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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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마음
  • 승인 2021.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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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40

1988년에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제3사관학교에서 장교후보생일 때다. 유격 훈련을 받기 위해 유격장이 있는 화산까지 야간행군으로 가야 한다. 화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개천이 있다. 행군대열은 여기에서 잠시 쉬면서 개천 물을 떠서 마시고 수통에도 물을 채운다. 완전군장으로 헉헉거리며 화산을 오르는 동안 수통의 물은 꿀맛이었다. 유격 훈련을 마치고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서 우리는 보았다. 개천 주변이 온통 축사였던 것이다. 훈련을 함께 했던 동기들은 그때 너 나 없이 잠시 원효대사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의 조화(一切唯心造)’이다.

 

마음의 행로

마음의 행로는 여러 갈래이다. 기본적으로 본능의 표출이다. 식욕과 성욕 그런 후에 성취욕이다. 식욕은 생존을 성욕은 번식을 성취욕은 발전을 향한 표현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다음은 감정의 표현이다. 이것은 상대에 의한 그리고 상대를 향한 표현이다. 전통 동양학에서는 칠정(七情)이라고 했는데, 동무 공은 애노희락(哀怒喜樂)으로 압축했다. 다음은 인의예지(仁義禮智) 같은 도덕의 표현이다. 도덕은 사회활동과 교류를 위한 조건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데, 자유의지란 결국은 무엇을 선택하는가이다. 인간 세상은 서로의 선택이 충돌하면서 조화와 부조화가 발생한다. 이것이 인간사를 복잡하게 형성한다.

 

욕심

욕심이 삶을 지질하게 만들고 또 질병이 생기는 근원이라고 동무 공은 말했다. 식욕과 성욕 그리고 성취욕을 8체질론의 관점에서 보자. 함부로 먹고 싶은 욕구는 체질식이라는 필터를 통해 우선 조절해야 한다. 체질식은 가려 먹기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소화장애나 알러지성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한 단계 더 나아가 적게 먹기를 실천하면 자신의 체질적인 조건에 적합하고 적당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좋은 짝을 만나는 조건이나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체질론으로 한정해서 보면 체질적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짝이 있다. 이런 만남에서는 늘 서로가 기쁨이 되므로 가정생활이 안정된다. 성취의 바탕은 재능이다. 체질을 알게 됨으로써 드러나는 재능은 그 일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주어 몰두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힘든 학습과 훈련의 과정도 잘 이겨내도록 이끈다. 그리고 그 재능이 직업으로 이어진다면 한층 충만한 만족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건강

오늘을 건강하게 잘 살면 건강하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다. 오늘에 충실하면 그뿐 내일 이후를 미리 욕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이것이 너 나 없이 삶의 화두이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그리고 건강한 몸에서 건전한 생각이 나온다. 마음과 생각이 건강하지 못한 채 단지 오래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마음은 자유분방하다. 생각은 한계가 없다. 욕심은 끝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동무 공은 「성명론」에서 존기심(存其心), 책기심(責其心)이라고 강렬하게 말했던 것이다.

 

먹방

먹방은 이 시대의 대세이다. 관찰 예능도 탐사 예능도 먹방이고, 토크쇼도 복고인물(復古人物) 다큐도 결국은 먹방이 된다. 매체에서 품격은 사라졌다. 체질식은 가려 먹기이다. 체질이란 나의 정체성에 따라 내 몸의 내 생명의 존엄을 지키려는 행위이다. 그런데 가려 먹기는 시대의 대세로부터 밀리고 또 밀린다. 시대의 진정한 비주류이다.

체질식은 먹기의 품격을 되살리려는 노력이다. 체질식은 몸을 변화시킨다. 이전까지는 계속 졸고 있던 내 몸의 파수꾼을 깨운다. 몸을 깨끗하게 되돌린다. 체질식이 지속되어 익숙해지면 저절로 절제력이 길러진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의 욕심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먹으려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당연히 마음 또한 평안해진다.

 

존중

남녀 사이의 연애는 함께 놀이동산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우선 제한 시간이 있다. 설레고 궁금하고 가슴이 뛰고 흥분되고 즐겁고 마음껏 상상하고 두렵고 짜릿하고 아쉽고 실망스럽고 놀랍고 지루하고 황홀하고 절망적이고, 또 돈도 많이 든다. 그리고 식는다.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는 어느 한 편에서 의심이 싹트는 순간 끝이다. 그리고 스포츠 브랜드 Kappa의 로고처럼 등을 돌리게 된다. 등 돌림이 바로 배신할 배(北)이다. 그러므로 배신이란 아주 친밀한 사람이 등 돌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처가 깊다. 하지만 배신이 어느 일방의 잘못만은 아니다. 모든 관계란 서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會者定離)

연애가 혹 결혼으로 연결되고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지속하려면 필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존중을 실천하는 커플이라면 두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가 가득할 것이다.

 

광고

광고의 목적은 제한된 여건에서 효과적인 전달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취하는 광고의 일반적인 태도는 과장과 비약이다. 그리고 은폐이다. 현 시대에 모든 매체는 24시간 대중을 유혹하고 매체 스스로 광고가 되었다. 자본이 뒷배경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본을 탐한다. 영세한 사람의 호주머니 속까지도 모두 털어버리려는 태세이다. 따는 자는 늘 따고 잃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그래서 글로벌한 시대에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리고 부의 끝에 선 자들은 우주놀이를 시작했다. 그것은 힌덴부르크(Hindenburg) 같은 위험한 놀이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사기 범죄의 비율이 가장 높다. 속이려는 자들이 많다는 것은 잘 속는 사람들도 많다는 뜻이다. 속이려는 자들은 상대방의 욕심을 보고 그것을 낚아 챈다. 거짓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참’을 지키는 일이다. 속이려는 자들에게 끌려들지 않고, 욕망을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에게 마음의 평화가 깃들 것이다.

 

마음의 창

구호(口號)로는 절대 구호(救護)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인은 구호가 허울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구호하겠다는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대중은 그런 외침을 믿어준다. 그게 선거판이다. 결국 뛰어난 정치인이란 대중이 잘 믿어줄 만한 아이템을 잘 외치는 사람일 것이다.

좋은 의사라고 하면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상담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8체질의사에게는 체질침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다. 이것을 통해서 의사에게 집중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내게 집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눈을 보라. 눈은 마음의 창이다. 그의 마음이 지금 평화로운지 건강과 평화를 향해서 움직일 준비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능

체질론을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우침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하는 것이란 바로 타고난 재능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체질과 연결된다. 내 체질이 무엇인가 먼저 알아야만 한다. 그런 후에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동무 공은 신분의 구별과 직업적 귀천이 존재하는 사회에 살았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자질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질에 따라 갖게 되는 일이 도라고 했다.(天生萬民 命以資業 資業者道)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의 차이, 그에 따른 사회의 직업적 기반이나 경제적 기반의 차이를 말했고, 이것이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길(道)이라는 것이다. 도란 자신이 받은 재능에 따라 일을 택하여 삶을 살아가면서 얻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임상의에 썩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먼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있다. 어린아이처럼 낯가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분하지 못하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다. 환자보다 지나치게 흥분해서 곤혹스러울 때도 많다. 또 손재주도 없는데다가 겁이 무척 많아서, 손을 가지고 하는 과감하거나 세밀한 치료 술기를 익히는 데도 지장이 많다. TV에 누가 주사를 놓는 장면만 나와도 심장이 견디지 못하는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8체질론을 접하여 체질의학으로 임상을 하게 되면서, 체질맥진이나 체질침관을 통한 시술 같이 필수적인 기술만으로 지난 24년간을 버틸 수 있었다. 다른 치료 분야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한의사 면허를 따고 의업이 생계가 되었으니 전업할 수는 없고, 그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체질론에 흥미가 생기고 난생처음 공부하는 재미를 느낀 덕분이다. 먼저, 공부한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에 재능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여러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개념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런 후에 나는 그것들을 익히고 삭였다. 그러자 그것들이 차차 나만의 개념으로 체계가 생겼다. 정리하고 쓰고 고치고 책으로 엮었다. 책을 낸 이후에는, 말하는 재주가 지독히 없는데도 강좌를 열었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하게 되면 내가 모르고 있었던 부분 잘못 잡았던 개념이 더 도드라진다. 그러면 다시 생각하고 고치고 정리하고 썼다. 그러는 사이 내 체질 공부는 독학이 된 셈인데 나는 혼자 공부가 너무 편하다. 내게는 다른 사람의 지적을 감당하는 완충장치가 없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바로 상처를 입는다.

흥미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쓰고, 어눌한 언변이지만 가르치고, 또 책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잘하는 일이고 내 재능이다. 8체질론을 접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약골

체질과는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받은 기운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 후자는 평생 활기가 별로 없다. 늘 골골하는 지경이다. 나도 무척 약하게 태어났다. 체질론을 만나기 전에는 병치레가 잦았다. 체질론을 만나지 못했다면 의업을 가졌다고 해도 이 나이라면 많은 질병 목록을 목에 걸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체질론을 통해서 닦아온 20여 년의 시간이 내 몸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늘 어려운 과제이지만 말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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