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뇌수해 - 해결의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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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뇌수해 - 해결의 때가 온다
  • 승인 2022.0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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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입춘도 지났다는데 연일 한파가 이어지는 중이다. 확진자는 쏟아져나오고 오미크론이 감염 우세종이 되어가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이제 더 이상 코비드 19라고 부를 수 있나 싶기까지 한 이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는 예측이 나온다. 물론 인간이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미 다 되어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영하의 한겨울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어렵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영상의 기온에는 그냥 가만히 놔둬도 눈이 녹아 없어진다. 뇌수해괘는 이러한 상황을 나타내는 괘이다.

해괘의 괘사를 보자.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吉 有攸往夙吉

彖曰 解險以動 動而免乎險解 解利西南 往得衆也 其來復吉 乃得中也 有攸往夙吉 往有功也 天地解而雷雨作 雷雨作而百果草木 皆甲拆解之時大矣哉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그쪽의 땅이 평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갈 바가 없다는 것은 서남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는 갈 바가 있으면 서둘러 해야 길하다고 했다. 이것은 시간상으로 서남쪽으로 가기 전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전에 나온 대로 현재 머문 곳이 험하거든 움직여야 하고 그 결과로 도착한 곳이 서남쪽이면 이롭다는 의미로 본다. 서남쪽에 도착하기만 하면 무리도 얻고 중앙도 얻고 가서 공도 있다. 이보다 더 잘 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일단 초효를 보자.

 

初六 无咎

 

주역의 효사 중 가장 간결한 효사 중의 하나이다. 그저 허물이 없다는 한 마디가 전부이다. 상전에는 剛柔之際 義无咎也라 했다.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서로 사귀니 의로우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초육은 구사의 짝이고 서로 음양응이 된다. 제 짝과 의롭게 사귄다 하면 일단 절반은 이미 이룬 것이다. 그런데 다른 효사들 중에도 이런 상황에 놓인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유독 해괘의 초육만 허물이 없다는 단 한마디로 서술한다. 그 이유를 나는 그저 때와 장소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허물이 있고 없음은 아주 큰 틀이 아닌 이상 항상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옆에 있는 것이 검은 것이면 회색은 희게 보이고, 옆에 있는 것이 희면 회색은 검어 보인다. 지금은 초육이 허물이 없는 위치와 시간에 있는 것이다.

 

九二 田獲三狐得黃矢 貞吉

 

황색은 오행 중 중앙에 배속되는 土의 색이다. 상전에는 九二貞吉 得中道也라 하였다. 가운데를 얻어 길하다는 것이다. 구이는 육오의 짝이고 구이가 사냥하는 세 여우는 육오에서 나오는 소인일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 효의 자리는 원래 음의 자리이지만 양효인 구이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이가 육오 대신 소인을 제거하고 내괘의 중앙에 버티고 있는 것으로 일이 해결된다. 그러므로 바르게 하면 길하다.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吝

 

짐을 져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도리어 그 짐 위에 올라타고 있다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물건은 그것이 쓰일 장소와 시간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데 고성능 노트북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는 금은보화도 아무 소용이 없다. 육삼은 그 물건을 지고 날라야 하는 입장인데 도리어 그것을 올라타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갈 바를 두었으면 속히 가야 하는데 멈추어 있으면 결국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도적떼를 만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짐을 지기 싫어서 그 자리에 멈추어 있기를 택하는 것은 소인이 하는 짓이고 흉한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 해도 자기 외에는 탓할 사람이 없다.

 

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구사는 양이 음 자리에 있어 올바른 자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초육과 음양응이 되는 상황이고 엄지발가락에 해당하는 초육은 허물이 없는 위치와 시절에 있다. 그런데 초육을 풀어버리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음양이 서로 응하는 것은 자석의 다른 극끼리 붙는 것과 같다. 구사가 자기 짝인 초육을 떼어낸다면 구사는 바로 아래의 육삼과 응할 수 있다. 초육이 잡아당기는 힘이 없다면 구이도 육오와 응하며 육삼의 아래에서 위로 밀어올릴 수 있다. 짐을 타고 움직이지 않고 있는 육삼을 밀어올리고 끌어당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승하는 길목으로 오는 벗은 구이일 것이고, 구이가 육삼을 밀어올리며 올라온다면 도적을 만나지 않고 육삼이 지닌 것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니 자기 짝임에도 불구하고 초육을 풀어버리라고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六五 君子維有解吉 有孚于小人

 

상전에 君子有解 小人退也라 하였다. 소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흔하게 있을까? 위협이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소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계산이 맞아서이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때가 온 것이다. 그 때를 알고 기다리는 것은 군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안목이다. 소인에게 미더움을 둔다는 것은 소인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소인이 스스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상육은 본래 육삼의 짝이지만 음양응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음이 음의 자리에 있어 바른 자기 역할을 하고자 한다. 상전에는 公用射隼 以解悖也라 하였다.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풀어 없애는 방법으로 활을 쏜다는 것이다. 활을 쏴서 무언가를 잡는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활시위를 놓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야 나는 새의 궤적을 예상하여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 매를 잡으려면 그물 덫을 놓는 방법도 있고, 생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극약이 든 먹이를 뿌려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활을 쏘는 방법으로 매를 쏘아 맞춘다는 것은 그렇게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고, 또한 바로 지금 이 때에 매를 잡아 남들에게 본을 보이겠다는 뜻이다. 소인의 시대가 끝났음을 정식으로 알리는 의식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갑자기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풀려나가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것은 정말로 ‘때’의 문제일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때가 왔을때 어느 방향을 보고 가는지도 중요하다. 이 마법같은 타이밍이 얼마나 오래 가게 될지,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그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안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운이 좋은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운이 좋을 때는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편법이나 꼼수가 그 호운이 끝났을 때 다시 횡액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해괘의 타이밍은 오랜 어려움 끝에 찾아오는 기회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며 눈이 녹으면 지난 겨울의 추움과 배고픔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는 다른 기회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어려워서 손도 대지 못할 것 같았던 문제에 해법이 찾아오는 것, 그것이 해괘의 타이밍이다. 그러니 최소한 쉬운 문제라도 풀 수 있는 실력은 갖추자. 그렇지 않고 그저 멈추어 있다면 도적을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육삼과 같은 처지가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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