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별사탕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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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별사탕의 씨앗
  • 승인 2022.10.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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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61

단풍(丹楓)의 계절이 시작된다. 나는 붉은 단()자나 단풍을 보면 늘 단양(丹陽)을 떠올린다. 충북 단양읍에서 6년 좀 넘게 살았다. 제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의림지로 봄소풍을 다녀온 후에 단양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단양중학교에 들어갔다가 가을이 깊어졌을 때 경북으로 전학을 갔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철부지 시절을 보낸 단양을 마음속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산다.

단양읍1)은 장마철이거나 태풍이라도 와서 큰비가 내리면 늘 물난리의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었다. 선암계곡을 지나온 물이 읍내에서 단양천이 된다. 이 단양천이 남한강에 거의 직각으로 합류하는 지형이어서, 큰비로 남한강에 수량이 많아지고 유속이 증가하면 단양천 물이 제대로 빠지지 못하고 불어나 읍내를 삼키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1972년 대홍수 때는 단양군청, 우체국, 경찰서 등의 관공서와 단양중학교, 단양초등학교 일부가 물에 잠겼다.2) 이때의 홍수 피해로 충주댐 건설 계획이 앞당겨 시행되었다.

◇수몰 전 단양읍 전경.
◇단양읍 수몰지구 철거.

제천에 가려고 버스를 타면, 가던 길에 볼 수 있던 시루섬은 모래밭에 땅콩을 많이 심는 곳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루섬의 기적3)으로 불리는 일이 그때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수재민들이 물에 잠겼던 집을 복구하는 동안 단양초등학교 교실 일부를 거처로 제공했다. 놋재나 상방리의 높은 지대에 살지 않는다면 학생들 다수도 거의 수재민이었다. 물에 오래 잠겼던 1학년 교실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나머지 교실에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학교 수업을 받았다. 내 삶에서 오전반과 오후반을 해 본 것은 이때 3학년 때가 유일하다.

수재민을 위한 구호품이 나왔는데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원래는 곡물을 담는 용도인 것 같은 하얀 자루에 담겨서 우리에게 왔는데, 당번이 교무실에 가서 받아오곤 했다. 그것은 바로 건빵인데 특별했던 것은 크기였다. 건빵 한 개가 손바닥 만했던 것이다. 그리고 색깔도 거의 밀가루색이었다. 그 건빵을 한 번에 한 명당 세네 개씩 주었던 것 같다.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서 가족들이 함께 먹었다고 하던 친구도 있었다. 정말로 구호품이었던 것이다.4)

◇시루섬

그런데 오늘 건빵으로 검색을 해 보니, 건빵은 일제(日帝)1930년대에 비스킷을 본 따서 전투식량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군대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건빵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군대에 보급되는 건빵도 쌀건빵, 참깨건빵, 야채건빵 등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건빵 포장 안에는 비닐에 든 별사탕이 있다.

오늘 이글의 주인공이 바로 이 별사탕이다.

 

별사탕

군대란 때로 참 무료한 공간이다. 상관의 간섭도 좀 느슨해지는 소위 말년이 되면 더 그렇다. 괜히 할 일이 없으니 아침에 먹으라고 주는 햄버거용 빵을 내무반에 설치된 빼치카 위에서 눌러가며 구워서 전병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참 조리병은 건빵을 튀겨서 나눠주기도 했다. 내가 군에 있던 1990년에 우리 부대원들이 그랬다.

예전 별사탕 속에는 있었지만 요즘 별사탕에는 이것이 없다. 시간 많은 병사가 별사탕을 이로 반을 잘라 보니 가운데 묘한 것이 있던 것이다. 그것은 황갈색 알갱이다. 가장 흥미롭고 군대라는 집단다운 해석은 그 알갱이가 정력감퇴제라는 것이었다. 스님들이 고사리를 즐겨 먹듯이 국방부에서 피 끓는 청춘들의 왕성한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이런 물질을 건빵의 달콤한 별사탕 속에 감추어 두었다는 주장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하면 국가가 행하는 엄청난 인권유린 행위인 샘인데, 아마도 그렇게 단정을 짓고 군에서 나간 남성들 중에는 아직도 그 개념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뭐 재밌지 않은가.

건빵에 별사탕을 넣는 아이디어를 처음 냈던 분에게 박수를 보낸다. 건빵과 별사탕은 묘하게 궁합이 맞는다. 영천에 있는 육군제3사관학교에서 장교훈련을 받는 동안 나도 열심히 건빵을 먹었다. 그리고 병과 교육을 받기 위해, 당시에는 대구에 있던 국군군의학교로 갔다. 군대에 들어오는 식품에 대한 검사는 의무대에 속한 수의장교5)가 맡고 있다. 군의학교에서 함께 교육을 받았던 동기생 중에도 수의사가 두 명 있었다. 식품검사에 관한 교육을 담당하는 교관을 통해서 이 황갈색 알갱이의 정체를 나는 1988년에 알았다. 그때 군의학교에서 알지 못했다면 나도 막연하게 그것을 정력감퇴제라고 믿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별사탕의 제조공법이 개량이 되어서 황갈색 알갱이가 없이 설탕 씨앗을 쓴다고 한다.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솥을 약한 불로 가열하면서 천천히 돌리며, 그 사이 녹인 설탕물을 전용 기구를 이용해 완성될 때까지 며칠 동안 가늘게 뿌려 별사탕의 크기를 점점 키워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설탕물이 뭉쳐지는 핵으로 황갈색 그 알갱이가 필요했다. 그러니 별사탕에서 황갈색 알갱이가 없어진 후에는 정력감퇴제 의혹이 사라졌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콩나물, 맛스타 같은 품목이 대를 이어 받았었다고 하니 세상 무료한 병사는 어느 시대에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별사탕에 핵으로 들어 있던 황갈색의 알갱이는 바로 좁쌀()이다.

 

사기(詐欺)

체질이란 다름이다. 그러니 남을 속이는 것도 체질마다 다르다.

토양체질은 근거가 전혀 없이도 잘 속인다. 실제로는 옥탑방에 사는 초라한 처지로 자신의 방에 있을 때는 무릎이 잔뜩 나온 허름한 츄리닝 차림이다가, 외출을 할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바르고 나가서는 재벌 아들이라고 사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믿어주고 심지어는 추종하기까지 한다. 관심을 조금만 가지고 언론매체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그런 사기꾼들이 여전히 판 치고 있다. 의사라고 믿고 몸도 주고 결혼자금도 뜯긴 사람, 몇 번의 미끼를 삼키고 거액을 맡기는 사람,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들, 돌팔이의 허황된 치료법에 엮이는 의료전문가들. 잘 속이는 재능을 지닌 토양체질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욕심에 눈과 귀가 먼 사람들이 늘 있다. 세상의 일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금양체질의 사기는 차원이 좀 다르다. 토양체질은 자신이 속이려는 그것이 거짓인 것을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고 상대를 속여먹으려는 욕구가 명확하게 있다. 그런데 금양체질의 경우에는 욕구가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하는 일견 허황한 그것을 그 스스로도 굳게 믿고 있을 수가 있다. 그러니 속는 사람들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씨앗

좁쌀은 씨앗이다. 이것을 근거라고 하자. 그리고 좁쌀에 엉겨 붙은 설탕을 거짓말이라고 해보자. 목양체질은 거짓말을 할 때 보통 근거가 조금은 있다. 거짓말의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유력한 정치인의 집에, 그 정치인이 직접 임명한 적은 없는데 마치 그 집의 집사인 것처럼 늘 그 공간에 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어느날 그 정치인이 좀 많은 서류를 복사할 용무가 생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그가 있었다. 그래서 그를 가까이 불러서 복사 심부름을 맡겼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가 정치인에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네는 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보았다.

그가 목양체질이라면 이렇게 속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모은다. ‘자 여러분도 다들 보셨을 것이다. 보스가 나를 불러서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다. 그러니 나를 믿고 내가 하려는 일에 동참할 사람들은 나한테 붙어라.’ 서류 복사 임무는 팩트다. 그 서류가 비밀스런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 정치인을 파는 큰 거짓말의 씨앗이 된다.

 

1 vs 11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크게 속여먹었던 학자가 있다. 그는 줄기세포가 열한 개면 어떻고 한 개면 어떠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개가 그의 씨앗이고 근거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다. 그런데 그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한 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재현할 수가 없다. 크게 반성하고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하고 속죄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할 일인데 그런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厚顔無恥!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1985년 10월에 충주댐이 완공되기 전에 충북 단양군 단양읍이 있던 곳은, 구단양이라고 부르는데 현재의 행정명은 단양군 단성면이다. 읍소재지의 대부분이 충주댐으로 인한 수몰지구가 되어 가옥과 건물을 철거했고, 남한강 수계 상진대교 상류 쪽에 신단양을 조성해서 이주했다. 물론 구단양에 있던, 내가 다녔던 단양초등학교와 단양중학교도 철거되었다.

2) 그래서 대홍수 후에 구단양에서 단양군청과 단양우체국은 지대가 높은 곳에 새로 지어 옮겼다.  

3)  1972년 태풍 베티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집중호우로 남한강이 범람했고 8월 19일에 시루섬 주민들은 고립되었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250여명의 주민들은 마을에 있던 높이 7m 지름 4m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청년들이 밖에서 스크럼을 짜 노약자들을 보호했다. 물탱크 위에서 14시간을 버티는 사투 끝에 주민들은 치누크 헬기(Boeing CH-47 Chinook)에 구조되었다. 돌이 갓 지난 어린아이 한 명이 희생된 것을 주민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4)  [김명환의 시간여행] 건빵, 주전부리 아닌 ‘비상시 주식’
   - 조선일보 2017. 2. 1. -

5)  사단의 의무근무대에 소속된 수의장교는 세 가지 중요한 임무가 있다. 의무근무대에서는 방역장교이며, 사단의 보급수송근무대에 가면 식품검사장교가 되고, 군사령부 예하 군견훈련소를 거쳐 GOP부대에 배치된 군견을 담당하는 수의장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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