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뇌천대장 –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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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뇌천대장 –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
  • 승인 2022.10.2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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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마블의 스파이더맨 영화에 등장하는 말이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그 말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서 조언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이다. 물리력이 크면 그 반작용도 크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무언가를 세게 내리칠수록 내가 그 물건에 가하는 힘도 커지지만 내 손바닥이 받는 충격도 커진다. 그러니 큰 힘을 쓰기 전에는 그 뒤에 무엇이 올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장 괘는 하늘 위에 번개가 치는 형상으로 아주 웅장하고 장대한 것을 나타낸다. 대장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大壯 利 貞

彖曰 大壯 大者壯也 剛以動故壯 大壯利貞 大者正也 正大而天地之情可見矣

주역에서 가장 짧은 괘사 중 하나인 대장 괘의 괘사는 스파이더맨의 저 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힘이고 누구나 우러러보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드러나 있는 일이니만큼, 잘못하는 것이 그만큼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다.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하늘의 양기는 가장 아래에 있는 어린 초구라도 강하다. 그러니 벌써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미성년자이면서 이미 수십 억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나, 대단한 권력자의 자식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숙한 결정으로 가진 재산을 운용하거나 치기 어린 생각으로 권력을 이용한다면 많은 경우 그 결과가 좋지 못하다. 그러니 초구는 마음대로 하면 흉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어야 한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걸 아무때나 사용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실을 어린 초구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九二 貞吉

구이는 음의 자리에 있지만 가운데를 얻었다. 또한 자기 짝인 육오와 서로 응한다. 이러면 자기 마음대로 육오를 휘두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괘인 천괘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자기의 위치나 의무를 잊지 않는 것이다. 만약 구이가 양효가 아니라 음효라면 초구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말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방지축인 막내 남동생을 단속하는 바로 손위의 형과 같은 역할을 구이가 해주고 있기에 초구가 날뛰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羸其角

하늘의 가장 위에 있는 양효인 구삼은 그야말로 힘이 하늘을 찌른다. 비록 내괘에 있지만 그 기세는 바로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소인은 그 힘을 바로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휘두른다. 군자는 그 힘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어디 힘이 있으면서 없는 척 하기가 쉬운가. ‘그런 힘을 가졌으면서 왜 좋은 곳에 쓰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 어디에서든 터져 나온다. 그때는 옳은 결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옳지 않아질 때도 많다. 그러니 바르게 해도 위태롭다. 그런 힘이 있으면, 그런 재력이 있으면, 이것도 돕고 저것도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재물이나 한계가 없는 권력이란 없다. 마음대로 힘을 쓴 소인이든, 고심해 가며 힘을 쓴 대인이든, 언제든 그 한계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니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이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구이가 날뛰는 초구를 누르고 있듯이 구삼의 위에는 여전히 강한 양기인 구사가 있다. 내괘와 외괘 사이를 건너는 것도 강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건너고 나서도 여전히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그칠 수밖에 없다.

九四 貞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구사의 위에 있는 것은 두 음효이다. 그러니 울타리가 터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문처럼 양쪽으로 열리도록 끊겨 있는 음효의 모양새가 꼭 그렇게 보인다. 이제 양효의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강한 기세를 몰아 옳은 일에 쓰면 후회할 일도 없다. 상전에는 藩決不羸 尙往也라 하였다. 울타리가 터져서 걸리지 않는 것은 그 행보가 숭상을 받기 때문인 것이다. 그게 잘못된 일이라면 멈춰 세워야 하지만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가는 것은 막을 이유가 없다.

六五 喪羊于易 无悔

육오는 양효의 자리에 있는 음효이다. 그만큼 힘이 없다. 아래에 있는 것은 전부 양효이고 상승지기를 타고 있다. 막아선다 한들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러니 차라리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구삼의 소인이 제멋대로 구는 것을 막을 힘이 육오에게는 없다. 대신 그 역할을 해줄 구사에게 길을 터주는 것으로 본인도 지키고 상황도 올바른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본인에게 역부족인 것을 알고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다.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상육은 구삼의 짝이다. 음효가 음의 자리에 바르게 있고 구삼과 음양응도 이룬다. 제멋대로 날뛰다가 울타리에 박힌 숫양의 신세인 구삼을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나몰라라 하고 혼자 도망갈 수도, 자기 힘으로 구삼을 울타리에서 빼내어줄 수도 없다. 구삼을 울타리에서 빼내주는 것이 꼭 이로운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삼을 내내 저렇게 방치해둘 수도 없다. 그러니 상육은 때를 보아야 한다. 구사가 올바른 뜻을 다 이루고 난 다음이라면 구삼도 눈치를 보거나 절제를 해야 할 때임을 깨우칠 수 있다. 구삼을 책임지는 것은 상육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너무 쉬워서는 안 된다. 권력자의 자식은 중죄일지라도 가벼운 처벌만 받는 경우가 흔하다. 상육은 그 부모의 입장과 마찬가지이다. 당장이라도 자기 자식을 감옥에서 꺼내고 싶은 것이야 어떤 부모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책임을 통감하고 죄값을 치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상육의 어려운 선택이며 절제이고 미덕이다. 그럴 수 있는 상육이라면 결국 길해질 수 있다.

신분의 계급 차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또 다른 계급제 사회 같다. 학생들은 성적표의 등급으로 서로를 가르며 사회에 나오면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에 따라서 또 등급이 갈린다. 서울에 사는지 지방에 사는지, 자가인지 월세인지에 따라서 또 등급이 나뉜다. 조금이라도 윗등급에 있는 사람은 그 아래로 등급이 매겨진 사람을 깔보고 무시할 수 있는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진 것처럼 행동한다. 그야말로 갑질이 만연한 시대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누구도 저 세상으로 갈 때 십 원짜리 동전 하나 싸들고 가지 못한다. 하늘 위에서 번쩍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 위상을 떨치는 천둥 번개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내 손에 잡힌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진시황도 결국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대대손손 강대한 제국을 이룰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나라들도 결국은 역사 속에 스러져 갔다. 날뛰는 구삼이 울타리를 박은 것처럼 그 휘두름이 그치고 나면 그것은 이제 구사가 문을 열고 앞으로 달려나갈 추진력이 된다. 구삼이 거세게 날뛸수록 구사의 명분은 더해지고 문은 더 쉽게 열린다. 그러니 옳지 못한 방향의 권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거나 속앓이를 하고 있거든 한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천둥과 번개는 늘 한순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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