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한의학적인 연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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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한의학적인 연구란 무엇인가?
  • 승인 2022.01.0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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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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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한의원의 인류학: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최근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한의학 연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논의된 많은 이슈 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의학의 장점으로 “전인적”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서양의학도 전인적인데 어떻게 이 말을 굳이 한의학만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였다. 최근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통해 줄 이어 여러 시스템 사이의 연계성(예를 들면, 장과 피부, 장과 뇌, 뇌와 피부, 뇌와 면역 등)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에 따라 서양의학에서도 (그 결은 다르겠으나) 전인적이란 용어가 당연하게 생각되는 시대로 변화해 가는 트렌드를 지적한 말이었으리라.

김태우 지음, 돌배게 출판사
김태우 지음, 돌배게 출판사

이 회의를 계기로 필자는 연구에 앞서 한의학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객관적인 시각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문득 떠오른 책이 “한의원 인류학”이란 책이다.

이 책은 의료인류학자인 저자가 서양의학과의 대비를 통해 한의학이라는 현지로의 여행을 기록한 것인데,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관찰자로서, 그러나 깊숙한 내면까지 탐구한 내용이 매우 흥미롭고 생생한 언어로 펼쳐진다.

인류학의 기록은 일종의 여행기라고 한다. ‘현지 조사’라 불리는 여행을 통해 장기간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다. 그러나, 인류학은 관찰자 시점의 보고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현지 조사를 통해 층층의 조건들 위에 드러나는 문화현상의 심연까지 바라보고 기록하는 학문”이기에, 의료인류학을 통해 보여주는 한의학의 모습은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저자는 의료현장, 바로 병원과 한의원의 대기실에서, 그리고 서양의학과 동아시아의학(한의학)의 대비를 통해, 때로는 철학과 예술의 관점을 통해, 고정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의학에 대해 관찰하였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 결과, 저자는 몸에 관한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몸을 규정하는 시선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며, 또한 우리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를 산다.” 그리고 이러한 몸에 대한 시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연결고리에 의료가 있음을 얘기한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적인 관찰을 통해 알게된 한의학에서 몸을 바라보는 핵심 관점으로 양상을 가진 중층의 “흐름‘과 “연결(망)”에 주목하였다.

동아시아의학은 환자를 파악함에, 고정, 독립된 대상으로 보지 않고 “흐름”을 살핀다. 그러므로 진단에서도 “흐름이 순조롭지 못할 때 드러나는 상황”을 읽어 내고자 한다. 진단과 병명에서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면, 치료도 당연히 흐름을 바로잡는 것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전제로 하며 어제와 지금이 다르기에 한의사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환자 몸에서 나타나는 흐름의 변화에 주목한다.

원래 “치(治)”라는 말은 원래 물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흐름이 순조롭지 못할 때 질병을 경험하게 되고, 한약이나 침을 통해 이뤄지는 “치(治)”의 과정은 그 흐름을 다시 순조롭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침을 이용한 “치(治)”의 과정은, 경락을 통한 인체의 연결성이 극적으로 나타나는 현장이다. 예를 들어, 새끼발가락 부위에 있는 족태양방광경 경혈에 자침을 할 때 그 흐름의 이상이 발현되는 곳은 경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눈, 머리 영역 뿐 아니라 안으로 오장육부 중 방광을 향하기도 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필리프 테스콜라가 제시한 몸-존재에 대한 인류 이해 분류를 인용하며,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개념을 이용하여, “세계를 자연과 문화, 자연과 인간으로 분절해 이해하는 서양의학이 ‘네추럴리즘’”에 해당한다면 “존재들의 기저를 흐르는 이치에 주목하는 동아시아의학은 ‘아날로지즘’”에 해당한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다양한 몸에 대한 관점은 좋고 나쁨, 우울하고 열등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름”에 기인한다.

이처럼 다양한 의학적 차이는 철학과 사유에 따른 몸에 대한 관점의 반영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이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느냐의 핵심은 몸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진단하고 치료를 했을 때, 반드시 환자의 질병 혹은 불균형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한의학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몸-마음-자연을 연계하는 사유과정을 넘어 임상적 결과, 즉 치유과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적인 연구란 무엇일까에 생각해 본다면 우선, 한의학이 갖고 있는 몸에 대한 생각과 임상적인 가치를 가시화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의과학자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네추럴리즘과 아날로지즘의 간극은 ‘연구’라는 다리를 통해 상호 이해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구에 있어서 “흐름”과 “연결성”에 대한 관점은 매우 중요한 창의 과정의 시작이다. 이와 같은 몸을 바라보는 한의학적인 관점은 미처 기존 과학계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생명에 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한의학적인 연구란, “흐름”과 “연결”에 담겨 있는 몸을 바라보는 지혜와 임상적 가치를 연구라는 도구를 통해 규명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연구를 통한 결과물들은 단지 한의학의 발전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인류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진보를 이끌어 낼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장-뇌축기반 맞춤형 침치료기전 연구실 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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