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택지췌 - 무엇을 모을 것인가
상태바
[모두의 주역] 택지췌 - 무엇을 모을 것인가
  • 승인 2021.09.03 0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모이는 것은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그 방향의 진행성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빚은 자꾸 모이면 가난해지고, 돈이 자꾸 모이면 부자가 된다. 손님이 자꾸 모이면 업장이 잘 될 것이고, 쓰레기만 자꾸 모이면 버려진 곳이 된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내가 쌓아 올린 것이 곧 내 재산이나 빚이 된다.

주역에는 모인다는 의미의 췌괘가 있다. 천화동인괘의 동인이 여럿이 더불어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췌는 어떤 상황에 의해 필연적으로 모여오는 모양새다. 위에는 연못이고 아래는 땅이니, 움푹 패인 땅이라면 그쪽으로 물이 고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췌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萃 亨 王假有廟 利見大人亨利貞 用大牲吉 利有攸往

 

왕이 사당에 기도를 할 때는 어떤 때일까? 대사를 앞두고 잘 되길 바랄 때나, 너무나 어려운 지경에 놓여 하늘의 힘을 빌어보고자 할 때일 것이다. 커다란 제물을 바치려거든 응당 그 제사는 크고 화려할 것이다. 당장 나라 살림이 어렵고 파탄 지경에 이른 때에 큰 희생을 써야 한다고 할 리는 없다. 그러니 지금은 택풍대과의 藉用白茅와는 다른 상황이다. 흰 띠풀만 깔고 제사를 지내도 허물이 없을 때가 아니라, 크나큰 정성과 공을 들여야 하늘이 굽어볼만한 처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보기엔 ‘이만 하면 살만 하지 않으냐’, ‘이만큼 잘 되었으면 이제 내 축복은 그만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 할 만한 상황이니, 여기서 무언가 더 큰 것을 이루려면 과한 욕심을 부려 천벌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인을 봄이 이롭고 그래야 형통하고 바르게 해야 이롭다. 갈 바를 두지도 않고 막연히 ‘나 여기서 더 잘되게 해주면 안돼요?’ 하고 빌면 그저 과한 욕심일 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할 명분을 갖고 진심으로 빌어야 하늘이 굽어살필 이유도 생기는 것이다.

 

初六 有孚 不終乃亂乃萃 若號 一握爲笑 勿恤往 无咎

 

상전에는 乃亂乃萃 其志亂也라 했다. 미더움은 있지만 뜻은 어지러워서 혹은 흩어지고 혹은 모이는 모양새이다. 10을 모았는데 8이 사라지고 또 다시 거기서 7을 더 모았다가 또 대부분이 사라지고 하면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것을 ‘모았다’고 말하기조차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잘 모이지 않는다고 호소를 했다간 비웃음을 면치 못한다. 왜냐하면 그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시작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거 하랬어?’, ‘그러게 애초에 내가 헛수고일 거라고 했잖아’, 하는 말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들린다. 그러니 끝까지 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 저런 비웃음도 무릅쓰고 얻고 흩어지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흩어지는 것보단 얻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잡생각을 버리고 끝까지 가야 허물이 없다.

 

六二 引 吉 无咎 孚乃利用禴

 

상전에는 引吉无咎는 中未變也라 하였다. 가운데를 차지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길하다는 것이다. 육이는 음이 음 자리에 있고 가운데를 차지한 효이며, 구오와 서로 음양응을 이룬다. 이끄는 것은 그러니 자기 짝인 구오일 것이다. 음양의 분별에서 쌓아올려지는 것은 음에 속하며, 비워 없어지는 것은 양에 속한다. 양의 기운을 받아 음이 저장하는 과정이 있어야 내실이 생겨 모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의 기운만 가지고는 모아지지 않는다. 육이는 그러니 구오의 양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구오 옆에는 제 짝과 음양응을 못 이룬 상육이 있다. 멀리 있는 육이보다 가까이에 있어 구오의 양기를 끌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육이가 할 일은 구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가문에서 제사를 올리는 행위는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 행해야 하는 의무인 동시에 가족구성원으로서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육이의 제사는 기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구오의 정당한 짝임을 입증하는 수단에 가까울 것이다. 올바른 명분을 가지고 구오에게 요구를 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六三 萃如嗟如 无攸利 往 无咎 小吝

 

육삼은 앞의 두 음효와는 달리 음양응을 이루는 짝이 없다. 그러니 뭔가 모이더라도 내실있게 모일 리가 없다. 그럼에도 往无咎라 한 것은 上巽也, 즉 위가 겸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삼의 짝인 상육이 억지로 취하거나 모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음양응을 이루지 않는 짝이 서로 다른 짝을 취하려고 애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상육이 이미 그 처지를 받아들였기에 육삼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상육의 짝이니 함께 하여도 허물은 없으나 같은 성별들끼리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얻기가 어렵듯이 모인다 해도 내실은 없으니 인색할 수 밖에 없다.

 

九四 大吉 无咎

 

구사는 초육과 음양응을 이루는 짝이지만 음효의 자리에 있는 양효이다. 어쨌든 양효로 강하고 음양응을 이루었기에, 육이와 구오처럼 구사는 초육에게 양의 기운을 내어준다. 그러나 초육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아직 뜻이 어지럽다. 구사가 초육에게 무턱대고 기운을 내주었다가는 일을 제대로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신입사원에게 덜컥 회사의 재정을 맡기는 격이 된다. 그러니 확실한 이익이 보장된 것이 아니면 초육에게 맡길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초육에서 본 것과 같이 흩어지고 모이고 하면서 흐름은 엉망이 된다.

 

九五 萃有位 无咎 匪孚 元永貞 悔亡

 

구오는 양이 양 자리에 있고 육이와 서로 음양응을 이룬다. 그런데 믿음이 없어질 이유는 무엇일까? 상전에는 萃有位는 志未光也라 했다. 자리는 있지만 뜻은 빛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자선사업가가 후원금을 많이 모았는데, 사업 결과가 탐탁치 않거나 후원금의 사용 내역이 투명하지 않으면 믿음을 얻을 수가 없다. 분명 그 뜻은 좋았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 뜻은 가려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면하려면 크게 길이 바르게 해야 후회할 일이 없다. 뭐든 구상할 때와 실제로 구현할 때의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측은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되려 하나를 주면 열을 내놓으라며 떼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일하는 사람이 마음의 상처만 입고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구오는 구사처럼 자기 짝에게만 기운을 나누어주면 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짝인 육이에게 물론 기운을 나누어야 하지만 전부 다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올바른 기준이 필요하고 꾸준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上六 齎咨涕洟 无咎

 

앞서 본 대로 상육은 자기 짝인 육삼과 음양응을 이루지 못한다. 그럼 바로 옆의 구오를 넘볼만 하지만 상육은 그게 정도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있다. 상전에 齎咨涕洟는 未安上也라 하였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지만 내실이 없으며, 육삼과는 자석의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화합하기 어려우니 편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상육은 그런 자기 처지를 받아들인다. 그러니 탄식하며 울어도 흉하지 않을 자격이 있으며 허물도 없다.

많은 재정 전문가들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가는 푼돈에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핸드폰 요금, 지각했을때 타는 택시비, 충동적으로 사는 물건들과 매일 불필요하게 사먹는 음식값 등, ‘내가 벌어서 이만큼도 못 써?’라고 생각하는 작은 돈들이 모여 결국은 쪼들리게 되는 것이다. 금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게 보여준 작은 호의나 마음씀을 그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더 나아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 상대방의 마음은 점점 그 온기를 잃는다. 아주 싸늘해져버린 다음에, ‘내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불평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주 큰 일로 단번에 끊어지는 일도 있지만, 보통은 저렇게 조금씩 감정이 쌓여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때에는 억지로 끌어당기려 하는 것도 역효과만 낼 뿐이다. 남들은 다 마음의 온기를 나누는 누군가가 있는데 나 홀로 탄식하며 울고 있다면 그동안 내가 무엇을 모아 왔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미 늦었어도 다시 되돌리고 싶거든 큰 희생을 쓰고 제사를 지내는 지극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자. 그게 정말 진심이라면 조금씩이라도 스며들어 결국은 상대방도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르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