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다음 중 올바른 선택을 고르시오
상태바
[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다음 중 올바른 선택을 고르시오
  • 승인 2022.03.04 0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니 대체 왜 그랬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지고 화가난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확인도 안하고 입금을 했을까? 사이즈도 확인 안하고 물건을 샀을까? 누군가 문제로 출제해주었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인에게 입금하기 전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다음 중 장갑을 구입하는 순서로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판단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인지심리학에 관한 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학습 자체에는 문제집이 필요하다. 의료인이나 환자,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실전 문제집이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이다.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한빛비즈 출간

이 책은 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임신 출산에 얽힌 문제들>, <죽음을 둘러싼 문제들> 이렇게 여섯 가지로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들을 <자주 출제되는 문제>, <예습이 필요한 문제>, <합의가 필요한 문제>, <함정 문제>로 읽었다.

 

<자주 출제되는 문제>

의료인과 다른 환자를 위협하는 환자나 자신의 건강을 방치하는 환자는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낯익은 문제이다. 받을 수 없는 혜택을 받기 위해 뻔한 거짓말을 하는 환자도 겪게 되고 "원장님만 알고 계셔 주세요"라는 말-상담은 의료기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대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을 하는 환자도 있을 수 있다.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하고 무심히 넘겨서는 환자를 충분히 돕지 못하거나 분란을 만날 수 있다.

 

<예습이 필요한 문제>

의학과 사회가 발전하면서 "살려놓는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다. 그 결과 본인과 가족의 삶의 경계선을 자연에만 맡겨두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명을 5년 연장하기 위해서 본인이나 가족과 사회의 자원을 얼마나 투입해야 할까? 그 5년이 의식이 없는 5년이라면? 극심한 고통이 있는 5년이라면? 혹 5년 사이에 상속 법제도가 바뀐다는 변수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문제는 기존에는 존재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누구든 맞닥뜨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충분한 의견을, 특히 죽음을 맞을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다.

 

<합의가 필요한 문제>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2월 말은 코로나 19와 함께 지낸 지 3년째이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백신을 강제할 수 있을지, 전파력이 강한 보균자를 어디까지 통제해야 할지는 중대한 고려사항이다. 개인의 건강권과 자유, 감염 시의 비용 부담과 연구 절차상의 윤리까지 얽혀있는 이 문제는 개개인의 뜻으로 즉답하고 결정할 수는 없다. 코로나 19가 지나간다고 해도 또 다른 감염이 등장할 것은 분명하다.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나 개인의 유불리가 생기지 않은 시점에서 미리 생각해보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정 문제>

죽음에 대한 선택지가 생겨버렸듯이 출생과 성장에 대한 선택지도 생겼다. 아기를 어떻게 낳을지 어떤 유전자의 아이를 낳을지 선택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문제는 SF 작품에나 나올 거 같지만, 최근 나부터가 건강기능식품회사와 보험컨설팅업체에서 제공하는 장내 미생물 검사와 치매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이야기다. 실제 이 책에 나온 사례들 – 장애가 있는 자녀를 평생 돌보기 위해 성장을 막는 수술을 시키거나, 특정 유전적 특성이 있는 아기를 낳고자 하는 사례 – 는 실제 사례이다.

이런 문제들의 답은 이 책에만 없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없다. 비슷한 문제나 참고문항, 선례가 있을 뿐이다. 이 책에 답은 없지만 많은 문제와 다양한 시선이 들어있고 다행히도 읽기 편안하다. 적어도 문제가 닥쳤을 때 문제인 줄 알아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다음 중 올바른 선택을 고르시오.

 

김린애 / 상쾌한의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