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19> - 『經驗雜方』②
상태바
<고의서산책/ 1019> - 『經驗雜方』②
  • 승인 2022.07.23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천년세월 물려온 민족자산, 本朝經驗

  지난 호에 다루었던 “桃仁(人), 炒合(令)黃熱(熟), (入)細硏(末), 酒(服), 如彈丸.”이란 조문은 이렇게 『향약구급방』理㿗方과 대조해 오탈자를 보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풀이가 가능해졌다. 특히 전호에 黃熱로 판독했던 결자는 인조대 목활자로 간행한 『향약집성방』인본과 대조해 보니 ‘뜨거울 熱’자가 아닌 ‘익힐 熟’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 『경험잡방』

  따라서 이 구절을 모두 교정하여 바로잡은 원문에 따라 풀어보면, “도인을 누렇게 변색될 때까지 볶아 익힌 다음, 곱게 갈아 술에 타서 먹되, 분량은 탄환과 같다.”로 새길 수 있다. 좀 더 부연하면 탄자대로 환을 빚지는 않지만 1돈 가량 먹이라는 복용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이해하는 까닭은 『향약구급방』에서 위 구절의 말미에 “姚云, 不過三.”이란 주기가 더 붙어 있기 때문이다. 姚는 3번 넘게 먹지는 말라고 했으니, 3돈 이상 복용하는 것은 금물인 셈이다. 위에서 ‘姚’라고 약칭한 인물은 남북조 시대 의가 姚僧垣으로 여겨지는데, 12권이나 되는『集驗方』을 지었으나 원서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그가 남긴 경험방 가운데 일부만 隋代 王燾가 수집한『外臺祕要』나 조선의『향약집성방』등에 채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책에는 실전된 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실물이 전하지 않는 일실문헌 ‘本朝經驗’ 처방 조문도 적혀있다. 『향약집성방』을 비롯해 『구급방』,『창진집』 등 여말선초나 조선 초기 문헌 몇 가지에서만 간혹 일부 문장이 산견되는 귀중한 향약경험방서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 수록된 조문은 음낭종경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적응증이 ‘治外腎腫硬大’로 적혀있다. “鹽炒熱蔥白, 細切相和, 盛袋熨, 冷即易之, 以差爲度.” 이 조문의 문장 역시 『향약집성방』에 수록되어 있기에 대조가 가능했다. 다행히 이 조문은 완결성도 좋고 위 문장 가운데 ‘盛袋熨之, 冷即易(之)’으로 지시대명사로 쓰인 ‘之’자의 위치가 변경된 것 이외에는 서로 다른 글자나 상치되는 문구가 없이 일치하였다.

  우리가 음식에 흔히 쓰는 파뿌리를 뜨겁게 볶아 베주머니에 넣어서 外治로 찜질하는 방법인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내복약과 병행해 써볼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 빠른 처치법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어린아이의 편도선염이나 목감기로 인한 인후종통이 있을 때에 볶은 파를 목 부위에 손수건으로 싸매어 두고 하룻밤 자고나면 잘 낫는다는 외치법을 임상가 개원의로부터 체험담으로 전해들은 기억이 난다.

  2개 조문이 더 있는데, 그중 하나는 外腎偏腫을 다스리는 것이니 곧 한쪽 음낭만 붓고 아픈 증상이다. 이때에는 “백작약, 백견우자, 백출을 함께 볶아 거칠게 가루 장만하여 물 3주발을 넣고 달여 1주발이 되거든 찌꺼기를 버리고 공복에 따뜻하게 먹는다.”라고 적혀있다.

  다른 하나는 물이 고이거나 축축한 습지에 오래 앉아 있다가 돌연 음낭이 부어오르고 위로 당기듯이 아픈 경우에 쓰이는 치료법이다. 이때 “검은 콩[黑豆]을 쌀로 만든 식초로 볶아 (뜨거울 때), 靑布주머니에 채워 넣고 낭심과 배를 찜질하는 한편, 다시 椒蔥湯을 달여 허리와 사타구니에 이리저리 뿌리듯이 적셔주고 두터운 옷가지로 아랫도리를 감싸 덮어준 다음, 여러 가지 탕약을 복용한다.”고 적혀 있다.

  이 역시 민가 주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향약재를 활용하여 신속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외치법을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치료법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하여 확인한 전승지식이 아니고선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향약방은 권근이 『향약제생집성방』서문에서 갈파했듯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약물과 이미 경험한 의술(易得之物, 已驗之術)”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귀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채록된 적취와 산기를 치료하는 향약경험방들은 우리 겨레의 공유된 치료지식이자 수천 년 켜켜이 쌓인 문화적 자산인 셈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