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 침치료 신뢰가 강한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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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 침치료 신뢰가 강한 제주도
  • 승인 2022.05.1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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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아이고~ 어깨가 잘도 막 튼튼함서~ 둑지까지 내려와서라. 씀뻑씀뻑 죽어지쿠다예”
위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아시는 분들은 제주가 고향이시거나 제주에서 일해 본 적 있는 분들이심이 틀림없다. 제주말은 억양이 강하지 않아서 제주사람들이 표준어를 쓰면 어색하지 않지만, 단어들이 표준어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정말 어렵다.

나는 2010년 말에 제주에 내려와 화북이라는 동네에서 한의원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근처에 택지개발지구가 들어서고 입주가 많이 되면서 도시 느낌이 많이 나지만, 그 때만 해도 반농반시 느낌으로 어르신 환자도 많고 젊은 분들도 제주말을 주로 쓰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분들은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옆에 있는 직원에게 통역(?!)을 요청하곤 했다.

언어는 반복과 암기라 했던가...3개월 만에 리스닝이 터져서 더 이상 통역이 필요 없게 되었지만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가장 큰 장벽은 단연코 언어였다. 글 서두에 쓴 문장은 “아이고~ 어깨가 정말 많이 쑤셔~ 팔까지 내려오네. 쿡쿡 쑥쑥 죽겠어요”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아주 약한 수준의 제주말이지만 의미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메께라!! 야이가 이~ 영 해 부난 메가 덜 거려젼~ 어떵할크냐~”(“아이고머니나!! 얘가 응~ 이렇게 해 버려서 밥이 덜 퍼졌네~ 어떻게 할 거야~”)정도 되면 외국어 수준이다.

언어를 포함한 문화충격도 상당했다. 나는 결혼을 해서 제주로 간 것이기 때문에 집안 문화가 제일 와 닿았다. 가족, 친척, 지인으로 분류하는 범주가 굉장히 달랐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진료실에서도 문화충격이 컸는데 그 중 제일은 단연코 “야제침”이다. 아이들이 밤에 안 자고 보챈다고 찾아오는 엄마와 할머니들이 상당했는데, 진찰을 해 보면 별다른 이상 없이 밤에 뒤척이고 깨어나는 정도여서 수면교육을 잘 하시라는 티칭 정도를 하고 보내곤 했다. “애가 밤에 깨는 건 당연한데 그걸 왜 한의원에 와서 물어보시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이상하게 바라보았었고 심한 아이들에게는 한약을 처방했다. 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고 한약으로 치료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약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보호자들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기 일쑤였고 심지어 맘까페에 악평이 올라가기도 했다.

몇 개월 뒤 알고보니 이것은 제주도 풍습이었다. 한라산이 악산(惡山)이라서 금기(金氣)로 눌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날짜도 정해져 있었는데 한 달에 3번 침을 맞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집안에 따라서 주장이 달랐다. 어떤 집은 할머니가 날을 받아서 2일 12일 22일 이런 식으로 3번 맞히라고 하시고, 어떤 집은 3일을 내리 침 맞는 것을 매 달 반복해야 한다는 집도 있었다.

나름대로 원리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 침을 맞혀서 그 기운을 눌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금극목(金克木)이라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의한 풍습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고, 그 풍습이 21세기에도 살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풍습에 의해서 침을 그냥 놓아주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보채는데 침 놓아달라고 하는 분들에게 수면교육에 대해서만 설파하고는 했지만 제주도 모든 한의원에서 야제침을 시술하고 있는데 나만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놓을 수는 없었고 주변 원장님들께 여쭈어보기도 송구스러워서 내 나름대로 심리안정과 숙면에 도움이 되는 혈자리를 골라서 자침을 해 보았다. 심리안정과 숙면을 위해 선혈한 혈자리에 자침을 하면 당연히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마도 풍습에 따라 침을 놓아준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보호자들이 아이가 정말 잘 잔다고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나의 짧은 생각에 참 반성을 많이 했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치료를 단순히 풍습이라고 거부감을 가지고 무시했던 부분을 돌이켜보며 그 뒤로는 정말 열심히 야제침을 놓아주었다.

사실 제주도는 침치료에 대한 신뢰가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래서 야제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의료)문화충격이 있었다. 예를 들면 혈허로 인한 어지러움이나 기허로 인한 피로감 등은 당연히 허증(虛症)을 보강할 수 있는 한약치료가 기본적으로 깔린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환자들이 “희어뜩해부난 침 놔 줍서(아찔하니 침 놔 주세요).”, “이거 무사 침으로 되는 거 아니꽈(이건 왜 침으로 되는 거 아닙니까)?”, “약 먹을 정도는 아니마씸(약 먹을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할 때 정말 의아스러웠다. 허증을 침으로 치료해 내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야제침으로 겪었던 우여곡절 이후 증상이 경감될 수 있는 방향으로 침치료를 해 드리곤 한다. 당연히 불편한 강도가 줄어들기 마련이고, 환자분들은 그 부분에 매우 만족을 하시고 고마워하신다.

제주에 온 지 10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도 저 증상에는 약치료가 필요한데 왜 약을 안 드시지 하는 답답함이 들 때도 있지만, 침치료에 대한 확신과 감사함을 더 느끼게 되어 자부심이 더해질 때가 많다.

“원장님 침 잘도 시원하다예(원장님 침 정말 시원합니다).”, “침 맞으난 야개기 휙휙 잘 돌아가고이 다리 튼튼한 것도 어서젼(침 맞으니 목이 휙휙 잘 돌아가고요 다리 저리고 묵직한 것도 없어졌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오늘도 진료실에서 침을 한웅큼 쥐고 선혈을 해 본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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