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14> - 『治疹指南』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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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14> - 『治疹指南』③
  • 승인 2022.06.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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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친일파 문장으로 치장된 식민지病書

  이 한권의 마진전문서에는 조선시대 말엽으로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전통적인 마진치료에 적용된 병인론과 변증처치법에 대한 마지막 논의가 펼쳐져 있어 전통방식의 마진 치료에 있어서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특장이 있다.

 ◇ 『치진지남』
 ◇ 『치진지남』

  본문은 크게 보아 처방편인 약록과 변증단계별 마진치법을 다루고 있는 치진본편, 그리고 마진소멸 후 병발증상과 치법을 다른 疹消後, 그리고 부편인 금기와 부록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편에 대해서는 앞글에서 간략하게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처방부인 약록을 비롯해 본편에 해당하는 3편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약록에는 본편에 始痛에 쓰이는 透邪煎, 柴歸飮, 淸熱透肌湯으로부터 통치방으로 쓰이는 가미소독음, 양영탕, 소반화진탕에 이르기까지 252방이 실려 있고 이어 마진제증에 쓰이는 방풍통성산, 화반탕, 현삼승마탕을 비롯해 소풍산, 갈근귤피탕, 누로탕에 이르기까지 23방을 더해, 마진치료에 응용할 수 있는 처방 도합 272방을 수재하고 있다.

  본론에 해당하는 치료편에는 단계별로 始痛, 毒原, 疹脈, 發疹, 險症, 逆症, 疹期, 總論, 藥戒, 部位, 形色, 時令 등의 진단병론과 함께 疹涕, 疹發熱, 疹喘嗽, 疹吐瀉, …… 疹痢疾, 疹便祕, 疹溺濇에 이르기까지 병발증상에 대한 병기와 치법을 다룬 의론 26편이 실려 있다.

  또 후유증상이나 부수증상 등에 대한 각가 병론과 처치법을 논한 진소후편에는 消後咳嗽, 消後嚏噴, 消後下蟲을 비롯해, 설사, 이질, 제반혈증, 번조섬망, 후통실음, 갈증, 복통, 沉睡, 不食, 身冷, 疳症, 창옹, 회증부종 등 후유증과 함께, 이어 孕婦疹, 담두, 消後雜症, 通治와 같이 21가지 주제에 대한 각가설과 병론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권미에는 별도로 발문이 붙여져 있는데, 詩南 閔丙奭(1858~1940)이 쓴 것이다. 그는 문과 급제 후 예문각, 규장각, 승정원 등 여러 요직을 거치며 관로에서 승승장구하였다. 하지만 1910년 궁내부대신으로서 한국의 경찰권을 일본에 이양하는 ‘한국경찰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 체결에 앞장서고 8월 ‘합병조약’ 체결에 관한 어전회의에 참석해 이를 가결시킴으로서 동포들에게 ‘경술국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국권피탈에 앞장선 대가로 병합 직후인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또 중추원 의관으로 활동하였고 훗날 조선사편수회 고문을 지냈으며, 이로 인해 친일행위자로 분류된 인물이다. 의약분야 관련해서 1919년 피병원설립기성회 부회장, 1931년 조선나예방협회 발기인, 1939년 동양의약협회 고문직을 맡기도 하였다.

  발문은 내용도 단출하거니와 앞서 3편의 서문에서 드러난 내용 이외에 특별한 것이 거의 없다. 또 저자를 韓君敬澤이라고 지칭하여 교분이 있어 보이지만 달리 저자에 대한 친절한 소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모종의 관계상 청탁을 받고 쓴, 틀에 박힌 형식적인 글로 여겨지며, 그다지 성의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아울러 서문을 쓴 박영효를 비롯해 이재곤, 정만조 등은 모두 친일행위 덕에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나 한일병합 과정에서 고종의 양위를 추진하거나 불평등조약 체결에 적극 찬동한 친일인사들이다. 이와 함께 발문을 쓴 민병석 역시 손꼽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어서, 책의 앞뒤로 모두 친일인사의 추천사가 도배된 셈이니 이 책이 그다지 영예스러운 모습으로 비추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의 입에 발린 문장이 어떤 사연으로 여기에 한데 모였는지는 더 이상 깊이 알고 싶지 않으나 조선시대 전통방식 마진치료에 있어서 대미를 장식해야할 책에서 일제식민통치에 부화하며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인물들의 이름자를 확인하는 것 만해도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몹시 괴로운 글 읽기 임에 분명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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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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