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바다 개구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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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바다 개구리는 없다
  • 승인 2022.03.1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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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임포스터

미국의 전 영부인인 미셸 오바바나 셰릴 샌드버그, 나탈리 포트만, 가수 아이유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나 객관적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이 사기꾼 같다는 느낌을 표현하곤 하였다.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운이나 타이밍이 좋았다거나 다른 사람 때문에 존경받는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므로 주변을 속이며 산다고 믿는 이런 불안한 심리를 ‘임포스터 신드롬’이라고 말한다. 1978년 클랜스와 아임즈(Clance & Imes)는 이런 내면의 비밀스러운 두려움을 ‘임포스터이즘’이라고 명명했다. 임포스터이즘은 DSM-5에서 분류된 질환명은 아니지만 일반인 중 70% 정도가 평생에 한번 정도는 겪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험이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 자신을 ‘의도하지 않은 사기꾼’이라고 말했을 정도이고, 미국 문단의 큰 별인 마야 안젤루조차 책을 집필할 때마다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날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였다.

리사 손 지음, 21세기 북스 출간
리사 손 지음, 21세기 북스 출간

임포스터 신드롬은 주로 성공한 여성들에게서 빈번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연구들에 따르면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임포스터이즘을 경험한다고 하며, 자신이 어떤 집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때 더 쉽게 이에 노출될 수 있다고도 한다. 타인의 평가에 두려움을 느낀다던지, 자기 능력을 평가절하하거나, 완벽주의,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또한 성공도 두려워하는 것이 임포스터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자신의 무능이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성공해도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가 없고 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저자인 콜롬비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리사손 역시 어린 시절에는 착한 딸, 좋은 학생, 성인이 된 이후에는 완벽한 엄마, 훌륭한 교수로서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메타인지를 연구하면서 비로소 진실 된 자신을 찾을 수 있었고, 완벽하지 않은 나를 드러내는 순간 메타인지가 시작되어 임포스터이즘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메타인지란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인식, 즉 인지를 인지하는 상위개념의 능력이다. 최근에 부각된 개념이지만 이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있는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논어의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라는 동서양 고전의 문구에서도 그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메타인지는 학습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도전과 배움,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으며, 이는 사실상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인지기능인 셈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 창피함을 무릅쓰고 실수를 극복하는 용기,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그러한 용기를 발휘하기 위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진솔하게 자신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여 노력해서 잘한 부분은 칭찬하고,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보완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유퀴즈 지구촌 능력자들 편에 출연했던 구글의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의 일명 ‘우물 안 개구리’ 인터뷰가 임포스터이즘의 현상과 해독제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어 이에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최상의 복지와 업무환경을 제공하지만, 전 세계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구글에서 그녀는 ‘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실력이 없다는 걸 누군가 알아챌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불면, 불안증, 폭식 등의 증상으로 1년을 보내다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상담사의 ‘당신 몸이 지금 에너지가 필요해서 살려고 먹는 거다. 인터넷을 계속 보는 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서이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으며 안정을 찾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장점을 다시 보게 되면서 자존감을 점차 되찾았고, 혹독한 평가가 다시 시작되는 시즌에 용기를 내어 직장의 전체 동료들에게 개개인의 소중한 가치를 잊지 말자는 우물 안 개구리의 이야기를 담은 이메일을 보내게 된다.

‘모두 다 보석 같은 사람들이고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괴롭다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향했던 바다였지만, 한국보다 더 작은 우물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개구리인 나를 버리고 바다 개구리가 되려고 애를 썼던 거에요. 그러나 바다 개구리는 없습니다. 개구리가 어때서. 나는 개구리, 행복한 개구리입니다.’

이에 비슷한 고백이 담긴 동료들의 개구리 커밍아웃이 이어지며 수많은 공감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순간, 메타인지가 시작된다. 가면을 벗는 방법 중 하나는 성공은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사실 순전히 자기 실력만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임포스터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 노력뿐만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 주변 사람들의 도움, 운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있는 것이고, 다미주 신경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쟁적 환경에서 위협을 감지하여 활성화되었던 교감신경의 톤을 낮추고, 사회적 연결을 통해 관계성을 확장하고, 관계 속에서 지지를 받고, 이런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개인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에 안심감을 주어 상호조절과 동반 성장의 가능성을 더욱 열어줄 것이다.

완벽이 행복은 아니다. 불완전함이란 성장의 가능성이 아직 더 열려있다는 소식이고, 완결이 아니기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임포스터여도 괜찮다. 임포스터라고 느끼는 게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 임포스터라고 느낀다는 거 자체가 더 성장하고 싶어 하는 인간 존재로써의 근본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이니깐.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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