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를 보호하는 통증
상태바
[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를 보호하는 통증
  • 승인 2023.01.13 0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주희

서주희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고통의 비밀, 몬티 라이언 지음

허리가 또 아파오기 시작한다. 일이 많아서 오래 앉아 있었기도 했고,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른쪽 다리도 덩달아 좀 저린 것 같다. 이쯤 되니 작년에 찍었던 MRI상에서 보였던 허리 사진이 떠오른다. 디스크가 다시 도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허리와 다리도 더 아파지는 거 같다. 약을 먹어야 하나? 추나를 받아야 하나? 약침을 할까? 이것저것 해줄 건 많아서 한의사라는 직업이 좋긴 한 것 같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에게 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조금 나은 것 같은데, 여전히 아프다. 다시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무슨 문제이지? 어디가 잘못된 걸까?

박선영 옮김, 상상스퀘어 펴냄

아마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에 있어서 각각의 포션은 다르겠지만, 통증은 삶에 있어서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익숙한, 하지만 반갑지 않고 만나기 싫은 그런 악역일 것이다.

통증이 나타나면, (이 책에 의거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통증이 지각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일까? 통증이 나타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를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이(아마 거의 대다수가) 통증이 나타나면, 이건 뭔가 몸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뭔가 찢어지거나, 파열되거나, 염증이 생겼다거나, 하여간 아프면 일단 조직이나 기관 등 어딘가의 손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암묵적인 정언명제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몬티 라이언 박사는 통증이 조직 손상의 척도라는 말은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통증이 조직 손상의 척도라면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반드시 통증을 느껴야 하고, 손상되었을 때에만 통증을 느껴야 할뿐더러 손상된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 임상이나 연구에서도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케이스는 많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진료실에 있다보면 MRI상 디스크가 심해도 아무런 통증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어떤 검사에서 정상이어도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만난 경험들이 있을 테니깐.

그렇다면 통증은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 탕탕탕. 통증은 몸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거나 손상이 일어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 인 것이다. 실제로 위험하거나 손상된 것과는 전혀 별개이다.

이는 2020년 7월 국제통증학회국제통증학회 (ISAP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의 정의에 의하면 “통증은 실질적 또는 잠재적인 조직손상이나 이러한 손상에 관련되거나 혹은 그러한 손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불쾌한 감각 및 정서적 경험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즉 통증이 조직손상을 의미하지 않을뿐더러 통증은 감각뉴런의 활동으로만 추론할 수 없는,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영향을 받는 아주 주관적인 개인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는 만성통증 환자나 플라세보 효과를 설명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특히나 외로움이나 사회적인 소외, 차별 등의 사회적 요인은 통증을 더욱 가중시킬뿐더러 유발하기도 하고 만성으로 유지시킨다.

통증은 기억하는데, 이 역시 자기보호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적응적(당시에는 적응적인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부적응적인) 반응이다. 큰 범죄나 테러가 발생하면 경찰이나 보안요원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활동하는 것처럼, 또한 트라우마 사건이 발생하면 이후에 극도의 과잉반응이 나타나는 것처럼, 만성 통증은 처음의 통증으로 인하여 놀랐던 뇌가 이후 과잉반응을 보여서 초기 손상이 사라져도 통증이 지속되는 것이다. 즉 늘 사사건건 이빨을 드러내며 과잉충성하는 반려견 같다고나 할까. 겉에선 으르렁거리고 있어도 그 역할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한 보디가드로써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통증과 관계맺음에 있어서 첫 악수가 된다.

만약 지금 통증이 있다면, 무조건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일단 멈추고 호기심을 가져보자. 호기심을 가지고 통증이 있는 그 부분을 마음의 눈으로 한번 바라본다.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색깔이 있다면 무슨 색깔일 거 같은지, 질감은 어떠한지, 무거운지 가벼운지, 움직이는지 가만히 있는지, 잠시 바라본다. 으르렁거리며 공격하는 개가 아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열심히 자기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부분이다. 그 부분과 조금 친해진다면, 한번 물어봐보자. 지금 나에게 어떤 걸 알려주려고 하는 건지. 나를 어떻게 보호하려고 하는 건지...

그 의미를 알게 되면,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건지 알게 되면, 이제 통증은 악역의 배역을 벗고 진정한 나의 동반자로써의 배역에 충실할 것이다.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