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중풍손 –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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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중풍손 – 변화의 바람
  • 승인 2022.11.2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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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박 혜 원
장기한의원장

일본어에는 ‘공기를 읽는다’는 말이 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를 봐라’는 직접적인 말 대신 에둘러 말한 것이다. 스콜피언스의 노래 ‘Wind of change’도 냉전 시대의 종식과 독일 통일 시기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느끼고 있던 시류의 변화를 나타냈듯이, 사람들은 흔히 어떤 징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기나 그 흐름인 바람으로 표현하곤 한다. 

바람이 위아래로 겹친 괘는 巽이다. 손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彖曰 重巽以申命 剛巽乎中正而志行 柔皆順乎剛 是以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손괘는 음양응을 이루는 효가 하나도 없다. 자석의 같은 극끼리 닿은 것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흔들리며 움직임이 자유롭다. 바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바람의 흐름을 읽고 잘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늘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로우며, 그 방향을 잘 파악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바람은 그칠 때가 있다. 지속성이 없고 변덕스럽다. 그러니 크게 형통할 수 없다.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의 기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때론 위험하다. 무인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여차하면 남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위험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절도가 있어야 하며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위에서 감시하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면 결국 사회 전체가 흉흉해진다. 그러니 손괘에서도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史는 하급 관리이며 巫는 알다시피 무당이다. 오늘날의 무속이란 미신에 가깝지만 주역의 시대에 점을 치는 행위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그야말로 하늘의 뜻을 알아보는 행위였기에 큰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어지러운 듯하다는 것은 그 점치는 이들이 자주 들락거린다는 뜻이고, 그만큼 변수가 많고 결정이 어려운 시기라는 뜻이다. 또한 史는 민원을 듣고 처리하거나 상급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민심을 전달하는 현장직이란 뜻이다. 구이의 행위는 민원을 듣고 점을 치는 것 그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시기인 만큼 심사숙고하여 옳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 의무가 구이에게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아래에 있는 무인인 초육이 갈 바를 잃는다. 중정한 자기 자리와 의무를 지키되, 아래에서 흔들거리는 초육에게 단호히 갈 바를 가르쳐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하늘의 뜻과 민심을 읽으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九三 頻巽 吝

겸손은 미덕이다. 잘난 척하는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나친 사양은 호의를 베풀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듯이, 모든 칭찬을 마다하고 반박하는 식의 겸손이라면 그 행위는 옳으나 그 이면의 뜻은 궁해진다. 호의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는 것도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 때와 분위기를 잘 알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대인이고 군자이다. 자신의 겸양이 더 중요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명분만을 고수하여 일을 그르친다면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六四 悔亡 田獲三品

육사에서 말하는 삼품은 중요한 벼슬 품계를 이야기할 수도, 선비가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을 의미할 수도 있다. 육사는 비록 제 짝인 초육과 음양응은 이루지 못하지만 음의 자리에 바로 있다. 역시 짝과 음양응을 이루지 못하는 구오의 옆에서 보필하며, 아래의 세 효를 관망하는 위치이다. 아래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어야 구오에게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구오가 삼품, 즉 신하가 될 인재들을 적시에 등용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단단한 기둥 역할을 해야 하는 구오 대신 부드러운 육사가 그 일을 해내기에 적합하다. 그러니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으면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九五 貞 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구오는 이 자율적인 조직의 기강을 잡는 존재다. 원칙을 세우고 테두리를 그리며 흔들리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갑자기 온다. 마치 바람의 근원이 어디부터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미약한 시작은 정확한 좌표를 지목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마침은 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그 잎이 흔들리다가 바람이 그치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바람의 시작은 모르나 끝은 확실하다. 庚日에서 앞서 3일이면 丁日이며, 후로 3일이면 癸日이다. 계일이 지나면 다시 甲, 즉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미 시작된 시류가 있다면 구오가 할 일은 그 종착지를 정하는 것이다. 이 시류를 모두의 이익으로 끌고 나가는 안목과 통솔력이 필요하다.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 凶

똑같이 겸손함이 상 아래에 있는데, 구이는 길하고 상구는 흉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구이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흐름을 읽었다. 그러나 상구는 그렇지 않았다. 그 흐름에 역행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끼로 바람을 벨 수 있던가. 그 어떤 부자와 권력자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한때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던 회사가 이제는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벌써 여러 번 일어났다. 도끼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구 정도 되면 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하던 일들을 그대로 계속하며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움직인다. 격변하는 손의 시대에는 그 시류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상구는 그것에 실패했고, 그래서 흉하다. 

익숙한 것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오랫동안 그것이 진리라고 믿어왔다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왔다면,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누군가 옆에서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것은 자기 수양이 잘 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귀가 얇아 이리저리 흔들리라는 것이 아니라,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과 유연함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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