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전문역량 갖추고 한의학보다 넓은 세상 경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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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전문역량 갖추고 한의학보다 넓은 세상 경험하길”
  • 승인 2021.07.2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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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인터뷰: 한국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박유리, 안지윤, 정다운 한의사

진료-의료데이터 분석-국제보건기구 등 활약…해외진출, 명확한 비전과 의지, 언어 중요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본지는 창간특집을 맞이해 한국을 떠나 미국과 라오스 등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박유리, 안지윤, 정다운 한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임상진료와 교육콘텐츠 제작자, 데이터 애널리스트, 국제보건기구 의료시스템팀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해외진출 경험담을 들어봤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박유리(이하 박):현재 World Health Organization(WHO) 서태평양 지역에 속한 라오스 소재 국가 사무소에서 의료시스템팀 팀장으로서 의료 시스템의 주요 분야(의료인력, 의약품, 보건 재정, 정보 시스템, 가버넌스 등)를 각각 담당하고 있는 팀원들과 함께 라오스 국가 의료 시스템 강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련 팀들과 함께 코로나 대응을 위한 의료 시스템 강화 업무가 주 업무 중 하나다.

안지윤(이하 안):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하버드보건대학원(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역학(Epidemiology)을 공부하고, 현재는 존스홉킨스 의대(Johns Hopki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의 연구소에서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레지스트리, 보험 청구 데이터를 이용하여 만성신장질환이 있는 환자 또는 신장이식을 받은 사람들에게 처방되는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다운(이하 정): 오랜만에 민족의학신문 지면을 통해 인사드리게 된 한의사 정다운이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 DC 인근 맥클린(McLean)에서 ‘Beyond Acupuncture Clinic’을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 한의사들에게 인터넷강의를 제공하고 있는 ‘더나은침연구소’ 소장이기도 하고, ‘Beyond Acupuncture Institute’를 운영하며 북미와 유럽에 한의학 관련 동영상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On Board’라는 프리미엄 한의학 잡지를 발행하는 한의정보협동조합의 부이사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처음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박: 한의과대학 재학 중 국민들의 의료이용행태, 의료서비스 선택 요인, 환자들과 의료인이 느끼는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방법론, 이러한 연구 결과물의 국민들과 동료의료인들과의 소통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에 점차 보건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 국제보건분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었기에 한의과대학 졸업을 앞둔 본과 4학년에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안: 한방부인과 진료를 하면서 환자가 가진 어떤 특성(나이, 성별, 사회적인 환경 등)에 따라 치료의 효과 또는 질병의 경과가 다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진료하는 의사 개인의 경험이 아닌 데이터를 이용해서 과학적으로 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보건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석사과정에서는 역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강의를 위주로 들었고, 지금 있는 연구소에서는 역학 지식을 이용해서 연구를 디자인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을 하며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내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신장이식을 받은 여성 환자의 출산과 연관성을 가지는 요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

정: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일단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을 찾아야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NCCAOM(National Certification Commission for Acupuncture and Oriental Medicine)이 아닌 CALE라는 별도의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한인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뉴욕주변의 뉴저지와 워싱턴 DC 주변의 버지니아 이렇게 두 곳으로 압축하여 끝까지 고민했다. 두 지역에서 모두 살아본 서본융 원장님의 조언도 듣고 가족들과 깊게 논의한 결과 현재 거주중인 버지니아 맥클린을 정착지역으로 결정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인 커뮤니티가 적당히 있어서 한인마트가 15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와 외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침치료가 의료보험으로 보장되는 환자층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말에 이주한 아들의 교육을 고려하면, 6학년부터 중학교로 들어가는 메릴랜드 주에 비해 7학년부터 중학생이 되는 버지니아 주가 아들의 적응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준비 기간은 얼마나 소요됐나. 그동안 언어, 자격증시험, 비자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을 텐데 그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나.

박: 나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 후 은사이신 손인철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석사 및 조교생활을 하면서 1년 간 미국 대학원 입학 시험(Graduate Record Examinations, GRE 및 TOEFL)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의과대학 6년 동안 영어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GRE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았으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논리력과 글을 쓰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장학금 지원을 못 받게 되면서 유학경비를 준비하는 부분이었고, 무엇보다 유학 이후의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러 부담을 안아야했던 상황에서 심리적 불안함, 부담감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국제보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유학을 계획했지만, 한의사로서 갈 수 있는 다양한 길 앞에서 내가 선택한 길이 너무 좁아보여서 그 길 앞에서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많은 고민 끝에 내가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보다 젊은 시절에 나의 꿈을 향해 도전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나아갈 수 있었다.

안: 대학원에 진학하기 1년 전부터 제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검색하고 지원 할 때 필요한 시험이나 서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서 마감일이 12월 1일이었는데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TOEFL, GRE 시험을 학원에 다녔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서 일을 그만두고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비교적 단기간에 준비하다보니 필요한 점수를 받기 위한 과정이 어려웠다. 또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데 짧은 글 안에 관심 있는 연구 주제,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모든 생각을 잘 녹여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정: 미국행을 준비한 기간은 약 2년 정도 걸렸다. 시간 순서대로 이민 결심, 변호사 선임, 영주권 접수 및 승인, NCCAOM에서 Acupuncturist 자격시험, 한국의 사업 정리, 정착지 결정,이주 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곳에 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면 영주권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비자 인터뷰와 서류 점검 절차가 가장 오래 걸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언어는 한국에서도 일부 준비하기는 했지만 결국 미국땅에서 부딪히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한의사로서 진료를 하면서 한국에서는 힘들었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있다면.

정: 한의사로서 한국에 살면서 개인적으로는 큰 제약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일상적인 진료에서는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의료수가가 낮다보니 아무래도 인당진료비가 높아지거나, 단시간에 많은 사람을 빠르게 진료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3분 진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의 진료시스템은 그와 좀 다른 면이 있어서 조금 더 포괄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 같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수가가 아주 높기 때문에 진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15분, 길게는 1시간까지도 환자를 살펴보고 진료하게 된다. 치료 비용에도 차이가 있다.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 초진 $130, 재진 $100을 받고 있으니 한국에 비하면 몇 배를 받는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의료보험이 한국과 달리 모두 사보험이므로 환자마다 보험지불방식과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본인부담금도 적고, 치료횟수에 제한도 없지만, 저렴한 보험은 본인부담금도 많이 내고, 횟수제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보험마저도 없는 무보험자들도 많은 실정이다.

이에 앞으로 이러한 진료상황에 맞게 통합적인 의료센터를 만들어보려고 기획하고 있다. 진료에서 쌓은 신뢰를 확장해서 물리치료, 운동치료, 재활치료, 의학적 처치, 카이로프랙터 등을 통합적으로 고용하여 환자를 통증에서 해방시키는 것 뿐 아니라 기능향상까지 도모할 수 있는 통합적인 센터를 만들어 보려고 기획하고 있다. 환자를 중심으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WHO에 전통의약전문관으로 파견근무를 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에 성공했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일하던 WHO 서태평양 지역 사무소(WPRO)의 상황, 나 이전에 전통의약 전문관으로 일해 온 분들이 쌓았던 업적, 소속팀 팀장의 갑작스러운 이동으로 인해 팀장 대행을 하게 된 기회, 그 기회를 이용해 내가 기관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기여해서 정규직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WHO 정규직 입사를 위해서는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치러야 한다.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할 때는 전통의약 분야로 입사를 했다. 2018년 중순 WHO WPRO 의료서비스전달팀의 팀장 대행 업무를 맡으면서부터 업무 분야가 확장되었고, 2019년 말 라오스 국가 사무소로 이동을 하면서부터는 의료시스템 강화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한의사이지만 현재 하는 일은 한의학에 특화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나.

박: 한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것 같다. 현재 나는 한의학과 직접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지 않지만, 나의 전문성은 한 명의 보건의료인인 한의사로서 국가 의료 체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관련 학업, 경력 속에서 키워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의학과 보건학을 공부하면서 한의학이 국가 의료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될 때 국가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비용대비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의료이용자가 중심이 되는 의료 서비스(people-centred health services)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및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고, 현재 내가 업무를 수행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행을 결심하는 한의사들 중에서는 ‘한의학의 세계화’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의학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한계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 한의학의 세계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임상, 연구, 보건 분야 등 매우 다양하다. 각자 자기의 적성, 관심분야와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잘 고민하고 선택해서 준비해나간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는 자신의 전문분야, 역량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의 부족하고 제한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의학의 세계화’를 풀어가는 과정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한의학의 ‘무엇을’ ‘어떻게’ 세계화하고자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으며, 그 가는 길이 항상 순탄한 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을 떠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와의 싸움, 현실과 꿈 가운데 타협해야 할 순간들이 있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던 그 시간을 이겨낼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

얼마 전 WHO WPRO에서 전통의약 전략을 수립하는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 내가 참여하게 되어 ‘10년 후 한의사들의 비전이 무엇인가’, ‘한의학이 국가 의료 체계에 어떻게 자리잡고 싶어하는가’라는 논의에 참여했었다. 그 순간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한의사들, 그리고 향후 한의계를 이끌 후배님들이 10년 후 우리의 비전을 어떻게 꿈꾸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어떤 보건의료인으로, 한국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보건의료체계 증진에 기여하는 모습을 꿈꾸는가. 이 질문을 나 뿐 아니라 많은 한의사분들께 공유하고 싶다. 나는 우리의 명확한 비전 안에서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각 개인의 꿈이 펼쳐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이미 한의과대학의 교수님들과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와 학회활동을 통해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한의사이면서 다른 분야를 공부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한의사’라는 인재의 다양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임상이 아닌 다른 진로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버드 한인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한의사라고 소개했을 때 한의사도 이런 공부를 하냐며 신기하게 보았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만큼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의사의 수가 적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의사가 더 많은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대학 교육과정에서 학생에게 한의학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제공해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내가 관심이 있는 관찰연구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한의학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real-world data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다 의미 있는 활용을 위해서는 환자의 진료 기록을 정확하게 수집하고 관리하는 방안과 한의 진료 보험 청구 데이터가 가진 문제점 해결을 위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한의학의 세계화는 참 좋은 말이지만 조금 막연한 면이 있다. 무엇이 한의학이며 무엇이 세계화인가에 대한 규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중의학(TC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개념이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를 KMD(Korean Medicine Doctor)라고 말을 해도, OMD(Oriental Medicine Doctor)라고 말을 해도,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없다. 이런 현실에 의거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여러 곳에서 한국 출신의 한의사를 많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의학이라는 것이 중의학과는 어떤 점이 다른지 알릴 기회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진료하고 있는 한의사 한 명 한 명이 한의학의 외교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계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미국행을 결정하고 정보를 얻던 시점에 어떤 선배님은 네가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해외 사람들이 너를 알아서 찾아오도록 하면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느냐고 조언해주셨다. 물론 맞는 말씀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계화를 하려면 무엇보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네트워크를 쌓고 우리의 노하우를 알릴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여러가지로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한글과 한자로 제작된 정보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정보를 펴내고 강연과 학회로 그 정보를 알린다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 사용자들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렵다.

둘째, 그러한 고유성 때문에 우리의 콘텐츠에 대한 영어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기 어려우므로 그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정보를 얻기 어렵다. 콘텐츠라는 것은 결국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니즈에 맞춰서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의 경험과 통찰력이 녹아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의 의료체계 또한 굉장히 독특하다. 대만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둘 밖에 없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있는 나라이며 약침, 매선, 한약이 다른 나라들의 의료상황과는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 약침은 아직까지 6개 주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 안에서 도를 갈고 닦으며 언젠가는 우물 밖 넓은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행을 준비 중인 한의사들을 위해,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지 조언 해 달라.

안: 유학을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 지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시간, 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목표가 확실하지 않다면 유학 준비과정과 생활이 더욱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의사나 유학생들이 있다면 조언을 구하면서 원하는 목표를 꼭 이루길 바란다.

정: 미국행을 준비하고 계신 후배님들이 있다면 무엇보다 영어공부를 적극적으로 많이 하기를 권장드린다. 나는 대학시절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어 가이드북 대신 늘 ‘Lonely Planet’을 고집했고, 되든 안 되든 손짓발짓하면서 한국인 숙소가 아닌 곳을 더 찾아다녔다. 인턴이었던 2006년부터 늘 영어로 된 논문을 읽고 쓰며 살아왔다. 그리고 50개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입이 트이도록 하는 공부방법을 통해 문장의 패턴을 익혔고, 원어민의 억양을 익히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영상을 수 백 번 돌려들으면서 따라 말하기를 반복했다. 요즘도 가끔 시청하고 따라하고 있다.

나도 아직 완전히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기보다는 그 과정 중에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조언을 하나 드리고 싶다. 경제적으로 너무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GDP)이 34000달러이고, 미국은 68000달러다. 기본 생활비와 의료비 지출만 해도 상당하다. 특히나 가족이 있다면 더욱 부담이 될 것이다. 합리적인 의사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초조해지지 않도록 충분히 장기 계획을 가지고 해외진출을 기획했으면 좋겠다. 물론 먼 길을 지나온 사람이 아닌, 같은 길을 몇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는 도반으로서 말씀드린다. 부디 더 많은 원장님들이 더 넒은 세상으로 나오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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