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히잡은 아이언 메이든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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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히잡은 아이언 메이든을 막지 못한다
  • 승인 2021.08.27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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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페르세폴리스

한국인은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눈을 감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교과과정에서 이란에 대해 배워본 것을 떠올려봤자 사회과목에서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페르시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도가 고작이니까.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드출연: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까뜨린느 드뇌브, 다리엘 다리유, 시몬 압카리언 등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드
출연: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까뜨린느 드뇌브, 다리엘 다리유, 시몬 압카리언 등

그래서 나는 이란에 무지했다. 이란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를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려준 책이 바로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다. 이 책은 저자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만화이자 이란인에게 일어난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르포문학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바로 이 ‘페르세폴리스’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장편의 만화책을 1시간 40분짜리 영화로 만들어놓은 만큼 많은 내용이 압축되었기 때문에 원작을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많이 잘려나간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래서 페르세폴리스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려면 원작을 읽을 것을 추천하지만, 그만큼 짧기 때문에 영화는 부담 없이 즐기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작품은 마냥 전쟁, 차별, 가난 등의 요소만 자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불행포르노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유쾌하고 기지가 넘치는 소녀의 성장기에 가깝다. 주인공 마르잔은 분명 이슬람 혁명과 전쟁을 겪고, 그로 인해 나라의 분위기가 바뀌어 하루아침에 히잡을 둘러쓰고, 수업시간에 늦어도 여자가 달리면 뒷모습이 음란하기 때문에 뛰지 말라는 식의 여성차별과 인종차별까지 어두운 일을 많이 겪는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잔은 히잡 위에 ‘PUNK IS NOT DEAD’가 쓰여 있는 자켓을 입고, 금지된 ‘아이언 메이든’의 음악을 들으며, 한 때는 ‘신이 되어서 사람들이 아픈 것을 금지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고, 또 진솔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당찬 소녀이기도 하다. 이란을 뉴스에서 전쟁이나 가난 소식으로 접하다보면 보기 힘든 지점이다.

그런 밝은 묘사는 오히려 이란의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해맑고 영리한 소녀가 단지 이란에서 피지배층으로 태어났고,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히려 마르잔이 이란에서 전쟁과 차별로 위태롭던 유년기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간 청소년기 시절의 묘사다. 극중 딸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기르기 위해 마르잔의 부모는 어린 마르잔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보낸다. 딸을 마중 보내고 난 뒤 곧바로 기절할 만큼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만큼 딸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곳에서 마르잔은 오히려 겉돌고 방황한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 기대를 뒤로한 채 오히려 히피들과 어울리며 마약을 하고 파티를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에 대해 마르잔은 ‘안전하지만 무의미했다’고 표현한다. 얼핏 보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란에서 수많은 내 가족과 친구들이 목숨을 위협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르잔만큼은 그렇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철딱서니 없이 져버린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르잔은 끝없는 고독과 이란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빈말로도 모범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 고통스러운 유학생활의 묘사는 오히려 진솔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페르세폴리스’는 한 이란인 소녀가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이란 내부에서의 이란인의 삶을 넘어 이란 외부에서 이란인의 삶까지 조명한 폭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두 시간이 채 넘지 않는 애니메이션 영화이지만 그 두 시간은 어쩌면 그동안의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이 될 수도 있기에, 한 번 부담 없이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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