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듣기 싫은 얘기 끝까지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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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듣기 싫은 얘기 끝까지 듣기
  • 승인 2021.12.2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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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최근 우리 동네의 카페는 두 종류로 나뉘었다. 일회용 컵이 공짜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다. 일회용 컵이 공짜인 곳은 예전처럼 이용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스스로 쓸 컵을 가져가거나 다회용 컵을 보증금 1000원을 내고 ‘빌려’ 써야 한다. 나 혼자서 마실 때야 내 머그잔을 들고 찾아가면 되는데 문제는 직원들이나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할 때 생긴다. 잔마다 천 원씩 더 내고 대접한 후 챙겨서 씻어가거나 조금 머쓱한 마음으로 평소와 다른 카페로 간다. 내가 번거롭거나 머쓱할 필요가 있는 걸까?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이 짧은 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이 머쓱함이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출간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출간

이 책의 저자는 환경 휴머니스트라고 자신을 본다. 밀도가 높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면 인간이 더 편리하게 생활하게 될 뿐 아니라, 더 좁은 면적에서 충분한 에너지와 식료를 생산하게 되어 환경을 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로 쓰인 이 책은 반가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환경을 위해 가방 속에 실리콘 빨대며 에코백, 다회용 컵을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고기가 먹고 싶지만 환경이 걱정된다면 신경 쓰지 말고 먹어도 된다. 원래 사람은 고기를 먹는 것이 건강에도 이롭다. 환경을 아끼자고 하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일상에서는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환경 양치기’들의 말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의 정서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그동안 느끼던 머쓱함을 상쾌하게 덜어주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의 초반은 “멸종저항”이라는 조직의 과격시위 풍경과 “수십 년 이내로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는 종류의 예언이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에 대비해 경제적 빈궁에 처한 콩고의 현재를 보여준다. ”다음번에 또 홍수가 날 때 베르나데테(저자가 취재한 콩고의 주민)의 집이 무사할지는 (중략) 기후 변화 예측 모델 중 어떤 것이 맞고 틀리는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베르나데테의 집이 안전할지는 그런 여건을 갖출 수 있는 돈이 베르나데테에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베르나데테가 안전을 확보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경제가 성장해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극단론자와 우울한 비관론자에 대한 부정적 의견에 깊게 공감하며 쭉쭉 읽어나가다가 처음으로 덜컥 멈춰 서게 된 것은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균 기온이 4도 오른 지금 이상의 인구에게 깨끗한 물과 식량, 거주지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는 연구자의 말에 대한 반박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해도 식량 생산은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를 든다. 식량 생산의 증가가 정말 가능한가? 그리고 정말 증가한다면 기온 상승으로 인한 이산화탄소량의 변화나 해안선 변화, 사막화 같은 요소들에 대한 문제가 생겨도 인류에게 더 좋은 건가? 이때부터 도무지 읽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종이백을 쓰려면 44번은 써야 비닐백보다 친환경적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44번 이상 쓰면 되지 않나, 44번은 출처는 무엇일까 생각이 든다. “사냥당하는 고래의 숫자는 매년 총 2000마리를 넘지 않는다.” 고래 개체 수가 줄었으니까 그렇지. “지금껏 방사능 폐기물 때문에 사람이 죽거나 다친 일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옆 나라에서 1999년 방사능폐기물 재처리공장 사고로 사람들이 죽었고, 원전 사고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땅이 실제 존재하잖아. 10분 읽고 15분씩 반론을 찾아보는 식으로 계속 뒤적거리며 읽다 보니, 저자도 아마 환경보호를 하자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 나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행동을 했을 거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자기 생각에 어울리는 자료를 찾고, 맘에 들지 않는 자료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아니다”라고 눙쳐버린다. 맘에 드는 자료는 숫자와 매력적인 인터뷰를 자세히 곁들여 소개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환경보호론자들) 중에 가장 공감 얻기 힘든 사람들(멸종저항 조직)을 대표적인 사례로 내세운다.

환경은 과학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향의 의견을 가졌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측면이 보인다. 이는 의학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하고도 비슷하다. 최근 문제가 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수많은 논쟁거리 –백신효과나 방역단계나 자가격리기간이나 치료방법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의견이 생기고 나면 다른 이의 의견을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다. 듣는다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기 위해 듣는 게 아니라 반박 거리나 약점을 찾기 위해 듣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타인의 의견을 다 들은 후의 나는 듣기 전의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가졌을 것이다. 일단 비닐봉지든 종이봉지든 나한테 있는 걸 계속 써야겠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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