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상태바
[영화읽기]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승인 2022.03.11 0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효원

배효원

mjmedi@mjmedi.com


영화읽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감독: 김초희
출연: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여유가 되면 가끔 듣곤 하는 라디오에서 영화 대사가 흘러나왔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단 한 줄의 대사가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찾아보게 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러닝타임 96분의 독립영화로, 길지 않은 상영 시간 속에 삶에 대한 근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프로듀서인 찬실은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는 회식 자리에서 줄곧 따라왔던 감독님의 농담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달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는 찬실. 오직 영화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인생에서 찬실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되어 다시 한번 삶의 출발선에 서서 자신만의 성장을 시작한다.

영화는 찬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 입체감 있게 다가온다. 누구보다 찬실을 믿고 따르는 배우 ‘소피’는 발연기를 한다는 악플을 받고 괴로워하면서도 하루아침에 잊어버리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본인의 성격이 ‘근심 소, 피할 피’자를 사용하는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귀여움에 절로 웃음이 난다. 찬실의 주인집 할머니는 삶에 대해 해탈자와 같은 태도로 오늘 하고 싶은 일만, 대신 애써서 하며 살고 있다. 무심한 듯 보이는 할머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찬실에게 삶은 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조용히 흘러가는 영화지만 중간중간 머리와 가슴을 치고 가는 대사들이 몰입감을 준다. 자신을 설레게 한 연하남 ‘영’에게 거절당하고 영화에 대한 마음도 확신하지 못하는 찬실에게 전하는 ‘장국영’의 위로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감독의 위로처럼 들린다.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찬실씨, 찬실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만 더 힘을 내 봐요.”

필자의 가슴을 울렸던 주인집 할머니의 시 -“사라도 꼬처러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씀미까”. -는 할머니의 흘러간 세월을 보여주는 동시에 감독을 잃은 후 억눌러온 찬실의 마음을 대변한다.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누구나 한 명쯤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주변 인물들과의 교감, 자아 성찰의 반복을 통해 찬실이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고,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새로운 삶의 방향이 시작되곤 한다. 찬실이 복이 많은 이유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기회를 얻게 됨으로써 삶의 주체성을 찾았다는 점에 있다.

영화의 시작에 ‘영화는 숫자가 아니다, 별 하나 별 두 개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네이버 평점 9점대에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좋은 영화로 평가받았다. 특히 찬실 그 자체인 듯한 강말금 배우는 7개의 연기상을 받으며 실제 마흔 초반의 나이에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거나 무료함이 느껴질 때,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함과 위트 섞인 대사들로 위로받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배효원 / 한의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