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다시 한 번,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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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다시 한 번, 재즈
  • 승인 2022.02.1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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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효

이현효

mjmedi@mjmedi.com


도서비평┃Jazz It Up

이 책은 역사책이다. 재즈에 관한 역사. 그렇다면 역사를 왜 배우는가? 뮤지션들을, 수많은 명곡과 명반들을 체계적으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각가학설을 배우지 않았다면, 보중익기탕과 자음강화탕이 어디서. 왜. 어떻게. 나왔는지를 꿰어낼 수 있었겠는가.

남무성 지음, 서해문집 출간

1900년~1930년대는 재즈의 여명기다. 재즈는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다. 항구도시라 면화목장이 많아 흑인노예수요가 많았던 이곳은 흑인의 노동요가 구전되며 재즈의 중요한 뼈대가 된다. 루이 암스트롱이 이시기의 사람으로 그의 인기비결은 스캣. 뉴욕 할렘 코튼 클럽에서 인기를 얻었던 듀크 엘링턴. 1930년을 스윙의 시대로 만든 인물이다.

1940년대는 모던재즈의 초석 비밥이 시작된 시기다. 2차 대전으로 댄스클럽을 중과세하면서 화려했던 빅밴드, 스윙밴드의 시대는 저문다. 비밥을 여는 뮤지션은 버드와 몽크, 길레스피다. 버드가 바로 찰리 파커. 스윙시대의 4비트 음악은 비밥시대에 8비트가 기본으로 바뀐다. 40년대 최고의 트럼페터는 디지 길레스피였다가, 40년 후반 마일스 데이비스가 부각된다.

50년대는 2차대전이 끝나고 긴장이 완화되며 안정적인 정서가 재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역동적이고 거친 비밥에 비해 차분한 쿨 재즈가 유행하게 된다. 쿨재즈를 한층 지성적인 음악으로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데이브 브루벡. 그의 곁에는 알토 색소폰 주자 폴 데스몬드가 있었는데, 저 유명한 Take Five를 작곡하여 브루벡 밴드를 최고의 스타로 만든다.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람이 마일스 데이비스로 그의 생애는 곧 재즈사와 같다. <Birth of the Cool>은 50년대 쿨재즈의 상징이었으며, 색소포니스트 소니 롤린스와 만든 앨범<Dig>은 하드밥의 효시이며, <Kind of blue>는 모달 재즈의 걸작이다. 50년대 중반 하드밥의 스타는 아트 블래키. 그의 밴드인 재즈 메신저스다. 여기 트럼페터중 한명이 리 모건으로 불멸의 Sidewinder, 라틴 감성의 하드밥 넘버 ‘Ceora’를 작곡한 인물이다.

60년대는 혼란의 시대. 미소냉전체제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 케네디 암살 등으로 어지러웠다. 로큰롤이 찬란한 꽃을 피우며, 재즈 뮤지션들의 입지가 좁아졌고, 가장 파격적인 프리재즈의 바람이 분다. 존 콜트레인과 오넷 콜맨의 시대였다. 비밥의 전통위에서 아방가르드를 시도한 것이 에릭 돌피였다면, 모던재즈의 질서를 파괴하며, 기성의 하모니를 무시한 것이 오넷 콜맨이다. 1970년대 포스트프리재즈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키스 자렛이다. 83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스탠더드 트리오는 재즈사에서 빌 에반스 트리오 이후 가장 큰 자취를 남긴 피아노 트리오다. 70년대 유행했던 일렉트릭 사운드를 도입한 허비행콕과 컨템프러리 재즈의 이정표를 세운 팻 메스니도 빼놓을수 없다. 80년대 들어 재즈의 정통성 회복을 부르짖었던 윈튼 마살리스도 있다. 윈튼의 형인 브랜포드는 Mo better blues로 유명하다.

음악은 선물이다. 핍박받던 흑인들의 영혼을 구원한 위대한 예능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20세기초 미국 남부 촌뜨기 음악에서 미시시피 강을 건너 캔자스와 시카고를 거쳐 빅애플(뉴욕의 애칭)의 밤을 점령했고, 100년 넘게 진화하며 전 세계로 퍼졌다. 그동안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었지만, 만화로 읽으며, 재즈가 한창 가까이 내게 다가옴을 느낀다.

 

이현효 / 활천경희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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