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16) 바보같이 찾는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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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16) 바보같이 찾는 정답
  • 승인 2022.04.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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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고3 수능에서 수학을 망친 경험이 있다. 남들은 쉬웠다는 수능에서 나만 어려운 느낌, 그것은 비극이다. 재수기간 동안 수학을 극복했기에 한의사가 될 수 있었지, 수학 앞에 좌절했다면 지금 어디에 있을지 아득하다. 학생들에게 수학이라는 산을 넘는 과정은 어른의 고단한 삶에 비해 절대 가볍지 않다. 그래서일까? 현장에서 20년 이상 학생들과 고통을 나누었던 유명 수학 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여러분! 수능 수학문제는요 평균 수준의 학생이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다 풀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지를 보면 어때요? 안 풀리죠? 왜 그럴까요? 똑똑한 방법으로 풀려고 하니까 그래요. 그러니 절대로 기가 막힌 풀이방법에 현혹되지 말고 바보 같은 풀이 법이라도 꼭 자기만의 방법으로 풀어보세요. 그 방법만이 시험장에서도 통합니다.”

이 말을 듣고 문득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학원가의 유명 강사들은 독특하고 기발한 풀이 방법으로 수강생을 끌어 모았다. 유명 강사의 수업은 듣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7줄의 풀이과정이 단 3줄로 줄어드는 마법을 보여주기도 했고 지문을 다 읽지 않아도 답이 쏙쏙 나오는 언어나 외국어영역 풀이 법도 있었다.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기발한 방법으로 성적이 오를 것 같은 희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막상 시험을 치고 나면 성적은 그대로였다.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기발한 학원 강의가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재수 시절엔 기막힌 방법 대신 교과서에 집중했다. 기초적 설명을 읽고 평범한 풀이방법을 반복했다. 풀이 과정이 평범했기에 시험장에서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엉망이었던 수학점수는 만점으로 수직상승했다. 수학을 가채점한 뒤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수학(數學)’이 있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신통치 않거나 항상 어렵고 두려운 분야가 ‘각자의 수학’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거리를 둔다. 가급적 그 문제를 회피하거나 미루며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삶의 문제들이 쉬워질 것 같았는데 왜 그 시절의 수학처럼 아직도 어려운 것일까?

주변의 동료 어른들처럼 노련하게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련한 해결이란 기발한 해법으로 수학을 풀어내는 것과 같다. 이런 방법으로 삶의 문제를 풀고 싶은데 실상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기발한 방법으로 수학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듯, 삶이라는 실전 앞에서 만족할 만한 해결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이 쌓이지 않은 분야에서 처음 겪는 문제들은 서투른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어른들은 남들처럼 노련하게 해결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비하하기도 한다. 완벽주의 성향의 소유자일수록 자책감은 심해진다.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어른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수학문제’가 있고, 그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된다. 이 때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래 걸릴지언정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는 것과 우리는 누구나 이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 걸리는 과정만 인내할 수 있다면 수학이나 인생의 문제나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 누구나 바라는 수려하고 멋진 풀이과정은 아닐지라도 결국 문제는 마무리되는 법이고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결과에 적응하고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러니 문제를 풀어보기도 전에 뒤로 물러서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마주치기 싫은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지레 겁먹지 말고 잠시 멈춰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과거의 습관이다. 휘둘리지 말자. 자~ 숨을 크게 쉬고, 그래!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고 했어. 단지 그 과정이 두렵고 싫을 뿐이야. 어차피 풀어야 할 나의 문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풀어보자.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다. 손해 봐도 괜찮다. 누구나 한 번은 지불하는 수업료니까. 바보 같은 방법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내 방식으로 풀어보자. 머릿속 어딘 가엔 분명히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인터뷰를 한 유명 수학강사는 한석원씨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였다.

“수학을 공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몇 번의 수학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수학을 못하는 수포자’라는 굴레를 씌우지 말고 계속 시도하라는 말이다.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용기, 용기!’ 란 말이 뭉클하다. 다시 한 번 그의 인터뷰를 떠올려 본다.

”모든 문제는 풀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풀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시도를 멈추지 마세요.“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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