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해야할 것은 元明대 백과전서에 수록된 양생의학적인 내용을 조선의 선비들이 심신수양에 활용했다는 측면과 아울러 도가교훈서 勸善書에서 권선징악에 대한 부분을 채용하여 처세의 한 방편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권 후반은『거가필용사류전집』권8(명간본 癸集) 가운데 太上感應篇, 靈驗記, 勸善錄 등의 내용을 채록한 것이어서 주로 권선서의 내용이 골간을 이룬다.
넓게 보아 이러한 양상은 조선 전기까지 사대부사회에 전해지던 도가 술수류와 양생서들이 유교 도덕률과 합리주의로 무장한 선비의 관점에서 부주법이나 환단복석, 초풍환우 같은 도술들은 미신적이거나 怪力亂神이라는 측면에서 퇴출되었고 심신수양이나 건강관리에 유용한 양생도인법과 권선서의 교화적인 요소만을 유가규범에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보완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권선서란 민간도교에 있어서 선행을 권장하는 한편 악업을 경계하고 징벌할 것을 주장하는 교화서로 일명 善書라고도 불린다. 나아가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受持讀誦하며 실천하는 행위를 선서신앙이라고 부른다. 대개 깨우치기 쉽고 일상 윤리에 관계된 것이 대부분이며, 민간도교의 聖典으로 되어 있다. 유·불·도의 3교를 융합한 내용이 위주이나 민간의 통속의료서나 음식의 공덕을 적은 것도 있다.
권선서의 원류는 동진시대 葛洪이 지은 『抱朴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ㆍ불ㆍ도 삼교의 합일사상이 강조되면서 민간에 유행했다. 대표적인 권선서로는 북송시대 李昌齡이 지은 『太上感應篇』(1146)과 『文昌帝君陰騭文』, 『關聖帝君覺世眞經』을 손꼽는데, 이 3가지가 이른바 三聖經이라고 불린다. 이는 신선이 되기 위해 金丹을 복약하거나 수련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통해 덕업을 쌓음으로써 蔭德을 구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이루었다. 훗날 날마다 선행과 과실 여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功過格신앙으로 변모되었다.
이런 선서신앙은 주로 명·청 시기에 걸쳐 왕성하게 전파되었는데, 임진왜란 시기 명군이 조선에서 전쟁을 치루면서 널리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도교의학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양생의서 뿐만 아니라 명대 儒醫의 전형이라 할 李梴이 지은『의학입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총론편 첫머리에 ‘陰騭’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雲笈七籤’ 같은 수양양생명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조선에서는 세종대 집현전에서 편찬한 의약백과전서『의방유취』인용제서에 ‘권선서’라는 略書名으로 등재되어 있어 매우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총론 첫머리에 孫思邈의 千金方을 인용하면서, 선행은 애써 알리지 않아도 언젠가 보상을 받게 되고 악행은 몰래 감추려 해도 숨길 수 없어 귀신으로부터 음해를 받게 된다고 설파하였다.
다른 한편 조선 철종 때 朴亮이 집필한 『覺世新編八鑑常目』(1856, 11권6책) 가운데에도 도교의학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전서 가운데 제11권이 醫藥鑑으로 도장경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의약방을 모아 실용에 적합하도록 편집한 것으로 도교적 색채가 농후한 내용이 많다. 또 李道純이 『道藏』에서 도가양생에 관계되는 내용만을 간추려 주해한 『道藏輯要抄』라는 필사본 의서가 전해지고 있다.
나아가 조선말엽에 이르러서는 관왕묘 신앙이 민간에 전파됨에 따라 소책자 형태의 권선서가 여러 종 편찬되었다. 예컨대, 『關帝寶訓』,『過化存神』,『關聖帝君應驗明聖經』과 이들을 한데 모아놓은 『敬信錄』과 같은 도가권선서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위와 같은 측면에서 본서는 비록 한 집안에서만 읽혀진 사본류 양생서라 하겠지만, 유가적 관점에서 재단된 전래 도가양생서의 변용 양상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