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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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 승인 2022.10.28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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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도서비평┃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나는 그저 될 수 있으면 서로 잘 지내려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얘길 하네.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하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된통 당하게 될 거라 하네.”

장기하와 얼굴들의 곡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의 가사이다. 언제부턴가 “착하다”는 표현은 순수한 칭찬으로 들리지 못한다. “헌신하다가 헌신짝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들이 세태를 반영하는 경구인 양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표현을 듣다 보면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의 섭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가장 힘세고 가장 비열한, 이기적인 누군가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은 다윈이 뜻한 바가 아니다. 다윈은 적절한 자(the fittest one)가 살아남는다고 했다. 가장 힘세고 비열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지도 모르지만, 더 많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 더 많은 공격성과 그에 따른 대가(부상이나 죽음 등)로 돌아오기 십상이기에 가장 적절한 자라고 보기 어렵다. 강하고 비열한 자가 적절한 자가 아니라면 누가 적절한 자일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Survival of friendliest>가 그에 대한 대답이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옮김, 디플롯 출간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디플롯 출간

다정하다는 것이 과연 생존전략이 될까? 다정함, 친화력(이 책에서는 원제에도 쓰인 friendliest를 맥락에 따라 다정함과 친화력으로 나누어 번역했다.)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기도 하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 또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인류는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하고도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종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또 이런 사회 속에서 다정한 사람은 더 많은 번식의 기회와 더 적은 스트레스를 얻게 된다. 그러니 마음껏 다정해도 괜찮다.

다정함은 그날의 기분이나 개인의 성격적 차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인 문제이다. 다정함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 발달했다. 자기 가축화란 야생종이 사람들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인간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발달해왔다. 이 책에서는 개와 늑대, 보노보와 침팬지 등을 이 자기가축화의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인간의 진화 차원에서의 친척들은 남아있지 않으니까).

자기가축화의 주된 예시인 개는 늑대에서 분화되는 과정에서 야성을 잃고 우둔해졌다고들 여겨진다. 하지만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가 엄마의 손짓을 바라보듯이 생후 6주의 강아지도 인간의 손짓을 읽는다. 인간의 손짓과 목소리 등을 읽는 이러한 특성은 개보다 지능이 높은 늑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줄기세포가 어떻게 발현되고 어디로 위치할지 영향을 행사하는 신경능선세포의 변화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축화는 두려움과 공격성 감소가 기본 바탕인데 신경능선세포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부신수질에 관여한다. 더 나아가 이개연골, 피부색소, 주둥이 뼈와 치아, 생식 주기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자기가축화가 진행 된 동물– 개나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친화력을 갖도록 교배시킨 여우-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개연골의 변화에 의해 귀가 펄럭거리고 주둥이가 짧아진다. 이가 작아지고 꼬리가 말린다. 생식 주기가 변화하고 세로토닌 분비수치는 상승하며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된다. 이렇게 자기가축화가 새겨진 동물들-강아지나 교배된 새끼여우들, 걷지도 못하는 아기까지도-은 사람이 물체를 가리킬 때 다른 동물들이 움직이는 손만 바라보는데 반해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눈으로 따라간다. 이는 손의 의도를 추측하고 그 의도를 선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리적인 차원에서 새겨진 친화력은 자신의 가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에게 향하는 공격성이 된다. 친밀감을 느끼도록 하는 옥시토신 호르몬은 출산한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아기를 위협하는 존재를 향해서는 엄마 곰 같은 분노를 유발한다. 자신의 가족 나아가 자신의 그룹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비인간화 경향이 높아진다. 인종차별부터 인종학살까지 이어지는 이런 편견을 극복하는데 교육은 안타깝게도 효과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극복하는 답은 무엇일까? 대학살로부터 유대인 이웃을 도운 이들의 공통점은 빈부나 교육 정도, 직업 등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전쟁 전에 유대인 이웃이나 친구, 동료와 친밀한 접촉이 있었다. 편견이 꺼버린 친화력에 다시 불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위협 없는 접촉이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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