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15) 마음이 오고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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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15) 마음이 오고가는 길
  • 승인 2022.03.1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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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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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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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길이 없던 곳에 새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우거진 수풀을 베어내고 돌을 치운 누군가의 노력 덕분이다. 이렇게 생긴 새 길은 잡초가 무성하기 전에 왕래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길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도 그렇다. 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고 타인의 마음은 받아들이는 길이 있다. 이 길도 자주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야 이 길이 유지된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남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면 마음의 길이 사라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막상 마음을 표현하려면 어색함이 가로막기도 하고 과거에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받은 기억이 떠올라 다시 외로움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들면 결국 마음이 오가는 길은 사라진다. 어느 날부터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 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입 속에서 맴돌기만 한다면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어느 날 아침, 둘째 녀석이 눈도 다 못 뜬 채로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보물이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 왠지 알아? 아빠한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니까, 그래서 아빠도 나한테 제일 소중한 보물이야.” 그 순간, 아들과 나 사이에 아름다운 길이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아들도 아빠를 사랑하고 있겠지’라고 짐작만 할 때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사랑은 가슴속에 머무를 때보다 상대에게 닿을 때 빛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표현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든다고 감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 지언데 밖으로 표출하는 빈도는 확연히 줄어든다.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과 어른스러움은 별개다. 삶의 장면마다 피어오르는 감정이 적절하게 표출되지 못하면 터지지 못한 불발탄처럼 마음속에 쌓인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상처 입은 경험도 늘어간다. 이런 경험은 대부분 타인과의 교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교류가 줄어들면 마음의 길은 막히고 만다. 밖으로 표출하는 길이 막히고 안으로 받아들이는 길도 막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지만 남의 말도 듣지 않는 외골수로 변해간다. 주변에서 이런 어른 한두 명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누가 봐도 외골수다. 자신의 마음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일쑤다. 점점 세상과 단절되고 가족들과 멀어진다. 정작 본인은 외롭고 답답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그것을 받아줄 사람도 없다. 
 외골수로 늙지 않으려면 사소한 것부터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기 어렵다면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고 조금씩 기록해보는 것이 좋다. 내 마음을 솔직히 적어보는 것은 밖을 향한 표현의 시작이다. 매일 아침의 기분과 생각들을 짧게 메모하다보면 표현력이 점점 느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가까운 사람에게 표현해보는 단계다. 가까운 사이니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고맙다고 표현해보는 거다. ‘그동안 늘 생각했던 건데 나 챙겨주느라 매일 고생이지? 항상 고마워~’ 정도로 가볍게 그리고 자주 표현하다보면 자연스러워 진다. 닫혀있던 것 같던 마음의 길이 열리고 오고가는 표현도 다양해진다. 마치 산속에 새 길이 난 것처럼. 
 표현하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의 위대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표현이 서툴지만 좋은 사람이 많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심이 전달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두 번의 실수나 오해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표현이 중요하다. 좋은 마음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오해라도 해명하지 않으면 풀 수가 없다.    
 1%도 안 되는 표현을 통해 99%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게 하려면 표현해야 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표현’을 체득한 사람은 고독한 외골수로 늙지 않는다. 마음의 길이 안과 밖으로 모두 열려 얼굴 표정이 부드럽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경성(硬性)의 시대를 살았지만 연성(軟性)을 잃지 않은 어른을 보면 저절로 호감이 생기듯, 나도 연성(軟性)의 어른이 되고 싶다. 
 “친구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는 탈무드 속 구절을 떠올려본다. 연성(軟性)을 잃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ps) <고마워. 사랑해. 보고 싶어. 미안해.> 어떤 말이라도 괜찮다. 이 글을 읽은 지금, 떠오르는 사람에게 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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