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상생을 위해선 이해와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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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상생을 위해선 이해와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 승인 2021.08.0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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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오행의 원리를 배울 때 가장 익숙하게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상생상극입니다. 물론 현실을 오행으로 설명하긴 어렵고 또 굳이 설명을 오행으로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행학설에서 나온 여러 철학적 사유들은 다시 현실에서의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간혹 뉴스를 보다 보면 상생(相生)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는데요. 오행학설에서 나온 상생(相生)이란, 결국 남을 돕는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를 돕는 일이 되고, 구성원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상생의 시스템이 가능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상호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는 그저 내가 생각만으로 남을 미루어 짐작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접촉과 대화를 거치면서 점점 쌓여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접촉과 대화가 늘면 점점 더 이해가 늘고 신뢰가 쌓여가게 됩니다. 그리고 상호 존중의 태도가 나오고 양보가 이뤄지면서 상생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언론이나 정치에서 상생이란 구호는 좋게 들리지만 접촉과 대화를 위한 노력은 그만큼 이뤄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오히려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고 한 쪽의 큰 양보에도 쉽게 서로를 이해하거나 신뢰하는 관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상생의 기반을 위한 접촉과 대화를 하기에 앞서 내실이 필요합니다.정확하게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지 않으면 접촉이 반복되더라도 대화는 무의미합니다. 만약 대화를 한다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잘못된 자기 확신으로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고, 많이 만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접촉 기회가 늘어나면서 점점 서로가 신뢰하게 되었을 때 진정한 상생을 도모하고 유효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생은 굉장히 어려운 편입니다. 게다가 한정된 자원과 무한한 수요는 경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생을 위한 양보가 결국 손해라고 인식하게 되는 한 목표가 같은 두 집단이라고 해도 상호 협력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적인 관계는 약한부분을 보완해주고 강한 부분을 살려주는 교류가 이뤄지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하나의 팀 관계입니다. 하지만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있는 집단간에 접촉과 대화가 적어지면 필연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고 상대방을 깔보며 아래로 낮춰 보려고 하거나, 혹은 잡아 먹겠다고 덤빌 수밖에 없겠죠. 오행학설에서 상생, 상극의 관계가 아닌 상모, 상승에 해당하는 관계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새로운 체계를 만들거나 기존 체계에 진입해야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경쟁자가 없는 무주공산에 깃발을 먼저 꽂고 선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는 잘 없습니다. 주변환경에 따른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고 또 경쟁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목표가 같은 조직이고 각자의 장단이 있다면 상생의 전략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접촉과 대화입니다. 그리고 파악을 해야죠. 어떤 체계에서든 책임자가 있고 각자의 영역이 있고 권한이 있습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 하면 엉뚱한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정부나 단체와 관련된 업무에서는 책임자가 누구고, 각각의 권한 분배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보고와 지시의 방향도 이해해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무시하고 자신만의 상상으로 전략을 짜서 대관업무를 하겠다고 하면 담당자는 겉으로야 웃음을 보이겠지만 속으로는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를 떠나 무례하고 사전 조사가 미비한 것으로 밖엔 안 보이겠죠. 가져 온 제안의 전문성까지 평가절하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체계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아직 권한 분배가 덜 이뤄진 경우라면 기습적으로 우선 나서서 권한 및 영역을 확보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기습적인 전략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점령하고 또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유지에 실패하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립하던 체계에 혼란을 가져 오고 변경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지만 효과가 미미해서 큰 영향을 만들어내지도 못 했다면 오히려 이후의 대화나 논의에선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기습적인 전략에는 후폭풍을 고려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유지하고 빠르게 선언을 하는 등 고착화를 시켜야 합니다. 그 영역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은 오히려 기습을 하지 않은 것 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확실히 선점하고 유지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체계를 잘 이해하고 천천히 접근하는 정공법을 취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책임자에서 실무자에 이르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술입니다.

이해와 대화의 기술이 필요 없는 경우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압도적인 우세에 있는 경우죠. 대체할 것이 없고, 또 대체할 이유가 없으며 필수적일 것. 하지만 현대는 고도의 관계성으로 형성된 사회, 국가의 상태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상황, 모든 관계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2020년 의대생들의 2차례에 걸친 국가고시 단체 미응시와 응시기간을 이미 한 차례 연장해줬음에도 응시하지 않은 국가고시를 보게 해줄 수는 없다고 원칙을 내세운 정부의 힘겨루기가 있었습니다. 원칙을 강조했던 정부는 결국 코로나 감염증의 확산을 이유로 입장을 바꾸고 말았죠. 이렇듯 환경에 따라서 또 사안에 따라서 끊임없이 역학관계가 바뀌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의사단체가 정부를 항상 이기냐고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에 있어 가장 강력한 정책결정자고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을 통해 보건의료서비스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의사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모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코로나 확산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률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피로감과 또 예방접종 후 겪는 일시적 증상들 역시 말처럼 모두에게 그저 지나갈 뿐인 일은 아닙니다. 국민 건강의 향상과 코로나 감염증의 대응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도와주거나 필요한 부분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를 위한 시도가 이뤄져야 합니다. 긴 막대의 한쪽 끝만을 한 손으로 들면 힘들지만 양쪽 끝을 함께 들면 더 수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상생이라고 부릅니다. 서로를무시하고 외면하고 적대하면서 같이 손이 나갈 수 있을까요? 어려운일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화와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이 이후에도 더 많은 대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국민 건강의 증진이란 하나의 목표의식을 향한 팀이 만들어진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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