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서 공부, 한의 치료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 기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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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 공부, 한의 치료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 기를 수 있어”
  • 승인 2023.01.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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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mjmedi@mjmedi.com


▶인터뷰: 의서공부모임 운영 중인 이태형 원장(경희이태형한의원)

“참여하고 있는 한의사 배경 달라 흥미로운 의견 교류‧논의 가능”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지난해부터 동의보감을 비롯한 다양한 의서를 공부하는 모임인 ‘의서공부모임(의공모)’를 운영중인 이태형 원장. 그는 의사학을 전공하고 임상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이어나가던 중 의서 공부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한의사를 위해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의서공부모임(의공모)을 운영 중이다. 어떤 모임인지 소개해달라.

동의보감 및 경악전서, 의학입문 등의 의서 학습이 한의 임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이 모여 함께 공부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임이다.

 

▶진료 이후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을텐데, 모임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의사학을 전공하고 여러 연구를 진행해오며 현대의 임상 한의사들에게도 의서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에 지난 2018년, 개원을 통해 임상 현장과 직접적으로 맞닿게 된 이후, 나 스스로도 좀 더 의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몇몇 한의과대학 학생들과 함께 동의보감 공부 모임을 만들어 매주 공부를 지속해왔다.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가 어려워지자 모임 장소를 한의원이 아닌 온라인으로 변경했고, 지난 2022년 초에는 의서공부모임(의공모)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소개글을 올려 참여 의사를 밝힌 한의사 선생들 및 한의과대학 학생들과 함께 현재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에 의서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의서 공부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시작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특히 동의보감과 같은 종합 의서의 경우 그 양이 방대하기에 적어도 수년간의 시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경희대학교 의사학교실에서 조교로 근무하며 김남일 교수님, 차웅석 교수님과 함께 의서를 공부하고 연구했던 경험, 그리고 현동한의원에서 부원장과 학술위원장으로 역할하며 현동 김공빈 선생님께 동의보감과 이를 토대로 한 한의 진료를 익혔던 경험 등을 토대로 의서를 학습하고자 하는 한의사나 한의과대학 학생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의대 졸업 이후 의사학을 전공했다. 임상 과목이 아닌 의사학 교실에 들어간 이유가 궁금하다.

한의과대학 학생 때 각가학설 수업을 들으며 의서 학습에 흥미를 갖게 됐다. 당시 김남일 교수님께서는 여러 의가들의 학설이 동의보감이라는 의서 안에서 어떻게 인용되고 활용되는지를 알려줬는데, 이를 통해 한 의서 안에서도 여러 의론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엮일 수 있으며, 임상 실재에 있어 각 의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이해를 토대로 한의 임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의서 학습이 바탕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지원 당시까지도 의사학교실이 ‘역사’를 다루는 곳임은 잘 알지 못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원전 과목을 부담스러워하고 또 임상에서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의사 선배로서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면. 기본적으로 한의과대학에서의 교육은 임상 한의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이나 의사학 등의 학문도 임상 한의사 양성 및 교육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원전 과목을 부담스러워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원전 교육이 한의 임상과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원전’이라는 용어를 ‘의서’라는 용어로 바꾸어보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의서는 본래 환자 치료라는 실용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항상 고정되어온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의가들의 임상 현장에서의 검증과 논쟁을 토대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의서 학습은 당연히 현대의 한의 임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로 역할 할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역할해야 한다.

특히 내가 의서를 직접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의 치료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원전이라고 하면 불변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식의 인식을 갖기도 하지만, 각가학설의 맥락에서 의서를 공부해보면 의가들마다 더 나은 치료를 위한 치열한 논쟁을 이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만 하더라도 한 병증 안에서 여러 의가들의 의론들이 대립하기도 한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및 병증에 따라 특정 의가의 의론이 그 상황에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나는 어떤 학파를 추종하기 때문에 어떤 의론과 치료방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라는 식의 고정된 사고는 피해야 한다. 한의학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자와 병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과대학에서의 원전 혹은 의서 교육도 좀 더 한의 임상과의 연계를 토대로 교육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재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스터디가 진행되고 있다. 진도는 어느정도 까지 진행됐으며 앞으로 어떤 교육 커리큘럼을 계획하고 있는가.

2022년 5월부터 공부를 시작해 현재 동의보감 내경편 공부를 마무리했다. 2023년에는 우선 의학입문과 경악전서의 일부를 공부하고, 이어 동의보감 외형편 공부를 진행하려고 한다. 동의보감 전체를 보는데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의서공부모임은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의서공부모임을 이끌고는 있지만 항상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모임에 임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의사들의 배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의서 공부와 더불어 흥미로운 의견 교류와 논의가 가능한 것 같다.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향후 오프라인 모임도 계획하고 있는가.

기존 오프라인 모임을 코로나로 인해 불가피 줌으로 옮겨 진행하고 있지만, 온라인 모임으로 전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 지역에 상관없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큰 것 같다. 계속해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되, 여건이 되면 오프라인에서도 얼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모임에 참여를 하고 싶으면 어떤 조건이 있으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모임의 크기가 커지면 상호 토론이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어 현재로서는 20명 내외로 모임을 유지하려고 한다. 매년 초, 의공모 인스타그램 페이지 등을 통해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이다.

참여를 위한 별다른 조건은 없지만 꾸준하게 함께 공부하실 분이면 좋겠다. 또한 상호 간 존중을 토대로 본인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이라면 좋겠다. 임상과 연계해 의서 공부를 함께 하실 한의사 선생님 혹은 학생분들께서는, 이후 의공모 메일 계정을 통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다. (uigongmo@gmail.com)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사학 학위 과정 중 통합의학과 한의학 현대화 논쟁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통합의학적 맥락에서 한의학을 어떻게 현대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보통 한의학을 현대화해야 한다고 하면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 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의학 자체가 오랜 세월 임상의학으로서 역할해 왔음을 상기해본다면 현대에 한의학의 임상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작업 중 하나가 한의 진단 및 한의 병명을 토대로 한 진료기록 공유 및 임상 연구라고 생각다. 현재 한의학계에서는 KCD 상병명에 기초한 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및 임상 연구에 역량이 많이 쏠려 있다. 물론 KCD 상병명을 토대로 EBM에 근거한 진료지침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의 진단 및 한의 병명에 의거한 진료기록 공유와 임상 연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통합의학적 견지에서 볼 때 현대의 한의사들은 생의학적 진단과 한의학적 진단을 모두 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지난 2017년, 경희대학교 경혈학교실 채윤병 교수께서 개최했던 ‘Data Driven Medicine Conference’에서 만난 레피어스의 이수현 대표와 지난 5년여 시간 동안 ‘동의보감 기반 진료기록공유시스템’을 개발해 현재 의공모 공부에 함께 활용하고 있다. 해당 진료기록공유시스템은 동의보감 목차 및 한의 병명에 의거하여 현대의 한의 임상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료기록을 쌓아가고, 이를 토대로 한의사들 간 보다 나은 치료를 위한 논의를 함께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활용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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