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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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運
  • 승인 2022.10.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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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59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포커든 고스톱이든 그날 처음 게임을 배운 사람이 판에 끼면 대체로 그가 돈을 딴다. 상황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순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는데, 오히려 그런 대처가 게임에 익숙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해당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얕고 실제적인 역량이 부족한 초보자일수록 자신감은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식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파악해 나간다. 더 나아가 지식이 넓고 깊어지면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객관화된 형태로 자기의 역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1)

 

1990

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면서 남쪽에 비를 많이 뿌렸다.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폭우가 많다. 88일에 동작구에서는 1907년에 처음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서울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반드시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 있다. 1971년 초등학교 2학년 충북 단양읍에 살 때, 아버지는 출장 중이셨는데 집으로 물이 들어온다고 피해야 한다면서 엄마가 이웃에서 리어카를 빌려왔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는데 급히 짐을 싸서 리어카에 싣고, 나는 리어카를 끌고 엄마는 여동생을 데리고 지대가 높은 단양교회로 피난했다. 1984년에 망원동과 풍납동에 물난리가 났던 해에, 나는 저지대인 동대문구 이문동에 살았다. 중랑천으로 물을 퍼내야 하는 배수펌프가 고장이 나서 하수가 역류했다. 내가 자던 방에 무릎까지 물이 찼고 오물이 여기저기 떠 다녔다. 그렇게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종아리까지 물속에 담근 채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1990년이다.

 

치과차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봉암리에 있던 보병 제28사단 의무근무대에서 복무했는데, 중위를 단 후에 2년간 보급정비장교를 맡았다. 이 보직은 사단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보급하고 의무장비의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데, 군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보통 ‘8종 보급관2)으로 불렸다.

1990년에 우리 사단의무대에서 진료를 담당하는 파트는 의과, 치과, 한방과가 있었다. 치과에는 치과전문의인 군의관 세 명이 있었다. 원래 이들 중 두 명은 예하대에 배치되어야 하는데 치과라는 특성상 사단의무대에 모여 있게 되었던 것이다.3) 그래서 사단의무대에서는 정기적으로 예하부대 치과 순회진료를 계획해서 시행했다. 순회진료에 필요한 장비가 치과이동진료차이다.4) 이 차는 버스를 개조해서 치과 유니트체어(Unit&Chair) 두 대를 장착해 두었고, 독자적인 방사선 촬영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순회진료가 없는 때에는 치과차고에 세워 두었고, 또 간혹 치과진료실에는 쓰는 핸드피스가 고장이 나면 치과차에 장치된 기기를 빼서 쓰곤 했다.

의무대장이 보고한 치과 순회진료 계획이 사단장의 결제를 받았으므로 치과차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생겼다. 나는 군수계통으로 상급부대인 2군수지원사령부 의무참모부에 정비를 요청5)했는데,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의무창으로 치과차를 입고하라는 것이다. 당시에 국군수도병원6)은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에 있었다. 치과차를 끌고 거기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다.

 

허술

사단의무대에는 치과차 외에 구급차가 네 대 있고, 트럭이 있고, 방사선 촬영차, 의무대장 1호차인 짚차가 있다. 미국산인 방사선 촬영차는 움직이지 않고 치료실 옆 차고에 고정되어 있다. 치과차도 보통은 치과차고에 멈춰 있다. 그러니 평소에는 정비근무대에 들어가 있는 구급차와 트럭보다는 차량을 정비하는 담당자의 손길이 닿을 기회는 많지 않다. 의무대 운전병들도 의무대보다는 정비대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사단에 소속된 모든 차량이 위수지역 밖으로 나가려면 군수참모부에서 사전에 차량운행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공문서를 기안해서 직속상관의 결제를 받아 군수처로 보내야 한다. 치과차는 평소에 늘 운행하는 차가 아닌데, 우리의 대처는 너무 허술했다. 공문의 결제선에 있던 직속상관인 운영장교(보좌관)도 의무대장도 치과차가 서울까지 가야하는 계획에 대해서 별다른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서울까지 가야 하는데 최소한 정비대에 입고해서 한번 점검을 해봐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의견 말이다.

 

길치

당시 우리 보급정비반에 소속된 운전병은 경남 밀양 출신의 상병으로 운전이 서툴지는 않았지만 서울 지리를 몰랐다. 또 나와 함께 가게 될 의무장비정비병은 병장이었는데 충남 사람으로 그 또한 서울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운전면허를 따기는 했지만 차를 직접 몰아본 적은 없는 장롱면허였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6년간 살기는 했지만 강서구 쪽으로는 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장교시험 지원과 관련해서 국군수도병원 영내에 함께 있는 국군의무사령부에 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군수도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는 있는 셈이었지만 나는 본디 길치에 가까운 사람이다. 살면서 여러 번 가 본 곳도 헷갈렸던 경험이 많았다.

나는 보좌관이 차에 갖고 다니는 교통지도책을 빌리고, 운전병을 불러서 치과차를 몰고서 통과해야 할 길을 대강 그렸다. 부대를 출발해서 동두천 덕계리 의정부 송추 장흥 일영 행주산성 자유로 성산대교 인공폭포를 지나면 등촌동이다.

 

무모

소나기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의무대 연병장에 치과차를 꺼내 세워두었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 부대를 벗어나 사단사령부 앞을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운전병이 당연히 와이퍼를 작동했다. 그런데 아이고 이런 일이, 차량 정면유리 두 개의 와이퍼 중에 운전석 쪽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출장을 포기하고 부대로 복귀해야 하나. 빨리 결정해야만 한다. 순회진료 시작일을 생각하면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정신의 바탕은 무모함이다. 앞길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질러 보자. 보좌관이 자기 승용차를 고칠 때 함께 따라가 보았던 동두천에 있는 카센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 그 근처를 거쳐서 가야하는 길이다. 운전병에게 거기 가서 와이퍼를 고쳐보자고 했다. 내가 앉은 보조의자 쪽에는 와이퍼가 작동 중이니, 내가 운전병의 눈이 되어 앞을 살피면서 속도를 높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동두천에 진입했다.

 

건널목

철도 건널목에서는 기어를 변속하지 말라고 배운다. 이 경고는, 그런 상황이 되면 순간적으로 당황을 해서 시동을 꺼뜨리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7) 카센터에 가려면 의정부에서 출발해서 동두천을 지나가는 철길를 넘어가야 한다. 당시에 동두천에서 의정부로 나가는 방향으로 동두천관광호텔 앞으로 지나는 길에 건널목이 있었다. 그런데 소나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차들이 밀려서 건널목을 채 넘어가지도 전에 앞차에 밀려서 섰다. 치과차의 뒷부분이 철로에 물린 것이다. 그 순간 멀리에서 경적이 울렸다. 놀란 운전병이 기어를 조작했고 시동이 꺼졌다. 아 이대로 기관차와 충돌하게 되는 것인가. 건널목의 빨간등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밀린 앞차가 빠지고 차의 시동이 걸리고 우리가 기차와 충돌할 위험을 모면한 것은 정말 찰나였다.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고 카센터로 들어갔다. 사장님은 구면이다. 다행히도 나를 알아본다. 본격적으로 수리를 할 여유는 없으니 간단하게 양쪽 와이퍼의 배선을 바꾸어서 연결해 주셨다. 이제 운전석 쪽 와이퍼가 움직이고 내 쪽은 작동하지 않는다.

 

역주행

비는 쉬지 않고 내린다. 그래도 이제는 속도를 낼 수 있다. 군용차량이라면 평소에는 덕정검문소에서 헌병이 차를 세우는데, 이 차는 외견상으로는 버스고 군용차량이라는 기미가 별로 없다. 지금이라면 길이 더 많아졌고 도시와 교차로도 복잡해져서 이정표만 보고서 찾아가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중요한 교차로에서 이정표만 잘 살피면 되는 수준이었다. 물이 많이 고인 길에서는 버스의 앞문 발판을 통해서 물이 차안으로 몇 번 들이닥치기는 했지만, 이미 기차 충돌의 위기를 헤쳐 나온 우리에게는 그런 건 별 장애도 아니었다.

자유로를 만났는데 엄청난 악취가 밀려왔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으니 평소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거대한 쓰레기산 난지도였다. TV 속에서만 보았지 난지도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운전병은 야수교8) 출신이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운전했던 경험이 없다. 물론 서울에서 운전한 경험이 없기는 나도 그렇고 내 뒤에 앉은 의무장비정비병도 마찬가지다. 우리 차가 지하차도로 진입했는데 갑자기 앞에서 오는 차에서 상향등을 번쩍인다. 쟤들이 왜 저런다니,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보급관님. 그때 우리가 역주행을 했다는 것은 우리가 부대로 돌아간 후 그날의 여정을 복기했을 때야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성산대교에 올라탔다. 그리고 중요한 지형지물인 인공폭포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직진했다. 등촌동에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길은 낯익었고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했다.

이글을 쓰면서, 체질침을 처음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삶은 하나의 운()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이런 현상을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라고 부른다.

2)군 보급품은 1종에서 10종까지로 분류되는데, 8종 보급품이 의무기재 약품 위생소모품 의무수리부속품 등이다. 

3) 예하 의무부대에는 치과 치료장비가 설치된 곳이 없었다.

4) 우리는 줄여서 ‘치과차’라고 불렀다. 

5) 당시에 28사단의 통상적인 의무장비 정비는 2군수지원사령부 예하 2의무창에 소속된 군무원들이 출장을 나와서 처리를 해주었다.

6)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다. 

7)열차 오는데 철도건널목서 군트럭 시동 꺼져 ‘아찔’ 『경향신문』  2016. 1. 21. 
   3주만에 또 철도 건널목 사고,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프레시안』 2022. 2. 28.

8)수송교육연대 : 육군으로 입대한 남성이 운전병을 지원하였거나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기간에 운전면허 소지가 확인되어 운전병으로 차출되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후반기교육을 받는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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