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유래의약품, 한의사의 당연한 사용 위해 한의계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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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물유래의약품, 한의사의 당연한 사용 위해 한의계 노력 필요”
  • 승인 2023.03.16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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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mjmedi@mjmedi.com


▶인터뷰: 정기용 가천한의대 겸임교수(내과학)

“한의계가 바라는 정부 정책 이루려면 전 한의계 힘 모아야”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최근 발간된 현대한의학개론에서 천연물유래의약품과 관련된 내용이 게재됐다. 천연물유래의약품과 관련된 현황, 관련 정책 및 법령의 변화, 한·양방 갈등의 원인과 그 경과, 전망 등을 담았다. 이 원고를 작성한 정기용 가천한의대 교수를 만나 관련 내용을 집필하게 된 배경과 천연물유래의약품 관련 한의계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최근 출간된 <현대한의학개론>에 천연물 유래의약품과 관련된 내용을 게재했다. 어떤 내용인지 간략히 소개해달라.

<현대한의학개론>은 지금 한국의 한의과대학에서 교육되고 관련 연구기관에서 연구되며, 한의원, 한방병원 등 임상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의학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책이다. 따라서 약물치료(한약)와 관련된 부분에서 현재 한의계 안과 바깥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천연물유래의약품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이 복잡해 본문이 아닌 ‘천연물신약, 천연물유래의약품은 한약일까? 양약일까?’라는 독립된 부분으로 기술했다. 그 내용은 천연물신약 및 천연물유래의약품과 관련된 현황, 관련 정책 및 법령의 변화, 한·양방 갈등의 원인과 그 경과, 전망 등을 담고 있다.

 

▶원고에서는 2016년 경 '천연물신약' 정의가 삭제되면서 ‘천연물의약품’이 됐지만 처방권 등으로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에서 “천연물신약이란 천연물 성분을 이용해 연구 개발한 의약품으로서 조성 성분, 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을 말한다.”라고 여전히 정의돼 있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약(생약)제제 품목허가 신고에 관한 규정에서 약사법상 ‘신약’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에 ‘천연물신약’ 정의를 삭제한 것은 맞다.(‘천연물신약’이란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 제2조제3호에 따른 의약품으로서 천연물성분을 이용해 연구·개발한 의약품 중 조성성분·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으로서 별표 1의 한약(생약)제제의 제출자료 중 Ⅰ. 신약 및 Ⅱ. 자료제출의약품의 1.부터 4.까지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임상 현장에서 한방보험제제인 단미엑스혼합제 56종의 시장이 2020년 기준 348억원인 것을 감안해 보면 기존에 승인된 천연물신약 6종(조인스정, 스티렌정, 신바로정, 시네츄라시럽, 모티리톤정, 레일라정)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2020년 기준 1008억원으로 의사들에 의해 매우 활발하게 처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의사 측면에서 볼 때 이 약들은 한약의 제형이 바뀐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약으로 바뀐 이들 한약을 한의사가 처방하지 못하는 것은 한의사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천연물유래의약품과 한약제제 생약제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현재 처방권과 이용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천연물의약품은 순수한 천연물의약품과 갈근탕과 아세트아미노펜이 결합된 것과 같은 혼합형 천연물의약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여기에서는 순수천연물의약품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한약제제의 정의는 약사법에 나오며, ‘한약제제’라 함은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해 제조한 의약품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생약제제의 정의는 ‘생약제제’란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를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방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한방원리는 현재 한의사들이 치료에 이용하는 모든 원리가 한방원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의학으로 가는 시대에 배타적인 서양의학적 관점이 존재할 수 있을까? 두통이나 요통에서 한의학적 치료목적과 양의학적 치료목적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렇듯 한약제제와 생약제제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권과 이용권을 둘러싼 한·양방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이유를 책에서 세 가지로 정리해서 제시하였다. 먼저는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의 빠른 진행으로 인해 다양한 제형과 종류의 한약제제가 개발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천연물유래의약품의 개발 과정에서 한의약 지식과 한의학의 임상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국외에서도 다양한 천연물유래의약품이 앞으로 개발되는 상황에서 이들 약품이 수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약제제 방풍통성산이 살사라진정으로, 은교산이 쎄파렉신캡슐이라는 일반의약품으로 출시되어 있다. 문제는 한약제제를 일반의약품으로 구분할 경우 양의사들의 처방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한약이 생약제제로 분류될 경우 한의사는 처방할 수 없게 되어있다.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바로 2021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고, 2021년 11월 건강보험공단에 급성기관지염 치료제로 급여 등재된 ‘브론패스정’의 경우다.

브론패스정은 한의학 서적인 <수세보원>에 실려 있는 ‘청상보하탕’ 처방 중 6가지 한약재(숙지황, 목단피, 오미자, 천문동, 황금, 행인)에 백부근을 추가한 한약(생약)제제다. 이 약은 한의사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청상보하탕가감’이다. 현재 브론패스정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한의사와 한약사는 배제된 채 양의사가 주로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현재 천연물의약품 의약품이 2010년 초반을 변곡점으로 출시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인적 사견임을 전제로 몇 가지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본래 정부의 천연물신약 정책은 주목나무에서 추출한 유방암, 난소암 등의 치료제 성분인 탁솔, 개똥쑥에서 추출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 등과 같은 세계적인 천연물유래의약품을 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국내 제약회사들의 실패 위험을 낮추기 위해 천연물의약품에 대한 기준을 크게 낮추어 한약제제가 쉽게 천연물의약품이 될 수 있도록 허가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본래 의도했던 천연물의약품 기준을 국내 제약사들에게 요구하면서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이 들어가는 새로운 천연물의약품 개발에 국내 제약회사들이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력 대비 이익이 낮은 상황으로 판단하여 개발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국내 제약회사들이 한약제제를 일반의약품으로 쉽게 만들어 팔 수 있는 현실과 한약을 별다른 제약 없이 쉽게 사용하여 건강기능식품을 만들 수 있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굳이 막대한 개발 비용을 들여 천연물의약품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천연물신약 개발이 한의학의 현대화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차별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한의계에서는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개인적 의견이라는 전제하에 편하게 말하고자 한다. 사실 현재 천연물신약 개발은 결국 한약의 현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연물신약, 천연물유래의약품 또한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약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한의사가 당연히 사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몇 가지 한의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미래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한 한의계 내부의 자각과 단결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한의학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의 연구 성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한약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미래 한의학의 일부를 이런 성과 가운데 세우겠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이러한 연구 성과들을 건설적인 비판과 논의 속에서 빠르게 받아들여 한의학 연구, 이론, 교육, 임상 등에 반영할 때, 한의학 현대화의 성과들이 우리 한의계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천연물신약’ 개발이 아닌 ‘한약 신약’ 개발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한의사가 천연물의약품, 생약제제, 한약제제 등의 분류에 상관없이 진료에서 다양한 한약 관련 의약품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 한의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첩약, 보험제제(다양한 제형 및 종류의 확대), 비보험제제(다양한 제형), 천연물의약품, 메디푸드,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열린 마음과 넓은 시야로 한약을 연구하는 국내외 타 학문(중의학, 캄포의학, 서양의학, 약학, 식품공학, 화학, 생물학 등) 분야의 연구 성과들과 연구 흐름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 좁은 국내 한의계에서 전통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단기적인 대응이 아닌 장기적으로 한의학의 특성과 우리 한의사들의 생각이 반영된 한약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한의계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 전문가들을 지원하고 전문가들의 정책적 조언에 귀 기울이고 건전한 논의가 이루어져, 합리적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인 접근, 정부 정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 결여와 무지에서 오는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 미래 한의학 발전에 대한 통찰력 부족 등은 없는지 우리 한의계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 같이 발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최종적인 발전 방향은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국가에서 정책을 만들 때 한의사만을 위한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의계 내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얻도록 노력해야 하며, 관련 산업계(제약업, 한약도매유통업, 농림업 등) 및 관련 타 직역(한약사, 약사, 의사 등)과도 적절히 협력할 때, 한의계가 바라는 정부 정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임상연구, 임상진료도 중요하지만, 미래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 정책 연구가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회 속에 비춰지는 한의계의 모습이 보다 나아지도록 전 한의계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번에 출판된 <현대한의학개론>에서는 한약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현대한의학 전반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근·현대시기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현재 한국 한의학(한의학, 한의술, 한의의료)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펴볼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내용에 출처를 밝히고 있으므로 현대한의학을 리뷰하고자 하는 모든 한의대생과 한의사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애정 어린 관심과 건전한 비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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