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식물에게서 들은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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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식물에게서 들은 인생 이야기
  • 승인 2022.06.1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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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ajhj@unitel.co.kr

1987.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93. 02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박사 1996.10-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1997.03-2012.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계내과학교실 주임교수 2017.03-2020.02 대한한방내과학회장 저서 남자 그리고 여자, 갑상선클리닉,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 성학, 다한증의 이해와 치료 등


도서비평┃랩걸(Lab Girl)

해질 무렵 아내와 인근의 송파 둘레 길을 산책하노라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이 짙어가는 걸 느낍니다. 번수(蕃秀)의 계절로 들어선 게지요. 겨우내 묵은 기운을 떨치고 앙증맞은 새싹을 파릇파릇 피어내는 듯싶더니 이내 형형색색의 예쁜 꽃을 펼쳐 보였는데, 이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입증하며 잎사귀로 완전무장한 걸 완상(玩賞)할 수 있으니…. 매번 아쉬운 점은 각양각색의 초목들 특성은 물론 이름조차 잘 모른다는 겁니다. ‘아름다움’의 어원이 ‘앎’임을 감안하면, 각종 식물들의 진미(眞美)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셈인데….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신혜우 그림, 알마 출간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신혜우 그림, 알마 출간

『랩걸(Lab Girl)』은 아내가 건네서 읽게 되었습니다. 식물학 박사 뺨 칠 정도로 해박한 지식·정보를 하루도 빠짐없이 SNS를 통해 알려주는 친구가 추천한 책이라며 제게도 일독을 권했거든요. 부제가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인데다가, 목차 또한 심플하게 「뿌리와 이파리」·「나무와 옹이」·「꽃과 열매」 3부로 나뉘어 있어서 내심 식물 관련 무지로부터의 해방구로 삼을 요량이었습니다.

지은이 호프 자런(Hope Jahren)은 엄청난 사람이더군요. 지질학(토양과학?)을 전공하여 26세에 이미 교수 직함을 얻었고,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일뿐더러, 존스홉킨스 최초의 여성 테뉴어(Tenure: 종신재직권) 교수라니…. 하기야 학부 시절 학비·생활비 마련하려 열 개 남짓의 직업(알바겠지요?!)에 종사했던 치열한 삶을, 교수 발령 받고서도 실험실을 집 삼아 연구에만 몰두하며 이어갔으니 화려한 프로필은 당연한 귀결일 겁니다.

책 내용은 애초의 예상과는 좀 달랐습니다. 저는 수많은 풀과 나무 관련 지식 습득에 목말랐건만, 거의 자서전 같았거든요. 목차의 소제목은 자신의 성장과정을 빗댄 목적이 훨씬 커 보일 정도로…. 물론 초목에 얽힌 이야기들도 적잖이 등장합니다. 가령, “연꽃 씨앗은 싹을 틔우기까지 2,000년도 기다린다.”, “씨앗이 뿌리내리기에 성공할 확률은 100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떡갈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수십 만 개의 이파리 중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수천 년 동안 발전한 인류문명임에도 같은 면적이라면 목재보다 더 나은 다목적 건축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목재기둥은 강철만큼 강하고 신축성은 열 배이면서도 무게는 10분의 1에 불과하니까).”, “나무와 곰팡이는 공생한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등등. 하지만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엔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왔습니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표현처럼 “하고자 하는 말의 심장부를 깨끗하게 관통하는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며, 전문직 여성이 경력을 이어갈 때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유리 천장’을 깨트린 삶의 여정이 한편의 드라마였거든요. 아울러 삶의 통찰이 깃든 글귀 - “나를 사랑한다는 궁극적인 증거는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미소를 짓게 해주는 쉽고도 쓸데없는 행동들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 들을 마주하는 기쁨도 무시 못 할 만큼 컸거든요. 해서, 내친 김에 그녀의 후속작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도 냉큼 구입해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안세영
1987.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93. 02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박사 1996.10-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1997.03-2012.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계내과학교실 주임교수 2017.03-2020.02 대한한방내과학회장 저서 남자 그리고 여자, 갑상선클리닉,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 성학, 다한증의 이해와 치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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