이한 뱀이 나는데 그 뱀에 초목이 닿기만 해도 죽고 사람도 물리면 죽음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이 독사를 잡아 약용으로 먹으면 문둥병이나 경련, 종기, 역병 등을 치료할 수 있고 썩은 피부나 기생충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식자층이라면 기본으로 익히는 <古文眞寶>에 나오는 이 당·송 팔대가의 글이 독사의 효능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한의사에게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사실 가혹한 조세 학정을 풍자한 글이다. 대대로 독사를 잡아 바치는 일을 하다 뱀에 물려 조부와 부친을 잃은 한 땅꾼이 있었는데 이를 안타까이 여긴 어떤 관리가 이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땅꾼은 독사 두 마리만 받치면 무거운 세금을 면제시켜 주므로 지금 일이 더 낫다며 울며 거두어 줄 것을 호소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사실은 왕명으로 맹독성 독사가 높은 세금을 면제해 줄 정도로 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실제로 독사류는 한약재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고, ‘포사자설’ 속 독사의 효능은 오보사(五步蛇, 살모사의 일종)를 기원으로 하는 약재인 백화사의 주요 효능과 일치한다. 백화사(白花蛇) 외에도 <본초강목>에는 복사(蝮蛇), 원(蚖), 남사(藍蛇), 천사(天蛇) 등 여러 맹독성 독사류가 약재로 등재되어 있다. 이처럼 독사의 뛰어난 약효는 유명한 문집인 <고문진보>에 나올 정도로 당대에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고문진보에 실린 포사자설
고문진보에 실린 포사자설

 

중국과 문화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던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사의 효능에 대해서 인지하고 활용하고 있었다. 조선 초, 국가적 사업으로 고려 때부터 있었던 향약(鄕藥)을 중국에 직접 가서 검증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 때 백화사에 대응하는 향약으로 ‘산무애뱀’이 합격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국내에도 토산 백화사를 생산하게 되는데, <동국여지승람> 등을 보면 산무애뱀이 각 지방의 주요 공물로 올라오는 구체적 내용이 확인된다.

그 이후 <향약집성방> 등에 백화사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실리기 시작하며, <동의보감>에 백화사(白花蛇), 오사(烏蛇), 사태(蛇蛻), 복사담(蝮蛇膽), 토도사(土桃蛇) 등 5가지 뱀 관련 약재가 등재된다. 연구를 통해 보다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나 이 중 백화사(산무애뱀)와 복사는 각각 지금의 까치살모사와 살모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백화사는 <대한약전> ‘생약규격집’에도 등재된 약재로 거풍습약(祛風濕藥)에 속한다. 거풍(祛風), 활락(活絡), 지경(止痙)의 효능을 지니고 <본초강목>에는 中風濕痺不仁, 半身不遂, 口面喎斜, 骨節疼痛, 筋脈拘急, 脚弱不能久立, 暴風瘙癢, 大風疥癩를 치료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뱀을 약으로 쓰기까지 적지 않은 문화 충격과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리자 의원이 뱀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환자가 먹지 않으려고 하자 아들이 먼저 먹으면서 울며 권하니 감격하여 복용하고는 병이 나았다는 사례가 나올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혐오스러운 음식을 선뜻 복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점차 백성들 사이에서 뱀 고기를 먹고 중병을 치료한 사례가 등장하면서 자연히 의료와 식문화로 정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질환 없는 사람임에도 양기(陽氣)를 돋우어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방약합편>에서는 이를 두고 ‘백화사는 대풍(大風), 전질(癲疾)에 썼을 뿐인데 신선약 받들듯 자음보혈약(滋陰補血藥)으로 쓰고 있으니 과연 어디에 근거하는지 의심스럽다’며 경계하기도 했다. 약효가 뛰어났기 때문일까? 민간에서는 이처럼 만병통치약과 자양강장제로까지 여기는 경향이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과도한 남용 때문인지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의하면 뱀을 기원으로 하는 토산 백화사의 산출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한 동안 까치살모사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가 최근에야 해지되었는데 이런 의료문화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백화사는 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고종 때에 한 효녀를 추천하며 부모의 담증(痰症)에 백화사를 써서 병을 낫게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백화사에 해당한다는 산무애뱀은 어떤 뱀인지도 불명하다. <대한약전>에는 백화사가 올라 있지만 그 기원은 중국에서 나는 오보사 하나뿐이며 이 또한 수입하는 제약회사가 현재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산무애뱀으로 추정되는 까치살모사
산무애뱀으로 추정되는 까치살모사

 

현재 한의계에는 국내 독사류 약재 전승이 단절되었다. 다만 통영 등 일부지역에서 내려오는 민간 비방과 용문산 일대 몇몇 가구에서 식용으로 파는 것으로 겨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통영의 한 민간 처방은 몇해 전 TV에 방영된 바 있는데 대학병원에서도 어려운 피부 난치질환들을 치료하여 한의계에 적잖은 파장을 끼치기도 하였다.

또한 용문산에 한 뱀탕관련 요식업자의 전언으로는 살모사 등의 뱀탕에 효험을 본이들의 입소문으로 수백만원을 호가함에도 찾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뱀을 직접 요리하는 것만 아니라 뱀술을 빚거나 뱀을 사료로 먹인 닭 요리 등 다양한 형태로 팔고 있었다.

사실 뱀술이나 뱀닭은 그 조리 방식에 대해 <본초강목> 등의 본초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고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등 국내 여러 문헌에도 언급된다. 뱀독은 단백질 성분이어서 인체의 소화기관에서 해소되어 흡수 가능한데다 술에 의해 저분자화 되어 보다 안전하고 약효를 높이는 포제법이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화사를 비롯한 독사류 한약재는 수백년 임상 경험이 쌓인 우리의 소중한 의료 자산이다. 문화 충격과 혐오를 이겨내고 효험을 통해 이어온 전통인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의학 문헌들은 ‘이독치독(以毒治毒)’의 원리로서 ‘악독한 병은 독으로 치료해야 한다’며 독사류의 완고한 질환의 치료 효능을 설파하고 있다.

뱀독을 잘 활용하면 난치 질환에 뛰어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고혈압치료제, 항혈소판제, 진통제 등 뱀독에서 추출한 성분들이 다양한 신약들로 개발되고 있다.

외면 받아온 독사류 약재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근대적 편협한 위생 관념 또는 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우리의 능력의 부족과 게으름을 방증할 뿐이다.

몇 해 전 방송에서 난치 피부질환의 치료 효과로 충격을 주었던 통영에 사는 한 땅꾼의 뱀독 비방이 사실은 정통 한의학에서 근거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방약합편>의 지적처럼 민간의 무분별한 사용이 아니라, 의료적인 근거와 연구를 토대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전통적 경험 속에 한의학의 고유성을 넘어 미래 가치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가 숨어 있다.

‘산무애뱀’의 기원을 다시 밝히고 이를 약전에 등재시키는 일에서부터 민간에서 비방으로 내려오는 처방례와 그 활용 방식을 채집, 정리하는 등 한의계에 단절된 독사류 한약재 사용을 복원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