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에게 과학은 ‘덕질’…과학서적 통해 일에 다시금 설렘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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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에게 과학은 ‘덕질’…과학서적 통해 일에 다시금 설렘 느껴”
  • 승인 2021.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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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책, 사람을 잇다(15) 김창업 가천한의대 교수

과학서적으로 과학자의 삶과 불멸의 진리 떠올리며 사색…독서클럽 통해 독서경험 나눠
인생 책,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무한을 넘어서-기억을 찾아서-뇌과학의 모든 역사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대학에서 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과학책 읽기를 즐긴다는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의 김창업 교수. 그는 최근 박사 과정 학생들과 독서클럽을 시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에 동참하고 있다. 과학을 ‘덕질’이라 표현하는 과학마니아 김 교수가 소개하는 과학 책의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창업 교수의 독서는 대형서점에서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계기나 시점은 특별히 없지만 서점 방문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지금처럼 대형서점이 흔치 않았는데 주말이면 코엑스의 서울문고(현재 반디앤루니스)에 가서 죽치고 앉아 놀곤 했다”며 “친구와 함께 가고, 친구가 없으면 혼자도 많이 갔는데 솔직히 책을 끝까지 보지도 못하면서 이 책 저 책 뒤척이며 가슴 설레었던 기억들이 있다. 어쩌면 독서보다 책과 서점을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점을 좋아하던 그의 독서경험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출퇴근시간에 틈틈이 책이 함께했다. 김 교수는 “종이책을 좋아하는데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못 따라가 항상 책이 쌓인다. 일단 많이 사고, 근처에 두고, 충동적으로 집어 들어 읽는 편”이라며 “어딜 갈 때 책을 그냥 손에 들고 가는 편이다. 습관이 되니 손에 두툼한 책이 없으면 허전하다. 손목 힘도 세지는 것 같다”고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의 일상을 함께하는 책은 단연 과학서적 위주다. 교양과학 서적이나 과학사 서적을 주로 보고, 역사나 지리, 그리고 이들이 융합된 빅히스토리 류의 비문학 서적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감성이 메마른 것은 아니고, 보통 시, 소설, 수필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느낀다고 하는 감동을 나는 과학이나 역사, 지리 서적 같은 비문학 서적에서 주로 느낀다”며 “우주의 역사와 의식의 진화,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불멸의 진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학서적에 대한 열정으로 최근에는 독서클럽을 시작했다. 이 모임은 교양과학 서적 중에서 책을 선정한 뒤, 한 책 당 두 번에 걸쳐 의견을 나눈다. 격주에 한 번 모임을 진행해 한 달에 한 권을 읽는 꼴이다. 모임은 선정도서에 관심이 있는 인원들만 자율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마음이 편안한 금요일 오후시간에 날씨가 좋으면 잔디밭이나 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독서클럽을 통해 독서를 하게 된다는 것이 다소 ‘합리적’이지 못할 수는 있지만 좋은 연구자로서 중요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학생들처럼 늘 치열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매겨 합리적으로 순위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나간다면 아마도 졸업할 때까지 한가한 독서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라며 “마음의 양식과 풍요를 떠나서, 좋은 연구자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도 독서는 꼭 필요하기에 이런 상황은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이어 “매순간 최적의 선택을 이어나가는 알고리즘을 탐욕적 알고리즘(greedy algorithm)이라고 하는데 그 솔루션은 대개 최적해(global optimum)가 아니다. 당장의 일보 후퇴는 미래 이보 전진을 가져올 수 있다”며 “아무리 눈앞의 일이 바빠도 독서와 사색의 시간은 꾸준히 가져가야 하고 독서클럽이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독서 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책의 내용을 보다 깊이 소화하고, 통찰을 얻는데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서 경험을 매개로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나누다보면 훌륭한 아이디어나 통찰을 얻게 되기도 하는데, 사실 평상시 이런 수준의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며 “무엇보다 재미있다. 과학자들에게 과학은 업이지만 동시에 ‘덕질’이기도 하다. 다만 평소 건조한 논문들과 씨름하면서 세부적인 문제들 속에 허덕이다보면 잠시 재미를 놓치기도 한다. 책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하는 일들이 다시 설렘으로 다가온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과학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김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과학 서적’이란 무엇일까. 이에 그는 ‘감동’, ‘이야기 솜씨’, ‘번역’ 세 가지 요소를 꼽았다.

그는 “(좋은 과학서적은)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책은 지루할 뿐”이라며 “깊은 내공을 갖춘 학자가 보수적인 연구 논문에서는 하지 못했던 자신의 대담한 가설과 통찰들을 책을 통해 자유롭게 펼쳐놓는 경우, 운이 좋다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작가가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어렵고 지루해질 수도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에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결과적으로 독서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한 “번역서의 경우 번역의 질이 너무나 중요함을 자주 느낀다”며 “모든 책의 번역이 중요하겠지만, 과학서적의 경우 내용이 난해하여 역자가 잘못 이해하고 오역을 남발하는 바람에 좋은 책을 망치는 일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게 ‘인생책’을 골라달라는 질문에 그는 난색을 표하며 “독자들에게 소개할 책을 고르라 한다면, 명저로 이미 소문이 자자해 내가 한 번 더 추천하는 것이 별 의미 없을 책들은 제외하고, 관련 주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새로운 독서경험으로 이끌어 시야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책들을 소개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 유지니아 쳉의 ‘무한을 넘어서’, 에릭 켄델의 ‘기억을 찾아서’, 매튜 코브의 ‘뇌과학의 모든 역사’를 추천했다.

‘유클리드의 창’은 물리학자 출신인 저자가 기하학을 중심으로 정리한 수학사 이야기다. 김 교수는 “수학사라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재밌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중‧고등학교 때 기하학을 좋아했던 싫어했던, 기하학적 직관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빅데이터 분석은 고차원의 공간에서의 기하학적 작업으로 이해되고, 신경세포집단의 활동은 고차원 공간에 놓인 저차원 매니폴드로 표현된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책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감사하게도 본래의 전공인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를 포함해 무의식이나, 인간 사고에 관한 책까지 다양한 책을 저술하고 있으니 이후 다른 책들도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씌어진지 조금 된 책이라, 초끈이론에 대한 장밋빛 묘사와 함께 책이 끝나는 점이 아주 조금 아쉽다”고 소개했다.

‘무한을 넘어서’는 수학자인 저자가 소개하는 ‘무한’이라는 세계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김 교수는 “무한은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개념이다. 5살 어린이에게도 우주의 실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며 “인간의 직관적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나올 것 같은 이 철학적 개념을, 수학자들은 정의와 증명의 힘에 의존해 놀라운 수준으로 구체화시켜왔다.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도구의 발달로 관측이나 관찰을 한 것이 아니다. 사고의 힘만으로 개척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관과 반하는 모순적 상황은 일상처럼 등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자 유지니아 쳉은 믈로디노프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이야기 솜씨의 수학자”라며 “무한의 세계를 개척하던 칸토어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저자는 그 무시무시한 주제를 우리가 미치지 않을 수준으로, 하지만 충분히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안내해준다”고 극찬했다.

그가 추천한 또 다른 책인 ‘기억을 찾아서’는 기억의 신경생리학적 기전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댈의 자서전이다. 김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저자가 현대 뇌과학의 역사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조금 비약하면 현대뇌과학의 역사서”라고 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추종했던 정신과 의사가 뇌를 이해하기 위해 한낱 바다달팽이를 대상으로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하게 된 경위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 한의학 전공자로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의 역사적 경험과 20세기 초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빈의 예술,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도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마지막 인생 책은 ‘뇌과학의 모든 역사’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생각과 마음의 기원을 탐색하는 뇌 과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책에 대해 “뇌과학의 역사를 하나하나 나열하는 지루한 책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의 사실들을 분석하고 있다”며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는 당대 인간이 만든 기술(유압식 펌프, 태엽기계, 전신, 컴퓨터)의 은유를 통해 진보하고 동시에 한계 지워졌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 역시 먼 훗날의 역사 속 한 시점일 뿐이라면, 우리 역시 그런 한계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6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330쪽 언저리면 벌써 커넥톰(connectome) 이야기가 등장한다”며 “엄격한 시간 순으로 구성된 책은 아니지만, 책의 얼마나 많은 내용들이 현대의 뇌과학에 할애되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뇌과학 분야 독서력이 좀 있거나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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