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인생을 걸고 척도를 불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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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인생을 걸고 척도를 불신하다
  • 승인 2023.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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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묘년 검은 토끼띠의 새해가 밝았구나 싶더니 어느 새 2월 중순입니다. 모두들 신년 들어 계획했던 일들 차질 없이 잘 진행하고 계시겠지요? 저는 적어도 신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난해 놓쳤던 책들을 섭렵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ㅠ.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심2달’에 불과한 제 자신에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칭찬을 해줬답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책을 발견한 덕택이지요. 며칠 못 가는 그 알량한 작심이나마 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어마무시한 책을 찾아내기가 꽤 힘들었을 테니까….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 펴냄

제게 자기기만의 정신승리를 안겨줬던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입니다. 제목으로도, 또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라는 부제로도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워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아 지나쳤었는데, 각종 언론매체에서 융단폭격마냥 퍼붓는 찬사를 무시할 순 없더군요. 결국 별 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읽는 내내 “우와∼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숨이 찰 정도였습니다. 과학적 진리를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로까지 확장시킨 교양서적이기도 하고, 내밀한 고백을 담은 회고록이기도 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인물평전임과 동시에, 달달한 러브레터의 형식까지 아우른 엄청난 책!

지은이는 루이자 엘리자베스 밀러(Louisa Elizabeth Miller), 애칭 룰루 밀러(Lulu Miller)입니다. 워낙 책에 매료되었기에 글 솜씨의 주인공을 속속들이 알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는 15년 넘게 미국공영라디오방송국(NPR)에서 일하고 있으며,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라는 소개가 거의 전부더군요, 해서 위키피디아를 뒤져보았지만, 자세한 이력은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교수 부부(인문학 전공 어머니와 과학 전공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고, 스워스모어(Swarthmore) 칼리지에서 역사학 학위를 받았으며, 뱀을 비이성적으로 두려워하고, 결혼해서 두 아들이 있다 정도였을 뿐….

책은 모두 13장으로 구성됩니다. 각 장의 첫 페이지에는 스크래치보드 기법으로 그려진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실려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글 또한 추리소설 뺨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되지요. 즉, 자살까지 생각했던 음울한 성장기, 한순간의 실수(?!)로 7년간 함께 했던 연인과의 이별,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스타 어류학자 -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 에 대한 집요한 추적,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의 오도된 자연과학의 흐름과 함께 밝혀지는 추악한 실상 등이 숨 가쁘게 펼쳐지는데, 이후의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스포일러는 극혐의 무례잖아요?

글쓴이가 책의 말미에 토해낸 사자후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다.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 가 아직도 귓전을 울립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일깨울 경구(警句)이겠지만, 작금의 법조계에게 더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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