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실패만 계속되는 아홉수들의 또 다른 실패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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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실패만 계속되는 아홉수들의 또 다른 실패를 위해
  • 승인 2022.02.1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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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틱틱붐
감독: 린 마누엘 미란다출연: 앤드류 가필드, 알렉산드라 쉽, 로빈 드 지저스 등
감독: 린 마누엘 미란다
출연: 앤드류 가필드, 알렉산드라 쉽, 로빈 드 지저스 등

우리나라에는 ‘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9살, 19살, 29살 등 ‘9’가 들어가는 나이가 되는 해에는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미신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은 어쩌면 유아에서 청소년, 청소년에서 성인, 20대 사회초년생에서 30대 사회구성원으로 발돋움하는 단계를 앞두고 생기는 불안감에서 만들어진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나단 라슨’은 바로 이 아홉수를 진하게 겪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은 비록 식당에서 서빙을 겸업하고 있지만 본업은 뮤지컬 작곡가이며, 8년 동안 준비해온 역작 ‘슈퍼비아’가 완성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의 모든 삶의 열정은 뮤지컬에 있고, 이 뮤지컬을 위해서라면 가난쯤은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없다. 위대한 뮤지컬 작곡가들은 이미 20대에 대작을 만들어냈는데 존은 서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도 ‘슈퍼비아’를 완성하지 못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기에는 돈도 경력도 없이 시간만 지났다.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닌데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마음은 아직 20대 그대로인데 주위 환경은 꿈만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에 멈춰있지 않다.

영화 제목인 ‘틱, 틱...붐!’은 시계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폭탄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를 조여오는 남은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면서 조나단의 선택을 강요한다. 데드라인은 조나단 라슨의 서른 살 생일이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와 선택지가 찾아온다. 슈퍼비아 워크숍이 있고, 이사를 가는 여자친구를 따라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 뿐인가? 당시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이즈’가 주변 친구들의 주위를 도사리고 있다.

1990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지만 정서는 오히려 한국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른살이 된다고 당장 지구가 멸망하거나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19살에는 수능을 쳐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20대 중후반에는 취업을 하며, 30살이 될 무렵에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아 능숙한 업무능력과 결혼, 임신과 출산 등을 경험하는 ‘표준모델’을 기대하는 정형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서른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아홉수 청년들에게 아홉수 선배이자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인 조나단 라슨이 선사하는 뮤지컬이다.

위대한 뮤지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해밀턴’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 ‘린 마누엘 미란다’가 심지어 영화연출까지 잘한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스파이더맨’일만큼 몸도 잘 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 ‘앤드류 가필드’는 심지어 노래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이 영화로 2022 아카데미 어워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결과는 3월이 되어봐야 알 수 있지만, 이미 이 영화는 감히 ‘천재들의 파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조나단 라슨이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이기 때문에 혹시나 전형적인 감동 자수성가 스토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서른이 지나고 나서 언젠가 힘들지 않은 날이 온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서른이 된다고 해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으며, 인생은 계속되고,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이야기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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