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칼럼](125) 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
상태바
[김영호칼럼](125) 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
  • 승인 2023.02.03 0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김영호
한의사

우리 마음에는 자기만의 <턱>이 있다. 과속 방지턱을 지날 때 마다 차가 덜컹거리듯, 우리는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덜컹거린다. 그 <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기억의 저 편으로 밀어두고 자주 떠오르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좋을 것이고, 오래 전 일이지만 매일 혹은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삶의 질이 만족스럽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적 기분은 ‘행복감’의 크기나 빈도가 아니라 불편하고 대면하기 싫은 ‘턱’이 좌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화학자 리비히(J. von Liebig, 1803~1873)가 주장한 최소량의 법칙에 따르면 ‘10대 필수 영양소 중에서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항상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모자라는 요소’라고 했다. 가령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인산, 유황,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 중 한 가지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제아무리 많이 들어 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으므로 경작물의 성장은 가장 부족한 것에 의해서 제한된다는 것이 '최소율의 법칙‘이다.

 

우리의 마음과 기분도 다르지 않다.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한두 가지 요소가 결정적 원인일 수 있다. 누구에게도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과 감정 혹은 생각방식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에 드리우면,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전체적인 삶의 행복감을 떨어트린다. 그래서 행복한 일상을 위해서는 이미 풍요로운 것들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부분을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마음이 정확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유도 모르겠고, 그 기분을 정확히 표현하기도 어렵다. 마치 미꾸라지를 맨손으로 잡을 때처럼 마음은 요리조리 우리의 능력 밖으로 벗어난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지만 뭐라고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 상태를 콱 잡아서 ‘이거야!’라고 표현해주는 도움.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아가는 이유도 미래를 알고 싶다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은 이유가 더 크다.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불편한 자신의 내면을 타인의 언어로 들었을 때 위로받는 느낌은 강력하다. ‘당신! 이래저래 해서(형이상학적인 이유와 근거) 지금 고생하고 있는 거야. 힘들지?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잘 견뎌. 그러면 곧 좋아질 거야.’ 대충 이런 말을 통해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정리하고 견뎌낼 힘을 얻고 나면 일상이 훨씬 나아지기도 한다. 이 경험을 잊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유명하다는 곳들을 찾아다닌다.

대여섯 시간씩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대화가 오가는 중에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을 발견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통해 위로받으면서 마음의 턱이 사라지는 경험 때문에 수다를 끊을 수 없다.

현대인들이 위로와 힐링 서적들을 꾸준히 찾는 이유도 비슷하다. 내 마음을 콕 찝어 알아주는 듯한 결정적 문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래 맞아! 내 마음이 바로 이렇지’하는 순간 우리는 글로써 위로를 받는다. 이미 내 마음에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가려운 감정을 문장으로 완벽하게 표현해주었을 때 우리는 독서의 쾌감을 느낀다.

자꾸 끌리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만나고 싶은 사람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들이다. 마음속에 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다루지 못하던 것들을 타인의 입이나 문장을 통해 밖으로 꺼내어지는 순간, 그것들의 악의(惡意)는 사라진다. 혼자 끙끙대던 나만의 것들이 사악한 힘을 잃고 그저 평범한 우리 모두의 경험 중 하나로 변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다들 그랬구나. 아무리 긴 밤도 새벽을 피할 수는 없구나.’ 이렇게 마음 속 주관(主觀)이 객관(客觀)화될 때 턱은 사라지고 불편했던 마음은 편안해진다.

지금 마음이 불편하다면 꺼내야할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밖으로 꺼내보자. 밖으로 꺼내면 보잘 것 없는 것이 속에 감춰져 있을 때는 커보이게 마련이다.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지금 마음속에서 ‘그거 한번 해볼까?’하는 바로 그 생각이 정답일 수 있다. 결국 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혹시 지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이런 기준을 가지고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OO야~ 어떤 게 더 마음 편한 일이 될 것 같니?”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