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121] 가난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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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121] 가난한 시절
  • 승인 2022.09.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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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김 영 호
한의사

혹시 지금 가난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가? 돈 뿐 아니라 몸과 마음 그 어떤 것도 결핍이 생기면 가난이다. 결핍이 생기면 온종일 그 생각이다. ‘돈, 돈, 돈’ ‘건강, 건강, 건강’ ‘행복, 행복, 행복’ 이렇게 결핍된 것에만 주의가 쏠리면 하루는 고통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관찰해보면 가난 속에 의미가 숨어있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가난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난한 시절이 때로는 축복이 된다.

◼경제적 가난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건 지켜야 할 자산이 적다는 말이다. 지켜야 할 것이 적은 만큼 변화에 자유롭다. 실패한다 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다.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적은 만큼 실패의 사이즈도 줄어든다. 이때 우리는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 작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경험이 축적되고 무형의 자산이 쌓여간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꺼려지는 일도 기꺼이 하게 된다. 여유가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들이다. 살아갈 방편을 궁리하다보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다보면 전보다 움직임의 반경이 넓어지고 평소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만남 속에서 우연히 귀인(貴人)을 만나기도하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기막힌 사업 아이템을 발견할 수도 있다. 기적은 늘 우리의 생각 밖에서 일어난다.

◼몸의 가난
몸이 가난하다는 건 건강을 잃고 아플 때다. 아픈 순간 우리는 고통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좌절하기 쉽다. 하지만 이 시기는 나의 약점을 알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체질이 존재하는 만큼 사람은 각기 다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병을 만난다는 건 나만의 약점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나의 약점을 알게 되면 해로운 것을 피하고 약한 곳을 보강하며 살 수 있는 계획이 가능하다. 몸이 가난한 이 시절 덕분에 급작스런 죽음을 피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 내가 피해야 할 생활방식이 곧 오답이며, 우리는 오답을 잘 체크해서 건강을 조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 모든 병마는 오답풀이를 위한 모의고사일 뿐이다. 

◼마음의 가난
마음의 가난은 자신이 가장 먼저 알게 된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은 마음이 가난해지기 시작하는 징조다. 이 때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이 싫고 좋은지 바로 알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내 마음을 확실히 모른다 해도 일단 쉬는 것이 좋다. 당장의 수입이 사라져도 대게는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일 뿐 치명적 손실은 아니다. 목적 없이 쉬다보면 내 마음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원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방안이 뚜렷해진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곳으로 새 걸음을 딛는 순간 매일 마주하던 마음 속 가난은 슬그머니 물러간다. 

성경에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다. ‘가난’과 ‘가나안’이 묘하게 닮았다. 깨어있기만 하면, 가난한 시절의 끝에는 언제나 기회가 나타난다. 깨어있다는 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의 ‘정신 차림’이다. 호랑이 앞의 공포에서도 정신을 차리듯 가난 그 자체에 분노하고 짜증내며 한탄하지 말고 가난한 시기가 나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매 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사람’은 있어도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그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를 가져다주는 귀인이 있으며, 내 삶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신(神)의 의도가 있다.

나쁜 종교인은 불안을 주입하고, 훌륭한 종교인은 그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일깨워준다. 불안한 미래와 상황만 떠오르는 것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것과 같다. 어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반짝이는 마음으로 관찰하다보면 우리의 마음 속 신(God)이 준비한 큰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속에 항상 있었던 씨앗, 그 씨앗은 우리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몸과 마음 혹은 경제적 여건이 가난한 시절, 내 안의 뻣뻣함은 힘을 잃고 부드러워진다. 그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는 순간, 우리 마음 속 씨앗은 새로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그대로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다. 마치 코페르니쿠스(Mikołaj Kopernik)가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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