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84> - 『增補單方新編』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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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84> - 『增補單方新編』② 
  • 승인 2021.10.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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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식민지 백성의 목숨을 구하라

  『단방신편』과『증보단방신편』을 비교해 보면, 우선 원작자로 신만과 정약용을 내세운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생몰연대나 활동시기를 보아서는 주촌 신만(1620~1669)이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비해 훨씬 앞선 시기의 인물로 함께 묶일 까닭이 없다. 두 인물 모두 士族으로 의약을 업으로 하지 않았으나 의약에 능통했고 의방서를 남긴 것은 마찬가지이다. 잘 알다시피 신만이 남긴 의약방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훗날 1930년대에 이르러 『주촌신방』이란 서명으로 발행되었다. 또한 그는 최근의 연구에서 송시열이 주도하여 북벌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삼방』의 간행작업에도 깊숙이 관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 『증보단방신편』

 

  다산 정약용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의약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의학자로 대표작『마과회통』을 남긴 것 이외에도 의론서 『醫零』과 구급방『촌병혹치』를 지었다. 또한 후일『정다산소아과비방』이나『교남서사신편묘방』같은 여러 종의 통속의서에서도 그가 남긴 의약저술을 토대로 만들어졌음을 표방하고 있다.

  두 책 사이에는 본문을 증보한 것 이외에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원편이라 할 수 있는 이의경이 펴낸『단방신편』권두에 붙어 있던 2편의 서문, 즉 이응익과 고영주가 지은 글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원래의 『단방신편』에서 편역자로 밝혀진 이의경의 이름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증보단방신편』에서는 출판업자인 지송욱 명의로 바뀐 점이다. 전호에서 살핀 바와 같이, 편제 구성으로부터 시작해 대부분 내용을 애초 이의경이 펴낸『단방신편』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입장에선 증보자로나 표기되어야 할 지송욱이 증보판에서는 ‘編譯兼發行者’로 올라 있고 ‘編譯者’로 표기되었던 이의경의 이름은 사라지고 없다.

 또한 40조문에 가까운 내용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 분량 만해도 162쪽에서 138쪽으로 줄어들었다. 본문에 앞서 목록에서 조문이 증보됨에 따라 20쪽에서 22쪽으로 앞뒤 1장이 늘어났으나 2편의 서문 2면이 삭제되어 도입부는 동일한 면수를 유지한다. 그럼 두 책이 판면 구성에서 거의 흡사하고 본문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면은 오히려 줄어든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전자가 13행35자로 판면구성을 한 반면, 후자는 자수는 같으나 17행으로 면당 4줄씩 늘어나 있다. 이런 이유로 상당 분량 내용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 본문에서 24면이나 면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1909년 초판에서 당시 금액으로 책당 가격이 40전이었는데, 1917년 증보 4판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뒷받침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22년판에서는 책값이 45전으로 다소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인쇄부터 발행, 분매소까지 출판인쇄 관련자는 모두 바뀌어 있다. 1913년 신구서림과 박문서관에서 『증보단방신편』을 처음 펴낸 이후 1915년 재판, 1916년 3판, 1917년 4판, 1918 5판, 1919년 6판, 1920년 7판, 1922년 8판을 발행하기까지 해마다 중판을 거듭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실용의서였음에 틀림없다.

  한편 본문에 口眼歪斜를 口眼不正邪로, 白癜風을 白轉風으로 적는 등 잘못된 표기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사본에서 더러 나타나는 변형된 병증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종 표준용어의 개념이 없었던 필사본에서 구전된 내용을 자신이 이해한 방식의 표현으로 옮겨 적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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