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의학왕, 한의학을 부흥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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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의학왕, 한의학을 부흥시키다
  • 승인 2023.03.2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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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전학 간 친구 서울 집으로 놀러 갔었다. 서울에 간다는 생각에 전날 잠도 못 이룬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63빌딩도 구경하고, 시골에서 말만 들었던 엘리베이터도 탈 기대에 잠을 설쳤다. 고속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고 공덕동 친구 집에 다다르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좁은 골목 사이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나지막한 집들, 나무로 만든 멋스러운 대문, 꽃과 나무가 자라는 아기자기한 마당,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마루……. 서울에 대한 첫 이미지는 정겨운 ‘한옥’으로 각인되었다. 기억에 큰길 안쪽 주택가는 대부분 한옥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재개발이 되었지만,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에서 한옥은 남아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김경민 지음, 이마 펴냄
김경민 지음, 이마 펴냄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는 한옥을 만든 정세권에 관한 이야기다. 정세권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서울 전역으로 거주지를 확장하려는 것에 맞서서 조선인을 위한 한옥을 만들어 분양한 건축업자이다. 1920년대 일제의 수탈로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서울에 인구가 늘었다. 일본인의 숫자도 늘면서 청계천 이남의 자리에 잡았으나 점점 북쪽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정세권은 조선인을 위한 건축 양식을 고안하였다. 여러 가구가 살 수도 있으면서 화장실, 부엌 등이 실내로 들어온 근대화된 주택을 북촌에 지었다. 북촌을 중심으로 땅을 매입하여 10채 내지는 50채까지 대단위로 한옥을 지어 조선인에게 분양하였다.

한옥 덕분에 조선인은 일본인의 거주지 확장을 막을 수 있었고, 좁지만 함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정세권은 일제강점기 돈을 많이 벌어 대자본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자본가처럼 사업을 위해 친일을 도모하지 않고 민족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정세권이 지원을 아끼지 않은 탓에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여러 해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어학회에서는 「조선어 사전」을 준비할 수 있었고, 해방 후 사전이 바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세권은 일식 주택을 만들라는 조선총독부의 권고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고문을 받고 재산을 빼앗기게 된다. 해방 후에는 고향인 경남 고성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주택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타계하였다. 이 책을 읽고 한평생 조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자본가 정세권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외국인들이 꼭 찾는 관광지가 된 북촌 한옥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정세권은 한 명의 부자를 위한 건물보다는 돈 없는 조선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표준화하고 규격화하면서도 싸게 공급하여 서울에서 조선인들이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정세권을 ‘건축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세권의 사업 목표는 싼값에 조선 환경과 생활 특징에 적합한 집을 공급하는 것에 있었다. 조선인을 사랑하고 조선을 지키기 위해 자본가의 위치에서 독립운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서울의 상징이 된 한옥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세권의 건축 양식이 지금도 이어져서 한국적인 온돌 문화를 살리면서도 공동주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본 가옥과 차이를 두기 위해 한옥이란 명칭이 붙여졌듯이 양의학과 대변되는 한의학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의사를 의생으로 격하하는 한의학 말살 정책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국민을 치료하는 의학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한의학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건강보험 2% 대의 점유율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국의절 행사로 대만을 방문하였을 때 놀랐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에 한약 제재 청관 1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만 정부에서 청관 1호의 치료 효과를 인정하고 빠르게 의료급여화하여 중의(中醫) 의료기관에서 처방받도록 하였다. 대만에서 중의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코로나19 이후에 50%나 증가하고 건강보험 점유율이 40%나 성장하였다니 참 부럽기만 하였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 치료에 한의학을 인정하지 않고 양의사 눈치 보느니라고 한의사에게 기회도 주지 않았지만, 대만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의학을 코로나 치료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었다. 우리 한의학계에서도 ‘건축왕’ 정세권처럼 민족주의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한의학을 국민의 삶에 녹일 수 있는 ‘의학왕’이 필요하다. 한의사는 지금도 독립운동 중이다.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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