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농구라는 영광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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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농구라는 영광의 시대
  • 승인 2023.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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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더 퍼스트 슬램덩크

그 시절 필독서라고 불릴 만큼 시대를 휩쓴 추억이 전부였다면 이렇게 열기가 뜨겁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주인공이 송태섭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새롭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연출에 참여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한지 이미 한참 지났지만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급기야 팬들을 모아서 힘껏 소리칠 수 있는 ‘응원상영’을 하는가 하면 슬램덩크로 농구만화에 생긴 관심을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이 이어받는 낙수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다.

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슬램덩크에 대한 이해가 “여자애 이름이 다슬인지 예슬이 아냐?”라고 할 정도의 수준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내용은 전국대회에 진출한 북산고가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산왕공고와 농구를 하는 것이 전부다. 다만 만화에서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던 포인트가드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괴로웠던 과거사와 산왕전을 함께 엮어나가는 것이 기존 원작팬조차 모르는 새로운 지점, ‘더 퍼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작중 공개되는 송태섭의 삶은 고단하고 상처로 가득하다. 아빠를 잃었고, “우리가 이 집의 주장이고 부주장이야”라며 자신을 이끌어주던 형마저 실종되었다. 가족들에게 다가온 깊은 상처로 엄마나 여동생과도 터놓고 편안하게 대화하기가 힘들다. 소년의 내면에 쌓인 답답함과 분노, 슬픔을 떨치고 ‘뚫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구뿐이었다.

송태섭 뿐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두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꿋꿋하게 ‘전국재패’를 외쳐왔던 주장 채치수,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의 방황에도 결국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흘리며 코트로 돌아온 정대만, ‘나의 영광의 시대’를 누릴 수 있다면 말도 안통하고 삐걱거리기 일쑤인 녀석이라도 본능적으로 하이터치를 하게 되는 강백호와 서태웅, 이들 모두에게는 농구가 유일하고 절실한 존재인 셈이다.

그놈의 농구가 뭐라고 이렇게 과몰입을 하느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고등학생 청춘들에게는 자신을 증명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달리며, 나의 영광의 시대를 살며 몇 번이고 다시 되살아나게 하는 방법은 농구밖에 생각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렇게 하나밖에 보이지 않아서 다소 무모하더라도 온 몸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모습이야말로 슬램덩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 농구선수의 움직임을 모션캡처하고, 원작자만의 날카롭고 거친 그림체를 활용한 농구경기는 북산고 청춘들의 치열한 삶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 농구경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법한 역동성과 디테일한 묘사는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퀄리티다. 만화에서는 대사 없이 그림으로만 진행하던 후반부를,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소리를 생략해, 침 삼키는 소리마저 시끄러울 만큼 몰입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슬램덩크는 잘 만든 작품이지만, 이제 관객들에게 더 이상 슬램덩크의 작품성은 의미가 없다. 슬램덩크 시절을 보냈던 세대에게는 지나간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향수이고, 처음 슬램덩크를 접한 세대에게는 지금이 바로 이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영광의 시대’다. 그러니 잭 도슨의 말마따나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 극장으로 달려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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