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함께읽는 동의신정 (2) 걸음을 보면 체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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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함께읽는 동의신정 (2) 걸음을 보면 체질이 보인다?!
  • 승인 2022.04.0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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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영

권찬영

mjmedi@mjmedi.com


<strong>권찬영</strong><br>동의한의대<br>한방신경정신과<br>​​​​​​​조교수
권찬영
동의한의대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필자가 학부생 시절, 한의대생들에게는 ‘불문진단’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뛰어난 명의들은 환자가 진료실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관찰을 통해 이미 진단을 끝내놓거나, 맥만 짚고도 “~가 안 좋으셔서 오셨죠?”라고 물어 내원한 환자가 “어떻게 그걸 아셨죠?” 하며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하지만 졸업 후 임상을 하며 다시 생각하는 ‘불문진단’은 문진이 필요없다, 내지는 망진이나 맥진 만으로 환자를 진단할 수 있다기보다는 환자를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아마도 뛰어난 명의라면, 망문문절을 모두 꼼꼼하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의학의 강점은 관찰을 통해 얻어진 정보들을 군집화하며, 서로 연결짓고 해석함으로써, 아직 관찰되지 않은 다른 정보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

필자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시간은 일정하다보니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하는, 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병원 식당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점심식사를 하는 직원들과 반복적으로 마주치다보니, 사람들의 외모, 체격, 복장, 그리고 걸음걸이 등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어떤 체질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 걸음걸이는 그 안에 여러 정보들을 담고 있는데, 걸음의 속도부터, 보폭의 너비, 보행 시 균형점의 이동, 골반의 움직임, 상체와 하체의 동적 균형 등 다양한 정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말 이러한 걸음의 정보는 한의학적 진단과 유의미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Lee D, Jeong S, Kim L. Gait Characteristics of Sasang Constitution with 3-Axis Accelerometer-Based Gait Analysis. J of Oriental Neuropsychiatry. 2020;31(4):225-233.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20년 31권 4호에는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시행한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3축 가속도계를 이용하여 사상체질별로 보행의 특성을 연구했는데, 여기서 3축은 보행시 (1) 전후 축(anterior-posterior axis), (2) 내외 축(medio-lateral axis), (3) 수직 축(vertical axis)을 의미한다.

간단히 연구내용을 소개하면, 19~40세의 건강한 한국인 성인 100명을 모집하고 사상체질진단 설문지인 TS-QSCD를 사용하여 분류된 사상체질(태양인은 분석에서 제외되었으며, 나머지 3개 체질 간에는 성비, 연령, 신장, 체중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음)에서 보행 시 관찰되는 여러 특성 간의 차이가 있는지 평가한 연구라 하겠다.

 

과연 사상체질 간에는 보행시 걸음걸이에 차이가 존재했을까? 이 연구에서 발견한 차이는 크게 3가지인데, (1) 먼저 6미터 거리를 1회 왕복하는 걷기 검사에서 소양인은 신장 비율을 보정한 활보장(걸음을 옮기기 전 좌/우 뒤꿈치 위치와 걸음을 옮긴 후 좌/우 뒤꿈치 위치의 차이)가 소음인이나 태음인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큰 것으로 나타나 (p<0.05), 소양인의 보폭이 다른 두 체질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또한, 같은 검사에서 소음인은 골반 측방 경사각이 가장 크게 나타났고, 타 체질과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여 (p<0.05), 보행 시 골반 움직임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마지막으로, 6분 동안 걷게한 걷기 검사에서 소양인이 타 체질에 비해 걸은 총 거리가 더 길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통계적 유의성에 가까워 (p=0.06), 보행 시 같은 시간 동안 먼 거리를 걷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되었다.

비록 이 연구는 사상체질의 진단이 설문지 검사에 의존한다는 점, 참가자의 체질과 별개로 당시 기분상태나 근골격계의 균형 상태, 또는 몸 컨디션에 의해 보행결과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점, 검사실에서의 보행 특성이 검사실 외의 환경에서 그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의 한계점이 존재하며, 이 연구에서 발견된 사상체질 별 보행 특성을 바로 임상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로부터 여러 단서들을 수집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걸음걸이 관찰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결과라 하겠다.

저자들은 이 연구결과에 대하여 향후 보행 분석이 체질인의 행동 특성 연구와 진단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하며, 향후 확대된 대상에 대한 연구와 다양한 행동 및 보행 분석 방법을 통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찰하고 있다. 한의학은 예로부터 몸과 마음의 균형, 그리고 한 전체로서의 인간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래서 우리는 몸의 상태로 마음을, 마음의 상태로 몸을 추정하기도 하고, 이러한 정보들을 모아 한 인간의 전체(개체의 특이성)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 때 어떤 정보가 임상적으로 중요한가? 유의미할 것인가?는 경험많은 임상의의 전문적인 의견 공유와 함께 이번 연구처럼 학계에서 연구를 통해 밝혀줄 문제라 생각한다. 추후 이 분야의 연구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권찬영 / 동의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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