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하루키가 뿌린 씨로 류스케가 피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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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하루키가 뿌린 씨로 류스케가 피운 꽃
  • 승인 2022.05.1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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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효원

배효원

mjmedi@mjmedi.com


영화읽기┃ 드라이브 마이 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9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은 필독서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읽었다고 하는데, 필자는 2000년대 초반 모 휴대전화의 CF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되었다. 당시 라디오에서도 끊임없이 책의 광고가 흘러나와 결국 손에 들어온 ‘상실의 시대’는 신선하기도, 어렵기도 했다. 좋아하는 류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이후에도 ‘해변의 카프카’, ‘1Q84’ 등 하루키의 책을 계속 빌려보았고, 아직도 책장에 ‘상실의 시대’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꽂혀 있는 걸 보면 그의 이야기에 어떤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개봉 영화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를 발견했을 때도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예매했고 기대보다 좋았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기에 원작은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찾아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제목은 굉장히 낯익었다. 알고 보니 이미 읽어본 책이었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내용이 워낙 짧은 데다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기억하지 못했다. 영화의 높은 완성도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결론.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의 이유가 있다.

연극배우자 연출가인 가후쿠는 매력적인 부인 오토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부인의 외도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어느 날 오토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가후쿠는 사별의 상처와는 별개로 부인이 외도해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롭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러 가후쿠는 히로시마의 연극제에서 연출을 맡게 되고, 전속 운전기사로 만나게 된 미사키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치유 받게 된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섬세하게 진행되고 인물들 각각의 연기가 뛰어나서 몰입감이 높았지만,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연극이다. 가후쿠는 연극 연출 시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는데, 배우들의 국적에 제한을 두지 않아 서로 다른 언어로 대사를 전달한다. 특히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도 배역을 맡는 설정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연습의 방식이 일반적인 연극과 다르고 훨씬 오랜 시간이 소요되어 배우들이 불만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연극의 밀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런 설정을 통해 자연스레 떠올랐던 화두가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가후쿠가 연출한 연극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럼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이와 같은 소냐의 마지막 대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숙명을 말해준다.

 3시간의 러닝타임과 하루키 원작이라는 조합에서 난해한 내용이 펼쳐지거나 지루한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보기 시작한 영화는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과 관계를 통해 치유 받는 인간을 보여주었다. 하루키의 팬이어서 영화를 선택한 사람이 류스케의 팬이 되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지금 ‘시리즈 온’과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배효원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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