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45> - 『(智竗措鍼)經驗方』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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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45> - 『(智竗措鍼)經驗方』③
  • 승인 2023.0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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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禍家餘生, 병든 老夫의 資生之道

  조선시대 滅門의 禍厄을 당한 지식인으로서 남은 일생은 병고가 아니래도 고통과 수모로 점철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스러운 신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禍家餘生’이라는 자조적인 표현 뒤로 자신을 숨긴 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골수에 병이 들어 고통에 빠진지 오래니 아픔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말로 뼈아픈 심정을 밝혔다.

 ◇ 『지묘조침경험방』

 세상을 등지고 숨죽여 살아야만 하는 비참한 죄인으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애써 억누르고 지내지만 나이가 들면서 육신에 밀어닥친 질병의 고통을 벗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았나보다. 저자는 하늘이 생명을 길러낸 이치가 있다면 기혈을 배양하여 인명을 살려내는 길 또한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범례를 살펴보면, 첫 대목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經學은 영원히 변치 않을 세상의 벼리(綱紀)가 되니 어려서부터 얻은 병이 낫지 않는다하여도 綱常(인륜)은 음식과 의복으로 더불어 몸을 기르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의서의 첫 대목으로는 다소 의아스러운 느낌이 드는 문구다. 하나 저자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유학자로서의 기본자세와 처신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조문은 의가의 전통적인 격언으로 내려오는 경구이다. “10명의 환자 가운데 8, 9인을 속히 쾌차시키더라도 단지 한 사람을 잘못 치료해서 죽음에 이른다면 아홉을 살린 공덕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만 한 사람에게 끼친 죄악만이 남게 된다.” 빨리 속효를 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심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어 세 번째 조문은 윗 문장에 대응하는 구절로서 의원이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10명 가운데 8~9명을 그저 그런 무해무익한 치료효과를 보일지라도 단 1명만 쾌차시킨다면 그 공덕 또한 큰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용렬한 의원이 많은 환자에게 큰 효험을 내고자 하여 다급한 욕심에서 과격한 치료를 무릎 쓰다가 혹시라도 인명을 해칠까봐 경고하고 훈계하고자 하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조문의 글귀에서는 위에서 살펴 본 두 구절과는 상반되는 입장에서 의원의 과감한 결단과 용기를 북돋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곧 “병자가 死境에 이르러 죽을지 살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 할지라도 증세가 분명하다면, 자신의 명성을 아껴서 치료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타이른다.

  또 병자의 殘疾이 오래되어 묵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기가 침범한 경락이 분명하다면 섣불리 승양익기해서는 안되다고 경고한다. 그 다음 구절 이후로는 개개의 난치질환이나 가볍게 판단하여 그르치기 쉬운 여러 가지 질병증상에 대한 감별점과 치료에 있어서 주의해야만할 사항을 같은 방식으로 단순명료하게 지적해 놓았다.

  예컨대, 大風麻木에 하나의 경락을 침범해서 다른 경락으로 犯越했다면, 치료하기 어렵다든지 錢風에는 비록 환부가 전신으로 퍼졌더라도 치료가 가능하다든지, 勞瘵병은 비록 나앗다 할지라도 방로와 색정(房色)을 삼가지 않으면, 다시 목숨을 구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금기를 살펴야 한다든지, 뱃속 병에는 가장 유사증상이 많으니 병증을 진단할 때 노련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또 의사윤리에 대한 대목도 빠트리지 않았으니, “만약 병자를 치료하는 일을 생계의 방편으로 삼아 재물을 모으고 뇌물 받기에 힘쓴다면, 마침내 다른 사람을 속이는 밑천이 될 뿐이다.”라며 꾸짖고 있다. 한편 증상이 비슷해서 판단이 어려운 경우, 겉으로는 용렬한 의원이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띤다하여도 속으로는 항상 털끝 같은 증상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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