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422) - 盧正祐의 醫案(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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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422) - 盧正祐의 醫案(10)
  • 승인 2022.1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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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southkim@khu.ac.kr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화농성늑막염치료안
노정우교수의 화농성늑막염치료안의 원고본(경희대 의사학교실 소장)
노정우교수의 화농성늑막염치료안의 원고본(경희대 의사학교실 소장)

25세의 남성. 소음인. 이 환자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소음인 체질이다. 10세 미만까지 야뇨증이 있었고, 여름에는 무좀, 겨울에는 동상으로 고생했다. 13세 때부터 책을 읽으면 두통과 어지럽증이 나서 검진을 받아본 결과, 원시성 난시라는 진단을 받고 안경을 썼다. 조금만 과식을 해도 소화불량으로 며칠씩 고생하는 등 건강 열등생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허약한 몸으로 신문 배달 등의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다. 18세 때는 겨울에 불고기를 먹은 것이 원인이 되어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수술 대신 내과적 치료를 하여 10여 일 만에 퇴원했다. 그 뒤 1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감기가 폐렴으로 진행되었고, 입원한 지 40일 만에 늑막염으로 판정되어 늑골 절단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약 2,000cc의 악취 나는 청록색 膿을 배출하고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療口에 꽂은 고무관을 빼면 다시 발열하여 7년 동안 고무관을 꽂은 채 생활해 왔다. …위궤양으로 인한 복통으로 밤새 괴로워하다가도 散聚湯을 5∼6첩만 쓰면 감쪽같이 뱃속이 편해졌다. 香砂養胃湯을 써보기도 하고 때로는 歸脾湯에 백작약 1전 신곡 8푼 황련 2푼을 써보기도 했다. 또 명망 높은 한의사의 처방으로 補中益氣湯加減 100첩을 썼더니 소화도 잘되고 기력도 좋아졌다. 그러나 이 모든 처방이 患部에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한때 폐결핵 초기에 薏苡仁을 가미한 人蔘養榮湯 30첩을 복용한 뒤 건강이 회복되었으나 환부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뒤 격수, 삼초수, 신수 등에 몇 달간 뜸을 떴다. 동시에 인삼양영탕 90여첩을 3개월 동안 계속 복용해서 수술한 지 7년 만에 瘡口가 완쾌되었다. (노정우, 히로다 아키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사상의학』, 현암사, 2003)

按語) 盧正祐敎授(1918〜2008)는 경희대 부속한방병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쌓은 한의학자이다. 이 치료 의안에 노정우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환자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을 타고난데다가 영양 섭취도 못하여 체력이 부족하였다고 한다. 어떤 처방이나 어떤 양한방 치료를 통해도 효과가 없어서 노정우교수에게 찾아왔다. 이에 체질을 위주로 하는 처방을 활용하고 환자 스스로 체질에 맞는 식사 위주의 자연식을 하도록 하여 건강을 찾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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