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중뢰진 – 현상을 파악하는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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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중뢰진 – 현상을 파악하는 안목
  • 승인 2022.07.15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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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일주일 정도의 전국적 폭우 기간이 지나고 나니 국소 지역에 집중되는 호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는 비가 내리기도 해서, 어린아이나 반려동물을 기르는 집에서는 그 큰 소리에 놀라 무서워하는 것을 달래주어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에는 북유럽 신화의 천둥신이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 익히 아는 상업영화 스타일의 잘생기고 근육질 배우가 나와 히어로 역할을 하는 영화지만, 원래 북유럽에서 토르는 오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추앙받는 신이었다고 한다. 천둥 번개라는 위압적인 자연 현상을 대표하는 것도 멋있지만, 그 천둥 번개 이후에는 항상 농사에 필요한 비가 내려주기 때문에 농민을 수호하는 신으로도 여겨졌다고 한다.

주역에도 이 천둥 번개가 치는 모습을 나타낸 괘가 있다. 중뢰진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匕鬯

彖曰 震 亨 震來覤覤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震驚百里 驚遠而懼邇也 出可以守宗廟社稷以爲祭主也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면 어른이라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그게 우스워서 피식 웃어버리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있다면 서로 놀리며 웃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말고 비가 새는 곳은 없는지, 미처 못 닫은 창문은 없는지 한 번 살펴봐야 그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괘사의 匕鬯은 숟가락과 향기로운 술이다. 단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것은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이는 것이다. 천둥과 번개는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있으면 다음에는 항상 비가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 새는 곳을 점검하는 것처럼 나라 살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징조가 있을 때 그에 대한 대비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징조 자체는 별것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라의 살림을 맡은 사람들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初九 震來虩虩 後笑言啞啞 吉

 

초구는 그 징조를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자리에 있다. 어쩌면 여기쯤에서는 그냥 참고 넘어가거나 모른척 하고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전에는 恐致福也, 後有則也라 했다. 두려워함으로써 복을 이루고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법칙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괘이든 가장 아래에 있는 효가 흔들리면 다른 효들에게 영향을 준다. 초구는 진괘의 가장 아래에서 그 징조의 의미를 파악하는 자리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러니 길하다.

 

六二 震來厲 億喪貝 蹄于九陵 勿逐七日得

 

천둥 번개 소리가 심상치 않으면 큰 비가 올 징조다. 육이는 낮은 곳에 있으니 침수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대피를 준비해야 한다. 괜히 재물을 걱정하여 자연을 이겨보려고 하다가는 목숨마저 잃는다.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고 재물도 다시 벌어들일 수 있다. 육이는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 위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가늠해야 하는 자리다. 여기서 잘못 판단하면 재물도 목숨도 잃을 수 있다.

 

六三 震蘇蘇 震行无眚

 

육삼은 참 운이 없다. 음의 자리에 있는 양이고, 자기 짝인 상육과 음양응도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천둥 번개가 치는데 벌판에 맨몸으로 피뢰침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위치 선정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재앙을 막을 길이 없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몸을 피해야 한다. 운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때는 납작 엎드려야 하고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데 노력해야 한다.

 

九四 震遂泥

 

깊은 물 속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가 들릴까? 지상에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작게 들릴 것이다. 흙과 물이 섞여 진득한 진흙 속에서는 아마 더 작게 들릴 것이다. 구사는 양효라 힘이 세지만 음효의 자리에 있다. 위치가 좋았다면 번쩍 빛도 내고 다른 사람들을 놀래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진흙 속이다. 이럴 때는 발버둥 친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애꿎게 힘을 뺄 필요가 없는 것이다.

 

六五 震往來厲 億无喪有事

 

육오는 지금의 상황이 그저 초육처럼 웃어넘길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초육은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지만 육오는 그렇지 않다. 도시의 고층 빌딩에 사는 사람은 비가 많이 오면 고작 신발이 젖거나 차가 밀리는 정도를 걱정한다. 그러나 산 밑에 사는 사람은 산사태를 고민해야 하고, 낮은 지대의 하천 옆에 사는 사람은 침수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다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육오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모두 다른 걱정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안목이 있으며 늘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 육오이기에 일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이 육오의 의무이고 그것을 잘 해내야 괘사처럼 형통함이 오는 것이다.

 

上六 震索索 視矍矍 征凶 震不于其躬 于其隣无咎 婚媾有言

 

상육은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다른 효들보다는 나은 상황에 있다. 육이처럼 위태로워서 재산마저 버리고 몸을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육삼처럼 위험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고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별다른 피해도 입지 않은 넉넉한 형편의 사람이 수재민들에게 주는 지원금을 받으려고 머리를 굴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역시 육오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상육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제재를 가할 것이다. 상전에는 雖凶无咎 畏隣戒也라 했다. 흉하지만 허물이 없는 것은 이웃인 육오가 피해를 최소화해주고 상육이 제멋대로 이득을 취하지 않을 수 있게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육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인을 구하는 것처럼 때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당연히 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항상 징조가 있다. 그러다가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누군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무에 투입되고 방어한 결과일 수도 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초육이 그 징조를 피부로 느끼면서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육오가 묵묵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이처럼 일부 손해를 보면서 그것을 감당하는 위치에 있게 되거나 육삼처럼 고스란히 그 여파를 맞게 되는 위치에 있으면 웃어넘길 수 없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상황이 도와주지 않으면 구사처럼 소리 한 번 못 내보고 휩쓸려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상육처럼 다른 이들의 고통은 알지도 못하면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면 미움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환보유고가 8개월 사이 38조 9900억 이상 줄었다. 물가는 6%선으로 상승했다. 90년대 말의 흉흉한 분위기가 재현되고 있다는 평도 곳곳에서 들린다. 이것은 천둥소리와 같은 징조다. 이 징조 이후를 웃어넘길 수 있는지, 나의 현재 위치는 여섯 개의 효사 중의 어디인지, 냉정한 눈으로 파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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