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의철학’ 과목 의문으로 읽은 철학서적…나와 주변 이해에 도움”
상태바
“대학시절 ‘의철학’ 과목 의문으로 읽은 철학서적…나와 주변 이해에 도움”
  • 승인 2021.12.02 0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책, 사람을 잇다(17) 김재범 한의사

인생의 책, ‘오당본초록’-‘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비행운’ 등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우석한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부원장으로 생활하고 있는 김재범 한의사. 그는 한의대생 시절이던 지난 2015년 민족의학신문의 인턴기자로도 활동했던 특별한 연이 있다. 신문사로 출근을 하며 기사를 쓸 만큼 글에 대한 열정이 강한 그는 ‘쓰는 일’ 못지않게 ‘읽는 일’을 좋아했다.

김 원장이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부터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괜히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도 잘 읽지는 않았는데, 대학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활자를 여유롭게 곱씹으며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대해 그는 “여름방학 때는 여러 가지 대외활동도 하고, 놀러 다니느라 책을 많이 못 읽었는데, 겨울방학 때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참 많이 갔던 것 같다”며 “그 때 그 때 판매대에 새로 진열된 책을 옷 구경 하듯이 하나씩 펼쳐서 훑어보는 것이 행복했다. 운이 좋은 날은 말솜씨가 좋은 작가를 새롭게 한 명씩 알게 되고,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소설작가의 절묘하고 센스 있는 비유들을 보면서 수첩에 따라 적어보기도 하고, 때로 그럴듯한 좋은 비유가 생각나면 수첩에 메모해보기도 하면서 새롭게 모국어 공부를 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책을 읽는 습관을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행위에 비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을 읽는 습관은 우리가 풍경을 바라보는 습관, 식사를 하는 방식처럼 일상의 습관과 연관이 깊은 것 같다”며 “어떤 풍경은 그저 너그럽게 지켜보고 싶고, 어떤 풍경은 그 풍경 속에서 무언가 활동을 해보고 싶어지듯, 책마다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보통 나는 책을 여러 권 구매하거나 빌린 뒤, 그 날 그 날 돌려가며 읽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뷔페 음식을 조금씩 맛보다가 맛있는 음식은 조금 더 먹으면서 맛을 충분히 음미하고 배를 채우듯이, 책도 그렇다. 어떤 책을 읽다보면 또 다른 갈래의 책을 잠시 읽고 싶어지고, 어떤 책은 다 읽고 났는데도 한 두 번은 더 읽어야 성에 찰 것 같다. 어떤 책은 슬쩍 보기엔 먹음직스러워보였는데 내 입맛엔 맞지 않아서 많이 남기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책을 조금씩 읽을 뿐 아니라, 책 한 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책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읽어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이 출판됐을 때 그 책의 출간에 영향을 끼치거나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책, 혹은 저자와 친한 다른 작가의 글을 찾아 읽어보게 된다고도 했다.

김 원장은 철없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을 겪고 나면서 철학 서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수업 시간에 자주 졸았는데, 특히 ‘의철학’ 과목 시간에 많이 졸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철학 기말고사 시험을 칠 무렵 문득 “이 과목이 의사가 되는데 중요하니 두 학기에 배정이 되고 학점도 이렇게 많은 것이겠지?”라는 생각에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해 겨울, 도서관에서 철학서적을 많이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의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시간의 쓰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어떻게 시간을 소비할 때 행복한지, 난 그 때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등등 스스로와 주변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나 일을 생각해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뷔페처럼 여러 책을 음미하는 김 원장의 인생의 책은 무엇일까.

그는 오당의 ‘오당본초강론’과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김애란의 ‘비행운’과 ‘바깥은 여름’을 소개했다.

‘오당본초강론’은 오당의 본초학 강론을 엮은 책으로, 상한금궤론에서 시작해 동의보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처방구성의 기본이 되는 본초의 원리를 풀어냈다.

김재범 원장은 이 책을 통해 처방에 도움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제일 큰 고민이었던 것 중 하나가 ‘약은 어떻게 쓸 것인가’, ‘한의학 공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졸업당시에는 ‘그래, 이 정도면 얼추 기본은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싶었는데 환자들에게 대가를 지불받고 진료를 하는 입장에서 ‘얼추’라는 단어는 어불성설이라는걸 깨달았다”며 “약을 지을 때마다 잘 모르던 것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얼추 알거나 들어본 것도 많은 것 같은데 구슬로 꿰어지지가 않아서 어디서부터 다시 꿰어야 하나 싶을 때 학생시절 구입해 두고 보지 않았던 이 책을 발견해서 읽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 다닐 때 읽지 않았던 건 우리 몸의 생리병리에 관한 오행적 해석과 접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상에서 꿈에 그리던 진료를 해보니 우리 몸 오장육부의 장부간 연결, 유기적인 기능관계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산재된 증상과 각장부별 변증을 통한 접근도 물론 매우 의미가 있다. 다만, 내가 처음 한의대에 입학하려고 할 때 한의학에 대해 참 흥미로웠던 부분, ‘체내 밸런스를 맞춰주어 자가 치유력을 높인다’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좀 더 다른 방식의 고민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의형식으로 편하게 쓰여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약재들 각각의 특성들, 몸 안의 생리병리에 따라 약재들이 작용하는 역할들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데 좋은 도움을 받았다”며 “한의학의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나처럼 막막하지만 의욕 넘치는 초심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 다음으로 소개한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시인인 저자가 인생의 좋고 나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또한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과 ‘바깥은 여름’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의 여러 단편소설을 묶어놓은 소설집이다.

김재범 원장은 이 두 저자의 책에 대해 “김애란 작가와 류시화 시인은 나에게 대학시절 좋은 힘이 되어주었다. 참신한 표현으로 모국어를 새롭게 공부하는 기분이 들게 해주기도 했고, 솔직하고 예리한 삶에 대한 관찰을 덕분에 겪어보기도 해봤다”며 “살다가 힘들어질 때는 여럿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혹은 ‘내가 많이 잘못되었나?’, ‘내가 이상한가?’ 싶을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나 나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상황이 아니라도 인간이라면 겪어볼 법한 일이나 내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활자나 영상으로 경험하며 생각해보는 일은 마음의 체력을 기르는 데 좋은 것”이라며 “두 작가의 책을 누군가 읽고, 따뜻함을 얻게 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고 전했다. 동시에 선후배 동료 한의사들에게 날이 추워지는 연말, 따뜻하고 건강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김재범: kimyukmi@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