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치의학 창시 및 의방유취 편찬 참여한 ‘전순의’ 재조명되다 
상태바
식치의학 창시 및 의방유취 편찬 참여한 ‘전순의’ 재조명되다 
  • 승인 2022.11.28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mjmedi@mjmedi.com


경기도한의사회 제4회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 개최 

[민족의학신문=수원, 김춘호 기자] 의방유취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조선시대 식치의학의 창시자이자 세종부터 세조까지 4명의 임금의 어의로 활약한 전순의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기도한의사회(회장 윤성찬)가 주최하고 한국의사학회(회장 안상우)와 경기도한의사회와 공동주관한 ‘제4회 경기도한의사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가 지난 26일 경기도교통연수원 소강당에서 진행됐다. 

지난 2019년 이후 3년만에 개최되는 이번 세미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열렸다.  

윤성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의계 의학 이론을 재정립한 선배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큰 의의가 있다. 올해 선정한 전순의 선생은 식치의학을 창립한 분이고, 4명의 임금을 모시는 동안 내의원에 근무하면서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했다”며 “우리에게는 허준 선생 외에도 정말 많은 훌륭한 선배가 있다. 이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의학사를 전공하는 교수님들이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중한 일이니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세미나를 통해 생애와 업적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는 전순의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의 발표가 진행됐다.  

◇안상우 의사학회장.
◇안상우 의사학회장.

안상우 한국의사학회장은 “전순의 선생의 생몰년은 미상이지만 대략 1400년~1469년 전후이며 세종부터 시작해 문종, 단종, 세조까지 4대 임금에 거쳐 어의로 활약했고 전의감과 내의감에 종사했다. 세종 말엽 이미 기술관으로 최고의 관직인 정3품의 내의원정을 했다”며 “그는 의방유취 편찬에도 참여했는데 동의보감의 10배 분량의 의방유취가 없었다면 허준이 전쟁 중에 동의보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의방유취는 동의보감의 모태이자 출발점이지만 현재 한국 땅에는 없다. 249권이 일본 황실 도서관에 있다. 동의보감 이후 꼭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야하는 의서”라고 설명했다. 

또한 “식치와 식료라는 용어는 실제 실록에서도 썼다. ‘치’와 ‘료’는 같은 의미다. 세종의 당뇨를 치료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식치다. 의방유취에는 식치, 금기, 도인법이 이론과 방약에 필수적 병용 요법으로 처방과 별도로 구성돼 있으며 식치편은 크게 음식물의 가공법과 제형으로 나누어 기술돼 있다”며 “이것이 동의보감에까지 발전돼 ‘건강의 근본은 올바른 식사에 있으며 병을 고치는 길은 약에 있다. 음식의 올바른 것을 모르면 우리의 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없고 약성을 분명히 모르고는 병을 고칠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순의 선생이 세조때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의서인 식료찬요는 이제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잊혀진 책이었다”며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한의사들이 아닌 요리를 연구하는 사람들만 재미있게 본다. 개인적인 소망은 음식이 치료되는 약성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기에 한의사들이 많이 읽기를 바란다. 한의사들이 음식이든 약이든 같은 관점에서 응용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순의 선생은 3번의 징계도 받았지만 곧바로 복권됐다고 한다. 

안 회장은 “어의 전순의는 세종 31년(1449) 12월 동궁의 등창을 치료하지 못해 직첩을 환수했으나 이내 풀렸고, 문종 즉위년(1450) 2월 세종임금의 승하로 직첩을 회수, 전의감 서원(書員)으로 강등됐으나 곧바로 4월에 돌려 받았다”며 “단종 즉위년 5월 문종 승하 책임으로 고신(告身)을 거두고 전의감 청직(廳直)으로 강등, 내의원 출사 금지를 당했으나 이듬해인 2월에 고신을 환급받았고 3월에는 군직(대호군)을 수여받았다”고 말했다.   

풍한과 전순의를 주제로 발표도 이어졌다.  

◇김홍균 한국전통의학사연구소장.
◇김홍균 한국전통의학사연구소장.

김홍균 한국전통의학사연구소장(내경한의원)은 “풍한에 관한 이야기는 한의학이 존재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말이다. 전순의는 풍과 한에 ‘상한’이라는 말이 끼어들어 ‘한’과 ‘상한’의 구분점이 모호했던 것을 확실한 선을 그어 타개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그동안 도구에 대해 등한시했다. 모든 문명,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도구와 기술로 나뉜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는 어떤 도구를 사용했느냐로 나뉘며 도구에 의해서 문화를 일으킨다”며 “우리는 엄청난 문화를 갖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문명에 의해 문화가 밟혔다. 현재는 우리의 도구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혈압계, 혈액검사 등 현재 있는 도구라도 활용해 한결 간편하게 풍한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경희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패널로는 세명한의대 국수호 외래교수와 전세환 천안 전찌 중앙종친회장이 발표를 진행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