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쪼그리고 앉아서 보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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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쪼그리고 앉아서 보는 자연
  • 승인 2021.10.2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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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아파트 생물학

내가 10살까지 살던 5층 아파트 동네는 뒤에 야산(그땐 야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5층 아파트 1동 정도 면적의 공터였다)이 있고 지하실에 박쥐가 있었다. 참새랑 비둘기를 잡을 거라고 식빵을 뿌리고 플라스틱 대야를 얹은 함정을 만들어 철쭉 관목 뒤에서 쥐가 나도록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벚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비밀기지를 만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동네 남자애들은 소변이 마려우면 꼭 은사시나무 아래 개미집을 향해 쉬한다는 동네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벌레는 무섭지만 공벌레는 재미있고 방아깨비는 깨끗하고 잠자리는 사냥의 대상이었다. 요새 아이들은 안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예쁜 놀이터를 뒷전으로 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과자에 몰린 개미들을 구경하다가 고양이를 쫓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곽태식 지음, 북트리거 출간

흔히 삭막한 아파트라고들 하지만 멈춰 서서, 혹은 아이들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파트 생물학>은 저자 곽태식 박사가 한국인들이 사는 일반적인 주거 양식인 아파트에 멈춰 서서 바라본 생물들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좋아서 데려온 생물(소나무, 철쭉), 어쩌다 보니 우리가 살려던 환경이 살 만하다는 생물(고양이, 황조롱이)들이 있다. 우리는 싫다는데 같이 사는 생물(개미, 모기, 집먼지진드기), 있는지 몰랐지만 영향을 주고 받는 미생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공학박사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단락마다 표제로 삼은 생물에 대한 생물학적인 지식이나 역사 이야기, 현재 사회에 미치는 영향, 아니면 저자의 상상까지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소나무의 잎 형태에 따른 기능, 1,500km가 넘게 송홧가루를 날려 번식하는 능력, 개미가 페로몬을 이용해 그럭저럭 쓸만한 길을 찾는 원리,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경제변화와 아파트 가치 상승까지 다루고 있다. 마치 삼천포로 잘 빠지는 선생님의 수업 같다. 어느 과목을 공부할지 결정해야 할 학생이나 공부 자체가 흥미가 없던 학생에게 즐겁고 유익한 수업이다. 그런데 화학이 너무나 재미있고 수학이 너무나 재미있는 학생,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면 초조해서 “선생님, 진도 나가요!”라고 외칠 법한 느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아파트의 생물들을 보면서 삭막한 아파트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보아온 자연과 아파트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곽태식박사나 나 같은 80년대 도시 태생이랑 소한테 풀 먹이고 강에서 물고기 잡고 노시던 분들의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교외로 나가서 논밭을 보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 앞서 대자연이라고 내심 감탄해버리는 내가 그분들에게 이상하겠다.

다른 이유는 아파트를 보면 인간이 모여 살기 위해 조작된 환경에 대한 우려가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기존의 생물들이 쫓겨나기도 하고, 멀리 살던 생물들이 서로 섞여 살아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후 위기나 식량 위기 같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상이변으로 10월에 한파경보가 나왔다. 코로나19는 서식지가 파괴된 동물을 통해 인류에게 전파되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파트는 냉난방 효율이 좋고 에너지와 수도의 보급, 쓰레기 처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꼭 환경에 나쁘지만은 않다. 또 밀집해서 살다 보면 교통인프라가 효율적으로 갖춰져서 환경의 소모가 줄어든다.

아파트는 인간을 분리수거(?)해서 대자연을 유지하는데 한몫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대자연이 그립고 아쉬울 땐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우리 곁에 있는 소소한 자연에도 눈을 돌리고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가면 어떨까? 언제나 그렇듯 타협의 시작은 관심이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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