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3) 5월 30일, 비, 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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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3) 5월 30일, 비, 4mm
  • 승인 2022.06.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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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2021년 11월, 기후 변화 탓에 나무에 달린 채로 홍시가 되어 버린 대봉감들. 팔 수가 없어 그냥 이렇게 동네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었다(사진: 정영이).
◇2021년 11월, 기후 변화 탓에 나무에 달린 채로 홍시가 되어 버린 대봉감들. 팔 수가 없어 그냥 이렇게 동네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었다(사진: 정영이).

읍내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가려면 작은 다리로 섬진강을 건너야 한다. 그 다리를 지날 때 한눈에 들어오는 하늘과 지리산, 섬진강과 백로 등이 어우러지는 그 경관이 항상 아름다워서, 시골 사는 불편함도 잊게 되고 서울 사는 친구들의 아파트값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누그러지곤 한다. 다리에는 여러 괴담도 있어서, 부부싸움을 하던 중년 부부가 홧김에 차를 다리 난간에 들이받았다가 강으로 떨어져 물에 빠지는 바람에 둘 다 사망했다는 등의 소문도 곧잘 들렸다. 밤에 혼자 컴컴한 다리를 건널 때면 혹시나 그때 깊은 강에서 죽었다던 그 귀신들을 보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운전을 할 때도 더러 있다. 실제로 종종 다슬기 채취하러 강에 들어갔다가 매년 익사 사고도 일어날 만큼 섬진강은 크고도 깊었다.

그런데 올해 봄에는 강이 참 낯설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점점 강바닥이 드러나더니 5월 중순 무렵에는 아예 내가 걸어서 강을 건널 수도 있을 만큼 군데군데가 뭍이 되고 심지어 녹조가 끼기 시작했다. 몇 년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 그 다리를 지날 때마다 온 가족이 걱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1974년 이후 전남 지방 최악의 가뭄이라더니 너무 가물어서인지 집 마당의 잡초마저도 타죽어 갔다. 5월이면 모내기철에, 밭에 심은 채소 모종들이 한창 자라갈 때이기도 하고 곧 양파 등을 수확해야 할 시기이기도 한데, 비가 워낙 오지 않으니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읍내 점방에 친구와 앉아있노라면 가게에 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물다는 얘기만 했다. 최신식 스마트팜 온실을 가동하는 농장이야 별 걱정은 없을 것이고, 지하수 관정을 해둔 집 혹은 양수기를 동원할 수 있는 농가들 역시 농부들의 몸은 고되어도 작물들이 목은 축일 수 있다. 문제는 스마트팜도 관정도 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 아마도 자본집약적이지 않은 - 논과 밭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양파를 수확했더니 겨우 마늘통만 해서 제값이나 받겠냐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농촌에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마트에 가면 항상 신선한 야채가 잘 포장되어 있고, 나는 유기농 인증이 되어 있는지 산지는 어디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상품을 고르고 값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비가 오지 않아 애가 타는 마음들은 내 알 바가 아니었을 것이고, 마늘통만한 양파를 보면 하자 있는 물건이라 생각하며 그저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농촌은 도시에서 그만큼 멀고 보이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가 멀다기보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농촌을 떠올리기 어렵게 되어 있다. 농촌은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농산품의 생산지이거나 그 옛날 전원일기 속 배경이거나 대개는 둘 중 하나일 뿐, 그곳에서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아마 매일같이 말라가는 강을 보지 않았다면, 이웃들의 걱정을 날마다 들을 수 없었다면, 나 역시 비가 오지 않아 피가 마르는 듯한 이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5월 30일, 드디어 비, 강수량 4mm.”

마침내 비가 온 날, 일기장에 날짜를 써두었다. 겨우 그 정도 강수량으로 가뭄 해갈엔 턱도 없었지만 그래도 기다리던 비가 내려 진심으로 기뻤다. 섬진강이 좀 높아졌나 보자며 비가 와서 신난다는 아이와 함께 작은 다리를 두 번이나 건너갔다 왔다. 옆에서 남편은, 고작 그거 내렸다고 강물이 늘었겠냐며 타박이었지만 눈곱만한 녹조라도 가셨겠지 싶어 마음이 설렜다. 물론 남편 말대로 강은 여전히 군데군데 뭍이었고 녹조는 전혀 가시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글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 혹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마트에 가시면, 좀 못생기고 키우다 만 것 같은 농산물이더라도 부디 외면하지 말고 사주십사 하는 사심 가득한 목적이다. 2년 전 물난리 때에는 하도 비가 많이 와 과일의 당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과수농가들이 많이 힘들었다. 작년에는 10월이 다 되어도 한여름 날씨처럼 더운 탓에 대봉감 농사짓는 집들이 제대로 벌이를 하지 못했다. 딱딱한 대봉감을 수확해야 하는데 나무에 달린 채로 다 홍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매년 일어나고, 또 매년 더 심해진다. 장 보러 나가서 유기농 친환경 인증마크나 예쁜 모양 말고도, 가뭄에 이 먹거리를 키워내느라 고군분투했을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 바닥이 훤히 드러난 섬진강의 강바닥 따위를 먼저 떠올려 주십사 해서 주저리주저리 긴 글을 써본다. 씨알이 작아 초라해 보이더라도 부디 기꺼운 마음으로 그 양파를 좀 사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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