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내 생애의 가장 훌륭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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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내 생애의 가장 훌륭한 강의
  • 승인 2021.10.0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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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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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강의의 기술

마누라- “당신은 로또야. 로또!”

나-“그래. 고마워 자기야. 역시 우리 마누라밖에 없다.”

마누라- “당신과는 안 맞아. 정말 더럽게 안 맞는다고!”

아무도 안 웃는다.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분위기 좀 올리려고 조크 좀 날렸지만, 더 썰렁해진다.

최창수 지음, SISO 출간

얼마 전 동네 주민센터에서 열린 건강 관련 강좌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의하려고 단상에 올라간 순간 너무 당황했다. 전부 80대 어르신들만 오신 것이다. 예전에 강원도에서 공보의 시절 노인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기에 어르신들 강의가 얼마나 힘든 줄 알고 있었다. 준비한 PPT를 함께 보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마스크 때문에 소리가 작아서일까? 한 할아버지께서 한쪽 귀에 두 손을 모아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가? 아이코 귀도 잘 안 들리시는구나~ 그 덕분에 목청껏 소리를 질러 목도 쉬어 버렸다. 설명이 지루한 부분은 대부분 건너뛰고 체조와 건강 지압법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강의를 끝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땀범벅이 되어버렸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청중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는다. 덕분에 여러 기관에서 한의학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할 때 철칙이 있는데 절대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강의를 지루하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조언을 하신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나고 다시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분께 죄를 지었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지인이 소개해 준 이 책은 강의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과 15여 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만 켜면 브라운관에서 많은 한의사가 한의학을 강의했다. 한의사 김용옥, 김홍경, 신재용 등등……. 그때 한의원에서는 강의 덕분에 한의약 진료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점차 강의는 사라지고 홈쇼핑 채널에서 한의사들을 만날 수 있다.

한의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그리고 한의 진료의 문화적 정착을 위하여 우리 한의학계에서는 한의사 강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한의학 명강사가 되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첫째, 한의학을 쉽게 설명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하수는 어렵게 설명하고 고수는 쉽게 설명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의학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의 강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강의 잘하는 사람을 따라가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기 쉽다. 강의는 진솔하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셋째, 효과적인 전달을 위하여 도구를 많이 사용하자. PPT는 기본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악기나 음향 또는 짧은 동영상으로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강의와 관련된 노래 한 구절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넷째,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한의학을 가르친다고 해서 목화토금수만 떠든다면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한다면 더욱 이해가 쉬운 강의가 될 것이다.

다섯째, 시작은 이성적으로 마지막은 감성적으로 끝내자. 마지막에 “부족한 강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겸손한 태도 보다는 감성적인 명언이나 에피소드로 기억에 확 남게 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섯째, 청중에 따른 다른 강의가 필요하다. 앞서 필자가 실수한 것처럼 청중을 고려하지 않고 매번 똑같은 강의만 한다면 실패할 수 있다. 청중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이별 혹은 직업별로 다른 주제, 다른 강의 방식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많은 강의 스킬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요약하였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긴장으로 밤잠 못 이루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본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내 생애 가장 훌륭한 강의를 뽑자면 예과 1학년 때 들었던 금오 김홍경 선생의 강의였다. 대학교 초청강연회에서 그는 장장 5시간 동안 강의를 하였다. 긴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영화도 한 테마, 노래도 여러 곡, 명상음악, 징, 꽹과리까지 동원했었던 거대한 콘서트 같은 강의였다. 난 한의학에 홀딱 빠졌고 방학하자마자 바로 그의 사암침술원리 40일 강좌를 신청했다. 그 이후 사암침법으로 진료도 하고 박사학위도 받았다. 내 인생을 바꾼 강의였다. 이제 우리도 한편의 공연과 같은 각자의 강의를 기획해보자. 그리고 요청이 들어온다면 언제든 한의학을 대중에게 소개해보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혼이 담긴 강의를 만들어보자!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정유옹
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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