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사후세계에 대한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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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사후세계에 대한 스포일러
  • 승인 2022.01.2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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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mjmedi@mjmedi.com


도서비평┃티베트 死者의 書

한의대 예과 2학년 무렵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에 참가하고 있을 때이다. 7월 7일부터 전국의 한의대생 150여 명이 선생님 자택인 남양주 팔야리 철마산 기슭에서 강의를 들었다. 장마철이 시작되자 비가 며칠에 걸쳐 왔다. 원래 텐트에서 잠을 자며 강의를 들었는데, 폭우로 강의장에서 앉아서 졸면서 밤샘 강의를 들어야 했다. 다음 날 근방 사찰의 스님이 물에 떠내려가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드마 삼바바 지음,
백봉초 편역, 경서원 출간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함께 티베트 사자의 서를 꺼내서 읽으셨다. 이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섭다가도 나중에는 편안해졌다. 선생님께서는 죽었을 때 사자의 서를 읽어주기만 해도 영혼이 죽음 속에서 정신 차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을 때 이 책을 읽어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지난달 돌아가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사자의 서를 펼친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후 중간상태인 중음 49일 동안 죽은 자를 인도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에는 죽은 자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방황하는 영혼이 이승에서의 인연을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리고 투명하고 빛나는 것을 보며 자신을 空으로 인식하는 순간 해탈하도록 죽은 자를 위해 기도를 한다.

두 번째 부분에는 죽은 날부터 죽은 자를 안내하는 기도문이 나온다. 죽은 자를 부르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형상을 인식하도록 안내한다. 사후 죽은 영혼이 볼 수 있는 구원의 인물은 모두 이상한 형상을 하고 있기에 죽은 자는 겁을 먹거나 어두운 곳으로 숨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어주면서 구원하러 오는 형상을 겁내지 말고 구원자로 인식하는 것이 요점이다.

세 번째 부분에서 죽음 이후에 경험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원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 만날 수 있는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옥에 대한 경험들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벗어날 수 있다. 죽은 자가 깨어 있지 못하거나 자신이 만든 업에 가려 인식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사자의 서를 읽어주어 깨우쳐 줄 수 있다.

네 번째 부분에서는 환생을 막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환생을 위하여 자궁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옆에서 일깨워주는 것이다. 중음에서 방황하다 보면 겁에 질려 숨을 수 있다. 그곳이 편안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자궁이라면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죽음, 밤, 어두움, 영혼...... 등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에 대해 깊은 관찰을 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귀결된다. 죽음에 대해 깊은 명상을 한다면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되는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삶과 죽음이 사자의 서에서 나타난 것처럼 내가 만든 허상이라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예전에 선생님과 울진의 모처에서 공부할 때 경험한 일이다. 경전을 공부하다가 그날 밤에 유체이탈을 경험한 적이 있다. 붕 뜨는 느낌으로 내가 자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너무 무서워서 바로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잠에서 깨었다. 이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좋은 경험이니 즐겁게 받아드려 보라고 하셨다. 다음날에도 난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인식의 차이였을까? 너무나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몸속에서 벗어나 날아다니는 경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만 하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바로 갈 수 있는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그날 이후 다시는 경험을 못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것이 유체이탈인지 꿈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사자의 서에서 말하듯이 중음에서 방황하는 영혼의 세계가 혹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많은 고민을 던져주셨다. 사자의 서를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길을 헤매지 않고 잘 가시기를 기도드리고 있다. 이생에서 인연과 집착을 다 던져버리고 해탈하시길 사자의 서를 읽으면서 도와드리고 있다. 나 또한 늙으면 죽을 것이다. 내가 아끼는 가족들과 헤어질 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와 습성에서 벗어날 시간이 올 것이다. 이때 나를 위해 누군가 사자의 서를 읽어준다면 행복할 것이다. 혹시라도 사자의 서를 들어도 알지 못하고 방황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공부도 해야 한다.

 

정유옹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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