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여성’의사가 기술한 완경기를 여성‘한의사’가 읽다
상태바
[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여성’의사가 기술한 완경기를 여성‘한의사’가 읽다
  • 승인 2022.11.25 0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완경 선언

한의사가 된지 이십년이 넘었다. 한방부인과전문의 시험을 보면서 면접에서 갱년기증후군에 대해 구술하던 때로부터도 얼추 이십년이다. 이제, 내가 완경이행기로 접어드는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이 책의 부제가 곧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완경을 병적인 상태로 보고, 완경이 끝나면서 여성으로써 존재 가치가 끝난다는, 성적 함의로 여성을 평가하며, 남성중심적으로 기술되었던 역사적 내용을 살펴보고, 한 인간으로써의 여성의 완경에 대해 언급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이 책의 서두에 언급된다. 우리나라에서 폐경이라는 단어를 완경으로 바꿀 때 부정적인 뜻(폐가 버려지는 것이라는 느낌으로 쓰일 때가 많아서)의, 닫히는 閉經이 아니라, 완성되는 完經으로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영미권단어(우리가 완경이라고 번역하는) menopause에서, -pause가 일시적 멈춤이라는 뜻이라는 것, 이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쉬우며, 심지어 간혹 여성성을 ‘일시적 멈춤’ 상태를 벗어나 더 연장하고자 하는 제품(또는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광고문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한편 네덜란드에서 같은 시기를 표현하는 단어는 ‘overgang’인데 이 단어의 뜻은 ‘A에서 B로 가는 길을 통과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생을 멈춤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넘어가는 길을 통과한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론 閉나 完보다도 통과하는 시기라는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이런 관점으로 여성을 바라보며, 완경기에 나타나는 증상들과 그에 대한 여러 의료, 비의료적 처치에 대한 <팩트>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어 하는 책이다.

제니퍼 건터 지음,
안진희‧정승연‧염지선 번역,
생각의힘 펴냄

이 책을 나는 여성 한의사로서, 읽었다. 여성의 관점에서도, 한의사의 관점에서도 이 책은 읽을 만 하였다.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환자들을 만날 때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다고 해서 한의사로써 할 수 있는 처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의학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증상들이 이해하기 쉽게 씌여 있고(에스트로겐을 벽돌에 프로제스테론을 시멘트에 비유하는 구절같이), 너무 어려운 의학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여성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들과 그 이유, 그에 따르는 처치 방법과 제품들에 대해서 꼼꼼하고 넓게 학문적으로 기술하였다. 이 두 가지 장점을 갖춘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을 기술 할 때 저자는 조금 공격적인 느낌이다. 이 저자가 처한 진료환경과 나의 진료환경이 달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나는 과거에 비해 요즘은 완경기에 대해서 ‘질병의 상태’나 과소평가 되는 일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시기의 여성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호르몬에게 책임을 넘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여성들이 느끼는 신체의 변화, 신체적 불편감, 감정적 변화들에 대해서, 갱년기 증상인가봐 하고, 심지어 70대 어르신도 말할 때가 있다. 때로 여성들이 40대 중반이후가 되면 자신의 몸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삶의 흔적에 대해 진지하게 해결하기보다 마치 호르몬의 노예처럼 말하는 관점이 너무 지배적이지 않나 싶다. 남성의 성호르몬과 여성의 성호르몬은 너무 다르게 취급받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결국, MHT(완경기에 사용하는 호르몬 요법)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잘 사용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2002년, 여성호르몬을 완경기에 사용하는 일과 유방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 뒤 MHT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으며(그런데 그렇게 많은가? 한국에선 그렇게 많지 않은 듯 싶은데!) 그 사실에 대해서 건터 박사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주장은 여러 검증되지 않은 대체적 방법들이 아니라, MHT를 적절하게 잘 시행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르몬요법뿐만 식이와 건강식품에 대해서도 챕터를 할애하고 있으며, 호르몬요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고 말하는 요법이나 대체제를 경계하라 경고한다.

번역을 감수를 하신 윤정원님의 서문에 보면 이 책에서 소개된 방법들 중에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예를 들어 질링이나 질내 크림 같은 것) 코로나19 기간 중에 원료 수급 불안정, 수입과정 봉쇄 등으로 약품 품절 대란 사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필수의약품은 정부에서 대체품 확보 등을 통해 공급될 수 있었지만 피임약과 완경후호르몬요법약은 필수의약품에 포함되지 않아 제약회사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피임과 완경에 대한 사회문화적, 정부 공공 정책적 접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 한의사로써 나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에선 침치료는 완경기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피토에스트로겐(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체내에서 에스트로겐으로 변화되어 사용될 수 없다고 강조하여 말하는데 많은 한약재들이 식물성이다. 한약으로 완경기의 증상을 치료한다는 것에 대해 이 책은 간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인가? 완경기에 호르몬제를 써야할까 묻는 환자들에게 나는 어떤 조언과 치료를 할 것인가?

완경이행기에 있는 환자들이 혹시 모든 것을 호르몬 탓으로 돌리며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호르몬 요법에 대해 중립적인 관점에서 환자 개별에 맞춤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무심코 언급하는 단어가 환자들에게 여성의 완경에 대해 남성중심적 태도를 강화시키는 단어는 아닌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저자가 광범위하게 넓은 영역을 기술하며 호르몬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태도처럼, 나는 이런 책을 읽고 더 넓은 관점의 영역을 흡수하면서 한의사로써 각각 개별적이고 오로지 그 한사람이 겪는 완경에 대해, 맞춤하는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내 진료실에 이 책을 읽은 환자가 와서 나에게 질문을 한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여성으로서 뿐 아니라 여성 ‘한의사’로써 읽어서 훨씬 흥미롭고 진지하게 읽었던 책이었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